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할 거야, LG 할 거야?”
가전제품을 고르라는 게 아니었다. 8살짜리 아이가 프로야구팀 중에 누구를 응원할 거냐고 내게 물어보는 거였다. 퇴근하자마자 TV 중계를 켠 남편으로 인해 우리의 화제가 야구가 됐다. 아이의 질문은 나를 약간 서글프게 했다. 왜냐하면 출산 후 내가 잃어버린 취미 중 하나가 야구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아이의 무구한 저 질문 하나 때문에 수면으로 부상했다.
내가 10살 때쯤부터 프로야구를 알기 시작했다고 치자. 경상북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거의 선택권 없이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했다. 부모님은 물론 옆집 사람들도, 친척들도 라이온즈 팬이었다. 생각해 보면 미성년일 때는 팬이었다기보다는 야구 경기의 규칙을 TV로 배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녀였던 내게는 아무도 어린이 야구단 가입을 추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기는 20대 초중반부터가 아닐까. 티켓을 사고 시간을 내서 야구장에 갔으니 말이다. 이때 시간을 냈다는 의미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TV를 보면서 응원하는 건 쉬운 편이 아닌가? 서울에 살고 있었던 나는 야구가 개막하는 3월이면 1년 달력을 펼쳐 관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삼성이 서울 연고지인 LG나 두산과 경기를 하러 올 때 잠실야구장에 가서 직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애를 쓰자면 인천이나 수원 경기 표까지도 구매할 수도 있었겠지.) 달력에 서울로 원정 오는 삼성의 경기 날짜들을 일단 표시해 두고 살았다. 그 날짜가 주말이면 금상첨화였다. 친구들과 곧장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삼성의 상징인 푸른색 응원 막대는 절대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다. 잠실 경기라도 TV로 볼 때가 아주 많았지만 구장에서 내 팀을 응원하려고 4계절의 계획을 세운 정도면 팬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삼성 팬으로서 30대도 나름 추억이 많았다. 회사 생활하면서도 나는 이 남자, 저 남자 여러명을 소개 받아왔다. 연애와 결혼 적령기의 남자들과 야구 얘기를 꺼내면 곧잘 친해졌다. 그랬다. 나는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어떤 남자 한 명을 골랐다.
그와는 이상하리만큼 연애 초기 때 프로야구 얘기를 안 했던 것 같다. 연애가 진척되고 살림을 차리고 나서는 야구도 내 결혼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그도 삼성 팬이었으니까. 신혼 때 우리의 둥지에서 야구 중계를 같이 보며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미 수없이 껴안아 본 사이였지만, 우리 팀에서 홈런이 나오거나 점수가 났을 때 기뻐서 껴안는 포옹은 또 다른 맛이었다.
40대는 ‘야구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라고 할 만큼 멀어져 버렸다. 출산과 육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설사 야구에 관심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아이 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일찍 재우는 게 우선이지 밤중에 야구 중계를 켜 놓을 수 없었다. 마침 삼성도 줄곧 성적이 부진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올해 삼성이 9.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딱 9년 전 내 뱃속으로 아이가 왔었더랬지.
프로야구는 봄에 개막해 가을까지 10개 구단이 정규리그를 진행한다. 정규리그가 끝나면 가을에 와서 4,5위전 와일드카드를 먼저 치르고 3,4위전 준 플레이오프를 2,3위전 플레이오프를 순서대로 치르게 된다. 대망의 우승팀을 겨루는 1,2위전 한국시리즈까지를 가을야구 또는 포스트시즌이라고 한다. 아이의 질문이었던 ‘삼성이냐, LG냐’는 플레이오프 때 삼성이 만난 팀이 LG였다는 소리다. 그 LG를 꺾고 삼성은 한국시리즈까지 가 버렸다.
아가야, 너는 모르는구나. 내가 얼마나 삼성 야구를 응원했던 사람인지…… ‘아빠도 삼성 응원하고 나도 삼성 응원할 건데, 엄마도 삼성 응원하면 안 돼?’라는 질문을 너는 한 거겠지. 사실 그건 순서가 바뀐 거야! 엄마 아빠가 삼성 팬이라서 너도 자연스럽게 삼성 팬이 된 거라고. 엄마 아빠의 몸에서 파란색 피가 흘러서 너도 파란 피가 흐르는 거라고. 올해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단 하루라도, 목이 터져라 삼성 경기를 응원할 것이다. 9년 치 응원 몰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