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식물의 반란 제12장 수소혁명
제11장 식물의 반란
자연선택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이다. 다윈은 할아버지부터 내려온 전통에 따라 에딘버러 대학 의과에 들어갔으나, 해부학 강의에 혐오감을 느껴 자퇴하였다. 그 후 케임브리지대학 신학과에 들어가, 신학 외에도 곤충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을 다양하게 공부하였다. 졸업하던 해인 1831년, 다윈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의 지지를 받아(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해군 탐사선 비글(Beagle)호에 승선하여 5년 동안 남미 갈라파고스 제도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종의 기원」으로 알려진 책의 원제는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즉,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라는 긴 제목이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진화(evolution)가 아닌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제목을 다시 풀이하면, 종(種)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원리는 무엇인가? 즉, 신의 섭리 대신 자연선택을 강조하고 있지, 종의 기원에 진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는 않았다.
다윈은 신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가지론의 편에 선 것 같다. 그래서 ‘창조’라는 용어에 대비하는 개념으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고 본다. ‘자연선택’은 ‘진화’에 비해 훨씬 중립적이고 유순한 표현이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국부론(國富論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시장의 균형을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창조에서 창조주 신을 빼면 자연선택, 보이지 않는 손, 균형, 진화, 빅뱅이 모두 같은 의미가 된다.
다윈이 결혼의 장단점에 관하여 견해를 피력한 내용을 보면 그가 다분히 현실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만 언급하면, 그는 결혼의 단점으로 ‘가난한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결혼의 장점으로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낫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다윈의 진화론은 여러 종교의 창조론과 비교됨으로써 그에 대한 지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진화사회론자,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하여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론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의 주체는 개체나 종(種)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본다. 몸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물의 행동을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간 ‘이기적’이라는 용어로 형용하는 것은 다분히 프로이드적이다. 프로이드는 대체로 맞다. 그러나 프로이드와 같은 방식만이 전부인 것처럼 사유하면, 빙산의 일각을 알기 위해 진력하다 나머지 중요한 큰 부분을 잃는 셈이 된다. 창조를 믿지 못하겠으면 무조건 진화를 믿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진화에서 돌연변이와 용불용설을 빼고 나면 쓸만한 게 얼마나 남을지도 의문이다.
한편 유전자가 ‘이기적으로(selfish)’ 행동한다고 할 때 그것을 진정 ‘이기적’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생물이 의식주와 번식에 집착하는 행동은 본능적(instinctive)이고 직관적(intuitive)이며 습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다. 그럼에도 이기적 유전자론에 의하면 유전자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겉보기에 이타적으로 보이거나 협업 관계처럼 보이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실은, 죄수의 딜레마에 의한 일시적인 타협의 산물일 뿐이다. 생물의 이타적 행동은 이기적 이타주의이며 가면으로 위장한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과학사가들은 19세기 3대 혁명가로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들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다윈만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평가한다.
완두콩
다윈은 멘델을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다윈은 외사촌인 에마 웨지우드(1808-1896)와 결혼하였는데 둘 사이에 자녀는 6남 4녀였다. 이 중 장녀와 차녀와 막내 아들은 일찍 죽었다. 다윈은 자신이 근친혼을 했기 때문에 자녀들이 유전병에 걸리지 않을지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와 합스부르크 왕조의 근친혼은 왕조의 쇠락을 촉진하는 원인이었다.
멘델(Mendel 1822-1884)은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 마을에서 태어났다. 수도원 수사로 있으면서 대학 청강을 통하여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고 이를 증명해 보고자 수도원 뜰에 완두콩을 심었다. 8년간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으나 학계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멘델이 사망한 후, 후임 수도원장은 멘델의 연구자료를 유족들에게 넘기지도 않고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멘델의 연구 결과는 사후 새롭게 재조명된다. 각국의 생물학자들이 멘델의 논문과 동일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1900년은 멘델의 법칙 재발견의 해로 지정되었다. 멘델에게 완두콩은 행운이었다. 그가 달맞이꽃이나 분꽃으로 유전실험을 했더라면 뚜렷한 법칙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예외적 현상이 발견되었음에도 멘델의 법칙은 분자생물학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1 법칙은 우열의 원리이다.
