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하다 못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한 4월의 어느 날. 아이의 옷장에서 여름 티셔츠들을 모두 꺼낸 적이 있다. 아무리 얇은 재질이라고 해도 긴소매는 이제 덥겠다 싶은 무렵이었다. 반소매 티셔츠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재질이 꽤 두꺼운 것도, 얇은 것도 있었다. 폴로셔츠처럼 칼라(옷깃)이 있는 반소매는 한여름에는 못 입을 것 같아 4, 5월에 많이 입히면 되겠다 싶었다. 6월 전에는 긴바지를 입을 기온일 테니 감기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려받은 티셔츠 중에는 잠옷으로 몇 번 입고 나면 버려야 될 수준으로 낡은 옷들도 있었다. 정말 잠옷으로 입히니 보기에도 이렇게 세상 편해 보일 수가 없었다. 지난해 여름에 외출복으로 이 티셔츠들을 꽤 입었던 것을 생각하니 아이의 하루하루가 귀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금방 옷들이 해지는 게 신기했다.
민소매 티셔츠들도 부지기수였다. 내의까지 포함해서다. 이것들도 분명히 2024년까지 입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이삿짐에 챙겨왔을 것이다. 꾸역꾸역 잘 입혀 왔다. 누가 봐도 아직 멀쩡하지만, 실상은 3년씩이나 입힌 옷도 있다. 아이의 5살, 6살, 7살 여름을 담당해 주었던 고마운 민소매다. 특히 수영복과 컬러감이 비슷해 물놀이장에 갈 때면 전용으로 입히곤 한 것이 있다. 이 형광 노란색의 민소매는 수십 년이 지나도 여름의 바닷가를 떠올릴 때 연상될지 모른다.
티셔츠를 살펴보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옷들이 너무 빨리 작아진 것이다. 내가 직접 구매했던 반소매 중 몇 벌은 몰라보게 작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옷은 크기가 그대로고 아이가 자랐다. 아이의 허리가 길어졌고, 가슴둘레가 굵어졌다. 고맙고 뿌듯한 일이다. 이렇게 빨리 옷이 작아진 건 아쉽지만 버려야만 했다. 추억이 새겨져 있어도 눈 한번 질끈 감고 버려야지. 내년 한여름에도 입힐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사이즈가 넉넉한 옷인지 정할 시기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이 와중에 선물 받은 옷들도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에서 나눠준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어버이날 행사 때 한번 입었던 옷은 그때도 컸지만 지금도 여전히 커서 내년에도 사용 가능하다. 비록 OO유치원이 적혀 있긴 하지만 거의 새 옷이니 지구를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등교하는 평일이 아니라 주말이나 연휴 때 자주 입히거나 잠옷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나름 여름 상의가 충분한 데 초등학교에서도 받은 옷이 있다. 일명 학급티다. 반별로 색깔이 다르고 운동회날이나 체험학습일 등 단체활동 때 입는 용도다. 이것도 이번 여름에 종종 입혔다. 생각해 보니 더 자주 입혀야 할 것 같다. 내년에는 새로운 반티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동시에 친구들과의 우정도 차곡차곡 쌓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하의는 다루지도 않았는데, 여름 티셔츠가 많기도 많다. 아이가 살아갈 날도 쇠털같이 많을 것이다. 지난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아이는 여름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몸이 많이 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면의 성장을 위해 힘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벌써 겨울이 오는 건지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 인터넷으로 아이의 점퍼를 하나 주문했다. 나는 하교한 아이에게 “엄마가 겨울 점퍼 샀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라고 말을 꺼냈다. 아이는 내가 골라주는 건 다 좋다고 답했다.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신체도 감성도 빠르게 자라고 있구나! 따라가기에 벅차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