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약간 민감할수도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아동학대범들은 짐승이다, 아니, 짐승도 아동학대는 안 한다는 점에서 비교 자체가 짐승에게 모욕이다, 따라서 아동학대범들은 해충에 더 가깝지만, 해충도 아동학대는 하지 않는다, 모기도 하지 않고, 파리도 하지 않고, 바퀴벌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 자처하는 인간이, 도덕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고, 법을 말한다는 인간이, 아동학대를 하거나 거기에 동조한다는 점에서 해충보다 더 쓰레기다, 아니, 쓰레기보다 더 쓰레기다, 해충은 자기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지만, 아니, 에초에 뭘 하는지 알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은 아는데도,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한다는 점에서 제일 쓰레기고, 어른 행세까지 한다는 점에서 제일 비열하다, 부모는 개도, 소도 될 수 있는 것이며, 보호자는 나이만 처먹었으면 할 수 있는 것이고, 부모라는 사실 자체는 대단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대단할 이유가 없다, 거기엔 면허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성충동과 쾌락추구욕망만 있으면 생물학적으로 할 수 있는게 번식이고, 번식하는 순간 개도, 소도, 해충도 부모라는 간판이 생기는데, 번식했다는 사실 말고는 한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냥 그 번식 자체로 부모가 된다, 아니, 학대범이 된다, 그리고 학대범들은 자기가 번식한게 대수인줄 알고, 해충도 할 줄 아는걸 했다며 동네방네 자랑스럽게 떠들어댄다, 그럼 사회는 어떤가? 사회는 아동학대를 방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출산율이라는 숫자놀이 따위에는 거의 병적으로, 미친 개처럼, 집착한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작 학대로 인해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는, 태어난 아이에겐 눈곱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걸 피해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위선을 보여준다, 푸코의 생체권력 처럼 살게 하지만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 아니라, 아이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운전하는거조차 면허가 필요한 세상에, 아동학대는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며, 그 순간 아이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버린다, 아동학대는 살인, 강간이랑 동급이거나 그 위며 사회도 공범이다, 니체는 도덕이 절대적 기준이 아닌 역사적, 계급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는데 오늘날 해충만도 못한 것들이 그들이 상실한 아이의 순수한 의지와 힘의 긍정을 질투하고 복종과 인내를 강요하는것 역시 노예도덕의 일환이고, 많은 사람들이 학대범=주인, 아이=노예라고 착각하는데 틀렸다, 니체가 말한 강자란 외적인 지위가 아닌 내적인 힘이며, 학대범들 중 다수는 본인도 어린시절 학대를 받아봤으나, 그 원한을 가해자한테 못 푸니까 아이한테 복종과 인내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의 비열한 학대는 효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개도, 소도, 해충도 할 줄 아는 번식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아니, 신성화된다, 어리석은 것들은 산모의 고통에 대해서 떠들어대지만, 현자는 산아의 고통에 대해서, 산아가 앞으로 겪게 될 끔찍하고, 고단한 삶이라는 지옥에 대해서, 그 지옥에 온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절규하는 산아의 울음소리에 대해서 논한다, 산모의 고통은 산아가 겪을 수십년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매우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해충만도 못한 학대범들은, 아이의 동의 없이 정자와 난자라는 아주 잠깐의 우발성으로 번식한것도 모자라, 학대라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흉터를 아이에게 뼛속 깊숙이 남긴다, 이러한 아동학대를 막을 힘도, 의지도 없는 주제에 출산율에는 미친 개처럼 집착하며 개도, 소도, 해충도, 모두 부모가 될 것을 권장하는 사회는 사회가 아니라 정신병동이며, 교도소며, 순환의 지옥이다, 사회는 자신들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아니, 부정하기 위해, 부정하고 싶어서, 시선을 가장 만만해보이는 동성애자, 정신장애인 등으로 돌리고, 그들을 표적 삼아 공격해보지만, 그것은 죄인들의 저열한 투사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아이를 낳아놓고 이혼한다, 그들이 아이를 싫어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이혼이 악의적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걸로 알 수 있는건 그들이 아이를 낳았을때 최소한의 심사숙고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아이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은 사이가 안 좋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부모 사이가 안 좋으면 가출 혹은 자살 밖에 선택지가 없다, 아니, 그마저도 선택이 아닌 외부에 의해 강요된 것에 가깝다, 부모가 이혼이라는 예외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주권자라면, 아이는 법적 보호 밖으로 추방당하는 호모 사케르(아감벤)일 뿐이다, 게다가 사랑의 매 같은 단어들로 아동학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희화화하고 일상화하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퍼져있으며, 역겨운 인간들은 남아선호, 여아선호 같은 구역질 나오는 단어들을 취향이랍시고 떠들어댄다, 아이의 존재를 마치 소비자의 자위수단인것처럼 여기는 구역질 나오는 단어들이고, 명백한 칸트의 정언명령 위반이다, 또한, 사회는 구별짓기를 좋아한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를 미학적 취향의 차원에서 얘기했지만, 나는 구별짓기가 여기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며, 어른이라는것들은 자기입맛대로 아이들을 구별짓고 우와 열을 가르는걸 좋아한다, 제물론을 얘기했던 장자가 봤다면 매우 한심하게 생각했을 일이다, 그리고 뉴스는 자극적이거나 조회수 올리기 좋을만한 학대만 골라서 보도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불평등에 대해선 단 한줄도 보도하지 않는다, 학대범들은 자기가 학대범인줄도 모른다, 아니, 아는데 그냥 모른척 하거나 뉴스에 나오는 아동 살인, 아동 성폭행 정도는 아니니 괜찮을거라 자위나 한다, 그 자위의 결과가 바로 아이의 뼛속 흉터다.
• 아이의 세계관은 고장난다, 아니, 고장난 건 고칠 수 있지만 이건 완전히 파괴된다, 산산조각난다, 온 세상이 폐허다, 그 폐허 위엔 경멸과 수치심이 미쳐 날뛰고 있다, 돌이킬 수 없다, 벗어날 수도 없다, 폐허는 계속된다, 폐허는 폐허지만 폐허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삶은 폐허다, 폐허는 삶이다, 폐허는 끝이없다, 폐허는 학대범이 만들었다, 그런데 폐허를 벗어나는건 아이 몫이다.
결론
아동학대만 없어져도 자살율은 급격히 줄어든다, 내가 장담한다, 자살은 어쩌다 갑자기 일어나는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축적되어온 고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동기의 학대는 성인 이후에도 자존감 하락, 내면화, 나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 등등 큰 영향을 끼친다.
아예 뇌 구조가 바뀐다.
아동학대가 살인 이상으로 끔찍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