모든 형질에는 대립유전자(allele)가 있으며, 대립유전자는 우성(dominant)형질과 열성(recessive)형질로 나누어진다.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을 교배하면 제1세대인 F1에서는 우성형질만 표현되고 열성형질은 숨는다. 열성형질은 영구히 숨는 것이 아니며, 제2세대인 F2에서 25퍼센트의 확률로 나타난다. 근친교배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우열의 원리에는 예외가 많다. 빨간색 분꽃과 흰색 분꽃 사이에는 우열 관계가 없어서 제1세대인 F1에서, 빨간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제3의 색인 분홍색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알록달록한 옥수수처럼 전이유전자(Transposon)가 작용하여 당대에 변종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분홍색 분꽃과 같은 경우를 중간유전(intermediate inheritance)이라 부른다. 또 다른 예로 ABO식 혈액형에서 A형과 B형은 공동 우성이므로 AB형이 가능해진다.
제2 법칙은 분리의 원리이다.
유전자는 분리되고 조합되어 자손에게 전해진다. 노란색(우성)의 완두콩과 초록색(열성)의 완두콩을 교배하면 F1은 우열의 원리에 따라 모두 노란색이 나오나, 제2세대 F2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3:1의 비율로 나타난다. 둥근 형태(우성)의 완두콩과 주름진 형태(열성)의 완두콩 사이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염색체가 분리되지 않거나 결실(缺失)이 되어 다운(Down) 증후군이나 터너(Turner) 증후군과 같은 유전질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3 법칙은 독립의 원리이다.
서로 다른 형질은 각각 독립적으로 유전한다. 두 쌍의 대립유전자를 교배할 경우, F2에서는 9:3:3:1의 비율로 나타난다. 즉, RrYy(둥글고 노란 완두콩의 잡종)을 교배할 경우, F2 세대에서는 둥글고 노란색(RRYY, RrYY, RRYy, RrYy)이 9, 둥글고 초록색(RRyy, Rryy)이 3, 주름진 노란색(rrYY, rrYy)이 3, 주름진 초록색(rryy)이 1의 비율로 나타난다. 멘델이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은, 완두콩은 하나의 염색체에 하나의 유전자가 있는 경우여서 독립의 법칙의 예외가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초파리의 눈이나 사람의 피부 색과 같이 하나의 염색체에 여러 개의 유전자가 ‘연관’되어 있는 경우에는 독립의 법칙이 정확하게 적용도지는 않는다.
무화과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것이 40억 년 전이라면 식물은 약 10억 년 전에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종자에 의한 번식을 시작한 것은 3억 년 전쯤이다. 처음에는 겉씨식물이 주류였으나 1, 2억 년 전부터는 속씨식물이 대세가 되었다.
공룡이 2억 5천만 년 전에 태어나 6,500만 년 전 백악기에 멸종한 것이라면, 속씨식물의 시대와 상당 기간 겹친다. 공룡의 멸종 원인으로는 소행성 충돌설이 거의 유력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많다. 그러나 식물이 씨를 속에 감추고 키를 낮추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풍부한 산소에 적응하여 이미 훌쩍 커버린 공룡이 키 작은 식물에게서 식량을 취득하기에는 목 부상 등 위험을 감수하여야 했다. 눈앞에 보이는 양식이 그림의 떡이 된 것이 공룡 멸종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론할 수도 있다.
생물에게 번식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짝짓기하는 암컷 사마귀가 교미 중 수컷 사마귀를 끔찍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부터 새끼에게 몸을 영양분으로 제공하고 죽는 살모사, 연어의 산란 후 자폭행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손을 퍼뜨리는 행위는 곧 전쟁이다.
