영화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2000, 벨라 타르)

by 김명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물들은 외적 방해물에 의해 방해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의 본성을 반드시 실현한다.”라고 말하며 목적론적 세계관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 것도 달이 지구주위를 도는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우주의 질서다. 그러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어야 할 고래가 마을로 오게 되면서 그 질서에 작은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후 주인공 야노스는 점점 불안에 빠지기 시작하는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은 공포와 달리 뚜렷한 대상이 없다. 그것은 특정한 대상이 아닌 파멸에 대한 존재론적 불안이며 영화의 극도로 긴 롱테이크는 그러한 파멸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생생히 체감하게 해준다. 질서가 깨진 후 가장 먼저 위협을 받는건 병원의 환자들이다. 약자이자 보호받아야 할 병원의 환자들은 그 순간 법적 보호로부터 추방되는 호모 사케르(아감벤)가 되며 폭도들에 의해 구타당한다. 야노스는 마을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파멸적인 운명앞에선 너무나도 무력하고 모든것이 무너져내린 뒤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래의 모습은 너무나도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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