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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회, 첫 직관의 새빨간 기억

비가 오던 날. 아이의 눈물

by 일요일오후여섯시

첫 대회.

첫 경험.


우리는 단지 경기를 하러 간 게 아니었다.

그 하루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마음부터 준비한 팀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비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비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비를 맞으며 뛰는 풋살.

흠뻑 젖은 생쥐 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은 특별했다.

남편과 두 아이가

처음으로 내가 뛰는 경기를 보러 온 날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큰아이는 작고 서툴렀지만 정성껏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우리 엄마 파이팅!”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떨렸다.


경기가 시작됐고 아이들은 경기장 밖에서 내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엄마야. 이렇게 열정적인 모습도 있단다.’

풋살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우리 팀 골문 앞, 상대편의 강한 슈팅이 빠르게 날아왔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공을 막았다.


문제는 나는 골키퍼가 아니라는 것.


휘슬이 울렸고 심판은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대로 퇴장당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벤치로 돌아가는 동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내 얼굴엔 비와 함께

뜨거운 무언가가 흘렀다.


큰아이는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첫 직관이 레드카드와 함께 퇴장당하는 엄마라니..

그 속상함과 놀람이 고스란히 눈물로 번졌다.


부끄러웠고,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나를 응원하던 아이의 눈물을 보며

그 작은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처음이라는 건 늘 특별하다.

기억에 남기보단, 마음에 새겨진다고 해야 할까.


내 인생 첫 대회.

그 자체로 설렘과 부담이 동시에 밀려왔다.


결과는 예선 탈락.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아이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죄책감이었다.


레드카드 한 장.

쫓기듯 경기장을 빠져나온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

딸의 눈엔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수많은 생각을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날

맞아준 건 과자 한 봉지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디언밥.

그 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엄마, 오늘 끝까지 해줘서 고마워!

엄마 사랑해.”


짧은 문장에 수없이 많은 감정이 몰려왔다.


기대감을 안고 찾아왔을 경기장.

예상치 못한 퇴장과 함께 터져버린 울음.


엄마의 처음 보는 모습에 8살 딸아이가 느낀 건,

내가 자책하던 못난 모습이 아닌 ‘위로’와 ‘사랑’이었다.

나를 위해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골랐을 작은 손.

그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하루 종일 나를 짓눌렀던 ‘그 실수’는 초라하게 퇴장당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마친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다.


그렇게 또다시

난 운동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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