무화과말벌 암컷은 무화과나무 열매의 작은 구멍(ostiole) 속으로 들어가 날개와 더듬이가 상한 채 알을 낳고 죽는다. 이듬해 알에서 깨어난 숫벌들은 열매 내에서 통로를 뚫고 나오느라 다 죽고, 암벌은 통로를 따라 나와 무화과나무의 꽃가루를 묻힌 채 새로운 무화과 열매에 들어간다. 공진화(coevolution)라고 하는 이러한 과정은 7천5백만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암벌은 숫꽃과 암꽃을 식별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2분의 1 확률을 가지고 죽음의 열매 속으로 들어간다. 무화과 열매 속에서 태어난 숫벌은 암벌을 위해 길을 만들고 죽는다. 암벌은 또 다른 열매 속에서 번식을 하고 죽는다. 무화과나무는 말벌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수정을 할 수 있고, 말벌은 무화과 열매 안에 있는 영양분을 먹으면서 번식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윈윈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손 번식을 위한 죽음의 행진을 공진화 또는 ‘이기적 유전자’의 행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생물의 번식 사이클에서 죽음은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포식자를 발견한 새가 먼저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희생하고 나머지 다수를 살리는 새들의 행태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에게 종족 보존을 위한 죽음은 대수롭지가 않은 것이다. 알라신을 믿고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어새신들이다. 물론, 새의 경보음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첫 번째 경보음에 대하여 다른 새들이 무작위로 날아 오름으로써 포식자의 주의를 분산시키게 하므로 엄격하게 보자면,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이기적 행동의 일환이며 겉보기 이타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3인 중 1인으로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선정되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2016년 3월 10일, 대한민국 바둑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구글(Google)의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李世乭 Lee Sedol)에게 단 한 판만을 내주고 승리하며, 체스에 이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바둑 게임까지 정복하였다.
이로써 빅데이터로 컴퓨터를 학습시키면 인간 이상의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인되었으며 인공지능의 새 시대가 열렸다. 메스컴은 이세돌이 승리한 제4국의 78수를 ‘신의 한수’로 명명하였지만, 알파고의 프로그래머들은 제2국에서 알파고가 찾아낸 37수에 주목하였다. 37수는 인간이 두기 어려운 수였다.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집을 확정시켜주는 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AI는 인간을 넘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과 자두나무를 희생하여 복숭아나무를 보존하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승리 공식을 찾아낸 것이다. 인간이 손자병법을 만들었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한 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AI였다. 승리의 공식에 감정이나 직관은 걸림돌에 불과하였다.
세기의 대결의 결과, 바둑 게임에서는 인공지능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종래의 통설이 무너졌다. 대국을 중계하는 자리에서 珍光의 눈에는 구글 딥마인드 CEO 허사비스가 보였다. 세기의 대결로부터 수년 후, 그가 젊은 나이에 3차원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왓슨과 크릭의 이중나선 이래, 복잡하기로 소문난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 냄으로써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약 개발과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프론티어가 열린 것이다. 오래전 일본 고승의 바둑 기보 하나가 바둑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끝없는 반복 학습을 거쳐 당대의 고수를 꺾는 데 일조하고, 마침내 사람의 손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여 그 구조를 밝혀냈다. 이는 앞으로 인류문명에 전개될 AI 로봇 시대를 상상할 때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U’s Triangle
우장춘(禹長春 1898-1959) 박사는 배추와 양배추를 교잡하여 유채(油菜)를 만들어낸 육종학자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조국 땅에 돌아와 생을 마칠 때까지, 식물의 자가불화합성과 웅예선숙의 특성을 활용하여 한반도에 적합한 한국 배추와 무를 개발하였으며, 강원도 감자와 제주 감귤의 표준을 정립하였다.
