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자객처럼 은밀히 찾아온 눈은 신산한 세월 속 자신의 비기마저 잃어버린 걸까, 뭇 마음들 위로 내려앉지 못한 채 허공에서 서너 차례 춤추다 물러갔다. 그래도 제날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와 성긴 눈발이나마 기어이 풀어놓고 서둘러 떠나버린 마음이라니, 세월이 모질어 이렇듯 사소한 신의에도 눈물 난다. 머지않아 거센 기세로 온 하늘 온 들판을 하얗게 물들일 눈발들의 장엄한 칼춤을 그려보며 모진 세월을 견딘다. 오늘은 대설(大雪).
영화보기 산책하기 술값내기 내리는 비 멍하니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시집으로『너무 늦은 연서』가 있고, 인천문화예술회관 근처 주점 '갈매기의 꿈'에 자주 혼자 앉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