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곳은 ㅅ도서관의 영어 수업에서였다. 강사와 함께 팝송 가사를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4~5회차 수업 중 2회차 때인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밖으로 나오니, 먼저 나와 있던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눈치였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나는 별 의심 없이 바로 올라탔다.
“이 수업 재미있으세요?” 그의 첫마디였다. 나는 강사도 실력 있고 시간도 금방 가버린다고 좋게 평가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해 보니, 영어에 대한 내 관심이나 애정도를 확인해 보려는 질문이었다. 그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초반에 정체를 밝히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내게 다가오려는 순간이었다. 보통의 수강생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자 그를 향한 신뢰감이 바로 장착되었다. 나의 평일 오전 시간이 여유롭다는 걸 예감한 그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묻고는 내 아이 나이대에 보기 적당한 수준의 영어책이 있다며 다음 수업 시간에 만나면 전해 주겠다고도 했다. 순식간에 내 전화번호는 그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게 카톡으로 안부 정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는 2~3년 전부터 유행 중이었던 MBTI가 뭐냐고도 물어봤다. 성격유형별로 설득의 방식이 달라야 하나 보지? 나는 단순히 동네 언니 한 명을 사귀기 시작했다고 여겼다. 아이까지 챙겨준다니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어느 날 시간약속을 잡고 그와 단둘이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팝송 수업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는데 그때 레인 첵(rain check 우천으로 행사가 취소됐을 때 나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교환권)으로 약속을 미뤘다면 어땠을까.
카페에서의 대화는 순식간에 1시간이 넘어갔다. 나는 자라온 배경이며 남편은 어떻게 만났고 출산은 제왕절개로 했다는 얘기까지 그야말로 TMI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평소 말이 많고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성정 때문이었다고 본다. 반면 그는 말수를 확 줄였고 공감해 주는 반응만 보였다. 그것 역시 의도가 있었으니. 바로 3번째 단독면담인, 식사 자리를 만들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다음 수업이 끝나고 근처 식당으로 같이 갔다. 조용한 곳은 아니었지만 대화하기는 충분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차와 식사는 역할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양분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때는 영혼이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메뉴여서 그랬을까. 저번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경계의 벽이 무너지고 그만 눈물이 터져 버렸다.
아이 낳고 6~7년간 이렇게 대화할 사람이 없었던가? 어린 시절 얘기를 할 때였나, 부모님 얘기를 할 때였나, 어느 대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역시 인간이란 자기 얘기를 하기 좋아하는 족속이었다. 내 역사를 풀어나가다 보니 갑자기 자기 연민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 울음 이후에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게, 살아 나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자식 놔두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야.” 그는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내 자식이 믿고 버틸만한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본인은 종교를 가지게 됐다고.
그제야 나는 기독교 전도 현장에 벌거벗긴 채로 내던져져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단박에 교회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상대는 당황했는지 멈칫하더니 상황을 얼버무렸다. 나는 엄포를 놓듯,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신천지’ 공부 모임까지 끌려가 본 적이 있다며 몸서리쳤다. (신천지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합시다. 음음.)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니 교회 언급은 사절이라고 나는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역시 그는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팝송 수업도 종강하고 더 이상 나는 그를 만날 일이 없어졌다.
이 불쾌한 경험이 내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만나는 내내 있었던 일을 복기해 본다. 자식을 볼모로 한 전도라니 주부가 무슨 봉이냐 싶고 억울하기만 했다. 영어라는 공통 관심사는 일단 전화번호를 받는 용이고, 카페에서의 시간도 본인 얘기는 자제하면서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기에 급급하더라니. 자녀의 영어교육이라는 걱정거리를 건드려 나를 유혹하기엔 미취학이었던 내 아이가 너무 어렸던 걸까.
티타임 동안 나는 주로 책 이야기에 심취했다. 아무래도 평소 관심사가 두드러지게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이나 관심 가는 작가 이름들을 줄줄 읊어댔으리라. 전문상담사도 아닌데 시간을 내 묵묵히 잘 들어주던 그는 순간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책을 써야겠네!”
2년 전 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계절에,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욕망을 타인에게서 전해 들은 거였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당시에는 책 쓸 마음이 전혀 없었고 독자이기만 해도 한없이 즐거웠다. 그러다 올해 이기주 작가의 산문집 <보편의 단어>를 읽고 토론했을 때 본 문장이 생각났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누가 나에게 쓰는 삶을 살라고 부추기기를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나를 전도하려 했던 그는 어쩌면 내 등을 떠밀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와~ 나는 긍정의 화신. 현재의 나는 내 글을 읽는 타인에게서 ‘좋아요’ 소리를 듣고 싶다. 댓글 대신 하트를 눌러 주셔도 됩니다! 자식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는 ‘어머니’라는 존재인 것만으로도 좋다. 나아가 나 스스로에게도 단단한 기둥이 되는 존재를 원한다. 내 시간을 버틸만한 기둥은 독자였으면 좋겠다. 종교는 확실히 아닌 것 같고. 내 삶을 힘내게 하는 존재, 조금 두려운 존재, 아주 많이 기대게 되는 존재가 ‘독자’라는 사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