부친인 우범선(禹範善 1857-1903)은 구한말의 중인 출신으로 일본군이 양성한 훈련대의 대대장으로 복무하던 중에, 개화파의 일원이 되어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친러 정권이 들어서고 친일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게 되자,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우범선은 일본에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여 우장춘을 낳았다. 우범선은 1903년 경상도 병마절도사였던 망명객 고영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당시 우장춘은 5세였다. 일본인 사회의 차별과 가난 속에서 어렵게 육종학을 배운 후에, 일본 정부의 농업기사로 일하면서 세계적 업적을 남겼다.
우장춘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배추와 양배추의 교배를 통하여 유채라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낸 일이다. 그는 1935년에 발표한 「배추속(배추屬 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이른바 우장춘의 삼각형(U’s Triangle)이라는 ‘종의 합성’ 이론을 발표하였다. 종(種 Species)이 다르더라도 한 단계 위인 속(屬 Genus)이 같으면, 다른 종끼리 서로 교배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珍光은 생각한다. 우장춘의 ‘종의 합성’은 1936년 일본제국주의 시절,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孫基禎 1912-2002)이 일장기를 몸에 두른 채, 히틀러가 보는 앞에서 대회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부문의 금메달을 딴 사건에 비견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처지에서도 일본명,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를 내세우지 않고 U(禹)를 고집하는 저 자존심을 보라.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유채가 만들어지고, 배추와 흑겨자를 교배하면 갓이 만들어지며, 양배추와 흑겨자를 교배하면 이디오피아 겨자가 만들어진다. 이 밖에도 우장춘은 값비싼 ‘겹잎 페튜니아’의 양산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배추와 양파의 1세대 잡종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제주도에 감귤 개량종을 재배하도록 권장하였으며, 바이러스에 약한 감자를 개량하여 강원도 감자의 주력 품종을 확립하기도 하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종(種)은 자연선택의 결과임을 주장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우장춘의 ‘종의 합성’은 적어도 같은 속의 종들 사이에서는 AI와 유전공학 기술이 적용될 여지가 있음을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훨씬 더 이익이 되고 현실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서 한국인 부친이 동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가’는 한국인으로 올곧게 살아갈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말년에는 가족을 일본에 둔 채로 홀로 한국에 돌아와, ‘강원도 감자’와 ‘제주 감귤’이라는 개량종을 만들어서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고국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그의 묘소는 수원 농촌진흥청 내 여기산에 위치한다.
전체형성능
식물의 생식 방법은 유성생식(종자번식)과 무성생식(영양번식)으로 나눈다. 식물의 생식 방법의 변화는 진화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게 있어 보인다. 자식성(自殖性) 식물에게 나타나는 근교약세(近交弱勢 Inbreeding Depression, 근친교배 약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식물은 자기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공룡과 같은 무자비한 포식자로부터 자손을 이어가기 위해 식물은 어떤 전략을 취하였는가?
식물의 생식을 약간의 상상력을 발동하여 들여다보면, 식물은 포식자의 농단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씨앗을 겉에서 속으로 집어넣었으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하여 키를 낮추었고, 위험분산의 일환으로 암술과 수술을 분리하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세우기 위해 꽃을 피우려는 본래적 성질을 잃지는 않았다.
어떤 식물은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포기하는 대신 순수성을 취하고, 모양보다는 실속을 중시하여 인간에게 적응하기를 선택하였다. 이들은 자가수정(self-fertilization)의 방식을 추구하였다. 반면, 순수성보다는 잡종강세의 길을 선호하여, 강하고 다양하게 살아남기를 선호하는 식물은 타가수정(cross-fertilization)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자가수정을 하는 자식성 식물에는 벼, 보리, 밀과 같은 화곡류와 콩, 복숭아, 포도 등이 있다. 타가수정을 하는 타식성 식물에게는 수술의 꽃가루가 자기 꽃가루인지 남의 꽃가루인지 구분하는 여러 가지 기제가 발달하였다. 여기에는 자웅이주 식물(은행나무, 시금치), 웅예선숙 식물(수술 먼저 성숫, 양파, 마늘, 옥수수, 딸기, 밤), 자가불화합성(self-incompatibility) 식물(배추, 무)이 있다.
