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것

by 최고수정

‘새 달력’이라는 동요가 있다.

“새 달력에 내 생일이 들어있다. 새 달력에 엄마 생일이 들어있다. (후략)” 아이가 이 노래를 몇 살 때부터 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래 덕분인지 새해 달력을 받자마자 아이는 본인 생일날에 가장 먼저 동그라미를 친다. 그 직후에 엄마인 내 생일에 동그라미를 쳤는지, 아니면 남편의 생일에 동그라미를 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의 생일에 케이크를 먹는다는 사실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 케이크를 살 때도 있는데.


8살 아이는 동그라미가 쳐진 가족 생일보다 한 달 전부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초콜릿이 들어간 케이크를 사자고 슬슬 협상을 걸어온다.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괜히 확답을 주지 않고 시간을 끈다. 결과적으로 케이크에 대한 기대치만 계속 높여나가는 꼴이다. 본인의 생일 때처럼 내가 당연히 캐릭터 케이크를 사 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수년째 뚜OOO에서 출시하고 있는 로봇 케이크를 골라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지 않은가! 2~3만 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출을 캐릭터 케이크로 하면 3~4만 원대는 족히 넘어간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덧 마음이 약해진 나는 1주일 전부터 캐릭터 케이크를 검색하고 있었다. 마침 신제품으로 나온 ‘티니핑 케이크’가 인기몰이 중이었다.


생일 3일 전쯤 아이의 손을 잡고 뚜OOO 빵집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널따란 케이크 진열대에 파스텔 톤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티니핑 케이크가 예약 없이 바로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위엄을 당당히 세우고 있었다. 아이는 관심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계산대로 가서 케이크를 예약하러 왔는데 캐릭터 메뉴판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부터 아이의 두 눈은 커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손짓이 슬로우로 재생되었을 것이다.


10여 개의 캐릭터 케이크들이 사진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없다고 투정을 부릴지, 초콜릿 맛을 계속 고집할지, 하여튼 나를 화나게 할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한 2초 정도 눈치를 살핀 뒤 잽싸게 내가 세 가지 중 하나로 하자고 선을 그었다. 남자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티라노, 레이싱 카, 곰돌이 푸.


잠시 후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세 개 중에서 제일 비싸지 않은 걸로!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이는 더 이상 자기만 생각하는 떼쟁이가 아니었다. 가정 경제를 생각했다는 마음 자체가 갸륵했다. 눈물이 차 오르려는 걸 막아내고 일단 결제를 했다. 우리 가족은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인 카(CAR) 시리즈의 주인공 ‘카3-라이트닝 맥퀸’ 케이크를 먹게 됐다. 셋 중에서 가장 가격이 낮은 것이었으므로.


평소에 내가 ‘싸다 비싸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던가 되돌아봤다. 경제교육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던 나인데 아이는 “엄마, 내가 이 만큼은 컸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로지 캐릭터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예상외의 감동까지 먹은 나는 우리 케이크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이 케이크는 샛노랑과 새빨강으로 그려진 레이싱 카로 둘러싸인 박스 안에 모셔졌다. 거리로 나가면 한눈에 시선 집중이다. 케이크 박스를 들고 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또 어찌나 경쾌하던지…… 비싼 것을 구매하고 가는 길이라 흥겨웠던 걸까.


이제 와 되돌아보니 케이크는 한 번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일원으로 생일을 준비한답시고 예약을 하고 생일 전날에 찾아오는 것까지 교육이라면 교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로선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알게 되기도 했고. 케이크를 다 먹은 후에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는 박스를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일주일은 가지고 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케이크 위 데코레이션으로 쓰인 미니 자동차 맥퀸까지 정말 허투루 놔두지 않고 옹골차게 가지고 놀았다.


엄마 아빠는 거의 매번 아이에게 양보한다. 생일날마저도. 억울할 만 하지 않은가. 그런데 비싸지 않은 걸로 비싼 것을 얻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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