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에서 볼까?" 1100년 전 고관대작 사이의 대화가 아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나와 내 친구가 어떻게든 만나려고 발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들들 때문이다. 우리가 같은 여성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건 아니다. 같은 산후조리원에서 지냈던 것도 아니다. 갓난쟁이 시절을 한참 지나 아들의 첫 젖니가 빠질 때쯤 우리는 만났다. 아니 보았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점이라 대면 수업이 없어지고 비대면 수업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수학 강사 한 명이 진행하는 도서관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노트북 화면 속 여러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아왔다. 수업이 재미있어 나도 내 아들도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 후 1년쯤 지나 대면 수업이 재개되었다.
답답했던 마음을 깨고 외출을 하게 되니 이리 기쁠 수가. 나는 아들을 책놀이 수업에 데려가려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자 한 해 전 모니터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의 아이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초면에 나는 다짜고짜 말문을 열었다. 아이 얼굴이 낯익어서 반갑다로 시작해 그날 나는 친화력 만렙을 찍기에 이르렀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아들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이미 그의 전화번호는 내 손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파면 팔수록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다고나 할까. 우리는 각자 아들 한 명과 살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공통점이 아주 많았다. 동네 친구 한 명 사귀었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마흔 넘어 만났다는 게 억울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아니다, 이제라도 내 인생에 나타나 준 게 어딘가!
그는 문학을 좋아했다. 나도 뭐 싫어하진 않는다. 잘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나는 ㅇㅇㅇ문학관에 간 적이 있다고 응수했다. 그 역시 몇 년 전 충청도에 있는 그 문학관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수년 전의 사진을 찾아 서로 보여주며 배꼽을 잡아가며 웃어댔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헛웃음이 날 만큼 나는 그가 좋았다. 이성이었다면 진즉에 프러포즈했다.
어느 날은 그의 아픔을 들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는 오래전 일이었다며 울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처음 듣는 내게는 청천벽력처럼 다가왔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슬프고도 슬펐다. 그의 인생사를 들어온 가운데 내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연신 눈물을 닦고 코를 푸는 수밖에 없었다. 카페의 사장이 힐긋거리든 옆 테이블의 MZ들이 노려보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집에 와서도 나는 한참 멍해 있었다. 그 후 아마도 우리 사이는 더 깊어졌으리라.
부부간 금슬을 질투하는 삼신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와 나 사이를 질투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별안간 그의 가족을 5시간 거리의 도시로 이사 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과 1~2년 사귄 친구가 이사를 간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다. 엄마들이 애로사항을 나누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유대감을 과소평가 마시라. 그가 이사 간 후 봄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단풍이 흑백으로 보이는 걸. 물론 육아 퇴근 후 카톡으로 아들들의 성장 사진과 짧은 대화를 나눌 수는 있다. 그러나 카톡과 전화통화가 길어질수록 보고픈 마음만 누적될 뿐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해져 나는 마냥 눈 감을 밖에.
그가 이사 간 후에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한두 번의 만남이 성사되긴 했다. 보면 볼수록 나눌 이야기는 한없이 길어지고 시간은 부족했다. 일상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가는 데 물리적 거리는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 와중에 깜박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우리의 많은 공통점 가운데 남편들의 고향집이 경주라는 점 말이다. 명절이면 나도 경주에 가고 그도 경주로 간다. 넋 놓고 있다가 어느 명절에 이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ㅡ지금 경주 왔니?
ㅡ응, 내남이야
ㅡ오늘 이나 내일 접선 기회를 잡아 볼까?
ㅡ완전 좋지
ㅡ난 버스 타고 갈 듯. 이번에 차 안 가져왔어.
ㅡ중간 지점에서 봐야겠지? 포석정에서 볼까.
그렇게 포석정 회동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각자 아들까지 데려 와 넷이서 만날 수도 있었다. 이 원대한 계획은 체력고갈이라는 난항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다. 명절음식 하느라 내쪽에서 먼저 떡실신 상태가 된 것. 아들끼리는 바둑이나 두게 하고 우리 둘은 포석정에서 느긋하게 담소를 나눌 날이 올까. 다가오는 명절부터 차례 음식을 안 하기로 정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