식물신품종보호법에서 ‘품종’은 “식물학에서 통용되는 최저분류 단위의 식물군으로서 유전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중 한 가지 이상의 특성이 다른 식물군과 구별되고 변함없이 증식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으며, 종자산업법에서 ‘종자’는 “증식용 또는 재배용으로 쓰이는 씨앗, 버섯, 종균, 묘목, 포자 또는 영양체인 잎, 줄기, 뿌리 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식물은 근친교배로 인한 퇴화와 멸종을 극복하기 위하여 매우 영리한 방법을 개척해 왔다. 배추과 식물은 암술이 수술을 받아들일 때 같은 꽃에서 온 것인지 다른 꽃에서 온 것인지를 구별하는 재주가 있다. 같은 꽃의 꽃가루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상이 자가불화합성이다. 양파와 고추, 파, 상추 등은 꽃가루에 유전적 결함을 만들어 자가수분이 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웅성불임성(Male sterility)이라 한다.
식물은 어렵게 만든 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치밀한 방어기제를 동원한다. 중복수정(double fertilization)으로 배와 배젖을 따로 만들어 위험을 분산한다. 씨앗에 발아억제 효소를 도포하여, 가시덤불에 떨어지거나 일정한 기온 변화에도 견디며 포식자의 뱃속에 들어가더라도 살아남는다. 씨앗은 장일식물(long-day plant)과 단일식물(short-day plant)로 나눌 수 있다. 장일식물은 가을이나 이듬해 봄에 파종하여 여름에 수확하는 식물이며, 단일식물은 여름에 파종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식물이다. 씨앗은 이러한 타임스케줄에 맞춰 발아와 출수의 시기를 조절함으로써 섣불리 개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물론 인류는 식물의 이러한 방어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하였으니, 인간보다 영리하지 못한 식물들은 여지없이 속아 넘어간다.
식물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 한계가 있다. 포식자로부터 씨앗이 무자비하게 탈취되어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식물에게는 동물이나 인간에게는 없는 자연의 선물이 있다. 전체형성능(totipotency)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에게는 잎, 줄기, 뿌리의 일부만 있어도 완전체를 재생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무성생식 또는 영양번식의 전제가 되는 전체형성능은 오늘날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제12장 수소혁명
원소들
지구의 대기(大氣 Atmosphere)는 질소 78%와 산소 21%로 구성되어 있다. 수성은 대기가 거의 없으며, 금성과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목성과 토성의 대기는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에서 질소는 생명체의 내용을 구성 성분으로 존재하며, 산소는 생명체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수소(水素 Hydrogen)는 1766년, 영국 과학자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가 발견한 원소로서 프랑스 과학자 라부아지에(Lavoisier 1743-1794)가 명명하였다. 섭씨 500도 이상에서 점화하고 영하 253도 이하에서 액화한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상태에서 대부분의 수소는 중성자가 없는 프로튬(protium) 상태이며, 중성자 1개를 포함하는 중수소, 중성자 2개를 포함하는 삼중수소의 형태로 존재한다.
탄소(炭素 Carbon)는 우주에서 수소, 헬륨, 산소에 이어 4번째로 풍부한 원소이며, 인간의 몸에서 18.5%를 차지한다. 이산화탄소(CO₂)는 생명의 양식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지만, 대표적인 온실가스이기도 하다. 햇빛의 적외선을 받으면 진동하여 대기를 데우며, 햇빛의 복사열을 가두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약 5천만 년 전에는 1,600ppm 수준인 적도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인 1750년대에는 280ppm 수준이었으나, 1960-70년대에는 300ppm, 2012년 이후에는 400ppm을 넘어섰다. 2023년 말 현재, 430ppm을 초과하고 있으며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한국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 7억 톤(전세계 510억 톤)이며, 이 중에서 탄소포집량은 식물이 4,500만 톤, 습지가 26만 톤 정도이며 현재, 직접적으로 포집하는 양은 거의 없다.
