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눈(雪)

by 최고수정

“지금 눈이 쌓이고 있는데 안 일어날 거야?”

원래 눈이 오면 일찍 일어나야 하나. 아침 7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자고 있다며 아이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나는 이미 어른이라 눈 오는 게 어린이만큼 설레지 않는데 어쩐담? 투덜거리면서 거실로 나갔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보니 주차된 자동차 지붕에 눈송이들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진심 반, 연기 반을 섞어 나도 오두방정을 떨었다. 어제 눈 예보를 듣긴 했는데, 언제 저만큼 쌓였냐며 너무 예쁘다며 아이의 들뜬 마음에 맞장구쳤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아파트 1층에서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어떤 초등학생을 보게 됐다. 입구의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우아~! 하는 탄성을 지르며 뛰쳐나가는 게 아닌가. 음, 눈이 온다는 건 저렇게 기쁜 일이군. 덕분에 나도 아이모드로 변신하게 됐다.


점심을 다 먹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가 갖고 가지 않은 장갑과 눈오리 집게를 손에 쥐고서.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데 그중 몇몇 남자애들은 서로 눈싸움하며 낄낄거렸다. 그때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우리 반 학생 정OO이 눈 뭉치를 아이와 내 쪽으로 던지네? 나는 무척이나 약 오른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우산을 방패 삼아 막았다. 고작 1~2번의 눈 뭉치를 받았지만 함께 웃고 헤어졌다. 즉 올해 첫 눈싸움까지 한 것이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아이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계속 눈덩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빨리 들어가자고 하고 싶지만, 밖에 있을 때라도 눈을 만져보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특별히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의지까지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이가 눈을 뭉치고 있는 동안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주는 게 내 역할인 것만 같았다.


집까지 10분 거리를 20여 분에 걸쳐 도착했다. 우산을 접으려는 데 우산 위에도 꽤 많은 눈이 담겨 있었다. 이걸 털고 들어가야 하나, 이것마저 버리지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우산을 편 채로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우산 위 적은 양의 눈마저도 소중했나 보다. 다음 날도 눈 예보가 있는데 쩝. 한 움큼 한 움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양손이 잠시 자유로운 틈을 타 아이가 우산 눈을 모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물론 지난해에도 눈이 왔을 것이다. 그전 해에도 왔을 것이고. 하지만 과거의 눈과 지금의 눈은 당연히 다르다. 아이는 나이를 더 먹었고, 손가락도 커졌고, 등에는 책가방이 메어져 있다. 다시 보는 눈이 그냥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크는 걸 막을 수 없듯, 눈이 내린다는 사실도 경이롭게 다가왔다.


아참, 스노우 메이커로 유명한 눈오리 집게의 효용은? 올해 초 우리 집에 대형 크기의 눈오리 집게가 생겼다. 아직 한 번도 안 만들어 봐서 나도 궁금하다. 소형 크기는 아주 앙증맞은 매력이 있는데, 대형은 어떨지. 크기 상관없이 노란색 눈오리 집게는 보기만 해도 귀엽지만! 또 눈이 내리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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