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나”보다 “해보는 나”
가슴이 뜨거워졌던 그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렸해졌다.
내가 사는 지역에 여자축구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골때녀“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였지만
생각보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축구팀을 찾는 것이 쉽진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바로 내가 사는 동네에
여성풋살팀을 창단한다는 광고글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진짜야? 우리 동네에? 지금?”
짧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주저 없이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렸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이었기에 낯설었지만,
그 떨림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그렇게 나는,
여성 풋살팀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운동을 해본 적도,
축구공을 차본 기억도 없던 내가 운명처럼 이끌리듯 도착한 곳.
나는 생애 처음으로
‘축구장’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
당연히 제대로 된 운동복은 없었다.
분홍색 여유로운 기능성 티셔츠,
검정 트레이닝 바지, 평소 신던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는 햇살 가득한 운동장에 섰다.
몸은 금세 땀에 젖었고,
분홍 티셔츠 위로 얼룩이 번졌다.
그날 딱 하나는 확실히 배웠다.
운동은… 장비빨이다.
———-
풋살팀 첫 훈련 날,
운동장에는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쭈뼛쭈뼛한 인사.
서로를 살피는 눈빛.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공 앞에선 모든 것이 금세 풀어졌다.
“감독님, 이거 이렇게 차는 거 맞나요?”
처음 불러보는 ‘감독님’, ‘코치님’ 이란 호칭이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그게 묘하게 짜릿했다.
공은 굴러가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함께 뛰었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고,
패스를 주고받고,
같이 실수하고 같이 웃는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이
낯설 만큼 행복했다.
—
몇 번의 훈련시간을 보내고 나자 주변사람들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와… 저 사람 진짜 처음이야?”
“슛이 왜 저렇게 세지?”
“자세도 다르고, 공도 정확하게 보내네…”
그 순간부터
익숙한 혼잣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역시 운동신경이 없나 봐.’
‘어릴 때 운동을 안 한 게 문제지.’
‘역시 나는 안 되는 쪽인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그 목소리가 제일 크게 울렸다.
나는 또다시 내 가능성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공은 계속 굴러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는 안 돼’라는 문장이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장처럼 찍힌 그날의 장면들도
나를 완전히 막진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다음 훈련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