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손을 들던 그날
초록 운동장이 펼쳐지고, 나는 출발선 위에 섰다.
바람이 불었고, 심장은 웅웅거렸다.
안경을 쓴, 마른 체형의 고등학생.
단 한 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 없는 아이였다.
사실, ‘운동 못하는 아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다.
빼빼 마른 초등학생이던 나는 체육시간보다 나무 그늘이 더 익숙했다.
안경 너머로 바라보던 친구들은 빠르고, 힘 있고, 에너지가 넘쳤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반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육상부, 테니스부, 스포츠댄스까지…
운동회 주전은 늘 동생의 몫이었다.
연년생인 동생과 비교될수록 나는 더 확신하게 됐다.
운동 잘하는 사람은 타고나는 거야.
운동은 나랑 상관없는 세계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단정 지어 버렸다.
고등학교 1학년 체육대회 준비 날.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모두가 피하던 1500미터 오래 달리기.
지원자가 없어 어색한 정적이 흐르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도전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번만큼은 나도 뭔가 해보고 싶었다.
탕!
출발 신호가 울리고
나는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확신할 수 있다.
그 순간의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뛰었다고..
아이들 사이에서 치고 나가며 운동장 한가운데 내 발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탁탁 탁탁—
운동장을 밟는 내 발,
뒤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환호.
“우와!!!”
알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그때의 나는 분명, 세상에서 제일 빠른 아이 같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
운동장 두 바퀴째를 도는 순간,
숨이 가빠졌고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무릎, 무겁게만 느껴지는 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호흡.
나는 그대로 운동장에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철퍼덕,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뛰는 자세도, 호흡하는 방법도, 1,500미터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조차 몰랐던 아이.
수많은 눈이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시 내 안에 도장을 꾹 찍었다.
“나는 역시, 운동 못하는 아이야.”
나는 그렇게 나라는 가능성을
조용히, 조금씩 접어두는 법을 익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