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야, 이번에 캠핑 같이 가야 돼
- 왜!
- 토요일이 결혼기념일이잖아
- (아, C) 왜 결혼했지
마음의 소리가 너무 크게 튀어나와 버렸다. 남편도 들었을 텐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애교로 어찌어찌 순간을 모면하기는 했다. 실제로도 결혼기념일에 캠핑 가서 케이크도 자르고 잔도 부딪쳤다. 그럼에도 나는 ‘왜 결혼했을까’라는 진심에 파고들고 싶다.
미시적으로는 그 주 토요일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결혼기념일이라는 복병이 없었더라면 나는 ㅈ작가의 북토크에 갔을 것이다. 날짜와 시간이 수개월 전부터 정해진 상태인데 갑자기 결혼기념일이 끼어든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내 기념일도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확정된 날인데 말이다. ‘결혼 10주년’이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 일정은 놓아버렸다. 이 작가를 평소에 많이 좋아했는가 자문하며,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리라 나를 다독였다.
거시적으로는 결혼이라는 선택이 많은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각되었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ㅇㅇㅇ은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시작하자면 2박 3일은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ㅇㅇㅇ은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을 텐데’ 싶은 영역도 3박 4일 열거 가능하다. 거의 모든 기혼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감히 단언한다. 이른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로망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혼족들이 종종 부러웠다. 어쩌면 그들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제게도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요!
그러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이다. 성직자인 성 오귀스탱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게, 나도 갖고 있는 것이 많지. 많고 많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부터 골라 볼까. TOP 5에 남편이 들어갈 것 같다. 애석하게도 쩝. 그래도 정이 있는데 다섯 손가락 안에는 넣어줘야지. 내가 잃은 자유 말고, 가진 자유를 부지런히 누려볼까?
캠핑은 오롯이 남편의 취미다. 10살도 안 된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아빠와 단둘이 가는 캠핑도 좋아하지만 나까지 셋이 나서는 캠핑을 유독 좋아한다. 그 감정을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나도 내 에너지를 쓰고 싶은 곳이 마구마구 생겨나고 있는 걸 어쩐담. 아니야, 가지고 있는 것을 열망하라잖아. 하여튼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남편과 아이. 그리고 집안을 둘러보면 캠핑용 텐트가 보인다. 그동안 난 텐트가 2개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3개였다. 사실은 4개 일 수도 있다. 남편이 흥에 취해 하나 둘 사모으는 것이 캠핑용품인 건 알았지만 내가 모르는, 모를 수도 있는 텐트가 또 있다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텐트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강력하게 갈망해 보기로 한다.
생각을 바꾸어 보니 가족과 캠핑 가는 날은 행복한 시간이다. 집에서와 달리 한 공간에서 셋이 잠드는 조건은 오붓한 맛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캠핑장에서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두 남자의 해맑은 표정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요리도 남편이 다 하고, 캠핑장 예약이나 뒷정리 등 자질구레한 일에 내 손이 가는 때는 거의 없다. 이른바 ‘공주 대접’을 받는 캠핑 나들이는 내가 가진 보석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번 가을은 떠나고 싶게 만드는 날씨도 많았다. 11월도 10월 같은 기온이었다. 10월은 9월 같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 캠핑을 싫어하는데, 이 가을 캠핑을 좀 더 누리라고 온 우주가 나를 지지하네? 새벽 6시쯤 텐트 밖의 아침 안개도 운치 있고, 춥지는 않냐고 계속 물어보는 남편도 참 눈치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의무감에 찍어 뒀던 단풍 사진을 다시 살펴본다. 다음 해에도 가족들과 숲으로 나오고 싶다. 내년 결혼기념일에도 내가 가진 남편과 아이와 함께 파티하고 싶다. 20주년 결혼기념일에도 마찬가지다. 그땐 고등학생이 되었을 아들이 따라오겠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혼기념일의 캠핑을 지금부터 원하고 원한다. 여름에 캠핑 다녀와서 대상포진 걸렸었는데.(쿨럭) 이미 캠핑을 누리고 있지만 계속 계속 욕망한다. 욕망한다.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