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채널에서 방영한 <스테이지 파이터>를 좋아했다. 두 달여 간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남자 무용수들이 퍼스트(1st) 계급이 되려고 경쟁하고 또 공동작품도 완성해 선보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stage by 퍼블릭 미션’이라는 코너가 기억에 남는다. 스테이지 파이터 1회 때 발레 무용수들이 오디션을 거쳐 퍼스트 그룹, 세컨드 그룹, 언더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퍼블릭 미션이나 K-콘텐츠 미션은 같은 장르끼리의 경쟁이 아니었다. 전공과 상관없이 주제에 맞춰 각자 안무를 짜고, 선정된 안무를 그룹별로 연습하게 돼 있었다. 퍼블릭 미션은 5명씩 한 팀을 이뤄 무대에 올린 뒤 말 그대로 ‘대중’들에게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주제는 중독, 질주, 악몽, 구원 4개였고 주제마다 2팀씩 총 8개 팀이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시청자들은 유튜브에서 중독 콘셉트의 작품에 메인 주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은 무용수에게 투표할 수 있었다.
나는 한 달 이상 ‘구원’에 빠져 있었다. 구원 콘셉트는 메인 주역 강경호의 작품 ‘구원일지’와 메인 주역 김유찬의 ‘당신의 마음을 Savior’가 무대에 올려졌다. 둘 다 발레 전공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자석에 이끌린 듯 두 작품을 연속으로 반복해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도 잠깐, 잠들기 전에도 잠깐,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도 잠깐. 유튜브의 댓글을 보니 다들 아침 루틴, 밤 루틴이 되어 버렸다고~
퍼블릭 미션 구원, 중독, 질주, 악몽(구중질악)을 볼 때마다 가장 놀란 건 몇 주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무용수들이 이렇게까지 호흡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점이었다. <스테이지 파이터> 참가 전에는 남남이었던 성인 남자들이 말이다. 구원 작품의 경우 안무를 짠 사람이 주역 외 군무의 동선까지 시선이 가도록 엄청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물론 메인 주역도 돋보였다. 이 둘은 내 꿈에도 종종 등장했을 정도다. 무용수들은 학교 생활이며 공연이며 10년 이상 같이 해 오던 죽마고우들 같았다. 아마 서로의 전공과 개성을 존중하고 응원하면서 연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역이든 조역이든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무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하면 과장일까. 강경호 팀은 힘과 날렵함이 강점이라면 김유찬 팀은 유연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소재의 의상도 구원이라는 주제를 살린 신의 한 수였다.
눈으로만 구원을 감상하기에는 좀 모자라다.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 때문이다. 바로 음악이 무용수들의 춤선을 잡아먹었다. 왜냐하면 네 가지 주제의 배경 음악이 공개됐을 때 64명의 무용수들 사이에서 웅성웅성하는 울림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음악 뭐야’, ‘노래가 너무 좋다’, ‘구원 콘셉트에 많이 몰리겠군’, ‘현대무용이 잘할 것 같아’ 등 무용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였다. 실제로 가장 많은 무용수들의 선택을 받은 곡이다. 오죽하면 나도 노래를 누가 불렀는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궁금해 찾아봤을 정도니까. 오직 영어로만 된 가사는 발음까지도 무척 아름다웠다. 한참을 헤맸지만 기존의 팝송이 아니었다. ‘SAVIOR(구원)’은 R3D라는 가수가 노래했는데 이번 가을에 음원이 출시된 것 같았다. 춤을 보려고 유튜브에서 ‘더 춤(The CHOOM)’을 검색했는데 귀가 호사를 누렸다.
가수는 음악으로 말을 했고, 무용수들은 춤으로 말을 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원’이라는 공통 주제를 표현했을 뿐인데 둘이 합쳐져 내게 어마어마한 감동을 주었다. 나도 구원이라는 음악에 맞춰 나를 구원하고 싶어졌다. 구원 팀은 스스로의 춤을 구원했고, 예술이 얼마든지 지친 인간을 살려낼 수 있다고 <스테이지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황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