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있는데 TV에서 차례차례 이름들이 열거됐다. 지난 토요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제안 설명하는 도중이었다. 김건희 특검법이 2표 차로 부결돼 이미 나는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탄핵안 가결 요건인 재적의원 2/3 이상 찬성표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복귀를 호소했다. 일일이 호명되는 여당 의원들의 이름을 듣고 있으려니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불법 계엄령을 발동한 대통령 하나 탄핵하지 못하는 수준인가 싶어 분노가 들끓었다.
의원명을 귀로 듣는 것과 달리 TV 화면을 보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당 석이 휑뎅그렁한 것이 충격이었다. 나도 모르게 거실 벽을 붙잡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슬픈 울음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놀란 아이가 내게 달려왔다. 당시 집에는 나와 8살 아이 단둘뿐이었다.
“엄마, 괜찮아. 가족이 옆에 있으니까 진정해 엄마. 가까이 없는 가족에게는 카톡이나 전화가 있잖아. 마음이 똑같으면 다독여 줄 거야.”
막막한 와중에도 아이가 종알종알 말을 하는 모습에 정신이 좀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어조가 자못 진지해서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도 했다. 그 사실이 맞긴 맞았다. 울고만 있기보다 아이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도 내 임무임을 자각하자 눈가가 말라갔다.
“이제 진정해서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말했던 아이는 이 일을 기록으로도 남겼다. 매주 한 번 담임에게 제출해야 하는 그림일기에 거실의 TV 화면과 나의 눈물방울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늘은 엄마가 뉴스를 보고 울었다. 내가 진정하라고 다독였다. 그래서 멈췄다. 천만다행이었다.
초등 저학년에게 작금의 계엄 사태를 설명하려고 하니 또 아득해졌다. 지난 4월 총선 때 기권하지 않고 투표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는 그림책을 소개해 준 적이 있다. <소중한 한 표 누굴 뽑을까?>였다. 지금은 책이나 이론 말고 실재를 알려 주고도 싶었다. 여의도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또 도서관으로 갔다.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책들을 찾아 메모한 채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까요?>라는 책을 찾았다. 다행히 그림책이었고, 글밥도 많지 않았다. 책이 무겁지도 않았다. 아주 쉽게 정당과 투표의 개념이 설명돼 있었다. 물론 내가 읽어 주겠지만, 아이 스스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낙찰이다.
사실은 <대통령은 누가 뽑나요?>라는 책이 표지부터 가장 끌렸다. 그런데 책장에서 꺼내보니 두꺼웠다. 그림책도 아니었다. 그림도 있지만, 질문과 설명 위주로 된 책이었다. 혹시 몰라 대상 연령이 적혀있나 눈을 부릅떴다. 10세 이상이었다. 이런…… 2년 더 부지런히 키워보라는 주문 같다. 역사의 한 순간 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