산소(酸素 Oxygen)는 1774년 영국의 화학자이자 성직자인 프리슬리(Joseph Priestley 1733-1804)가 발견한 원소이다. 대기 중 산소는 10억-25억 년 전, 식물성 플랑크톤과 조류(藻類)와 육상식물이 주도한 광합성 작용으로 생성되었다. 광합성은 식물의 몸 안에 있는 엽록체가 햇빛에너지의 도움을 받아 이산화탄소와 물에서 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광합성에서 탄수화물이 생성되는 과정 못지않게 물이 수소와 산소로 나누어지는 작용도 중요시된다. 수소혁명 시대에서는 수전해 기술, 즉 수소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방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물과 조류가 어떻게 하여 수소와 산소의 단단한 결합을 끊어내었는가? 대기 중에 산소가 증가하자 산소를 싫어하는 생물은 그 독성으로 인하여 대부분 멸종되었다. 산소에 적응하거나 산소를 좋아하는 생물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질소(窒素 Nitrogen)는 1776년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Lavoisier 1743-1794)가 그 존재를 증명하였다. 라부아지에는 훗날 에너지 보전의 법칙으로 이어지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확인하였으며, 물과 이산화탄소의 생성을 규명하고 비료와 토양에 관한 연구 등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였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혁명 시기에 탐관오리로 낙인찍혀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구 대기의 78퍼센트를 차지하는 질소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아미노산과 단백질 합성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생물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바로 흡수할 수는 없으며, 콩과 식물이나 기타 음식물을 직접 섭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질소는 수소와 반응하여 암모니아를 생성한다. 대기나 토양 속의 질소를 다른 화합물로 바꾸는 과정을 질소고정이라 하는데, 이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미생물이 뿌리혹박테리아다.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와 수소를 합성하여 합성비료를 만듦으로써 인류의 농업사에 남을 공적을 이루었으나, 안타깝게도 독가스를 개발하여 나치 독일에 부역하였다.
만유인력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영국의 천재 과학자로서 갈릴레이가 죽은 해인 1642년에 태어났다. 미숙아로 태어나, 몸이 양말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작게 낳아서 크게 기른다는 옛말이 맞아 떨어진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 흑사병이 유행하자(1665-1667),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 피신해 있던 시절,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적분학, 광학, 역학에 관한 독보적인 이론을 발표하였다. 과학사에서 1666년은 ‘기적의 해’라고 불린다. 기적의 해가 하나 더 있으니,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1905년이다.
뉴턴은 1687년 발표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일명, ‘프린키피아’에서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y)을 공식화하였다.
F = G ㆍ(m₁ㆍ m₂)/r²
(F: 중력크기, G: 중력상수, m₁: 질량1, m₂: 질량2, r: 질량거리)
중력상수(G)는 실제 관측 결과 6.67384 * 10⁻¹¹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하며 질량이 클수록 그 힘은 더 세진다는 법칙이다.
뉴턴 사후, 프랑스 과학자 쿨롱(Coulomb 1736-1806)이 또 하나의 역제곱의 법칙을 발표한다.
F = k ㆍ(q₁ q₂)/r²
(F: 전기력, k: 쿨롱상수, q: 전하의 크기, r: 전하 거리)
쿨롱상수(k)는 9 × 10⁹
쿨롱의 법칙은 두 전하(電荷, electric charge)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전하의 곱에 비례하고 전하 사이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로써 만유인력의 법칙은 전자 입자로부터 우주 행성에까지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게 된 셈이다. 뉴턴은 선각자답게 그때까지 알려진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천재성과 직관으로 자연법칙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17세기 중반까지 알려진 몇 가지 사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의 천문관측자료다.
또한,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고전역학의 기본이 되는 운동법칙을 발표하였다.
제1 법칙(관성의 법칙)은 새로운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외부 힘이 없으면 정지 또는 등속운동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F = 0(dV/dt = 0)
(F: 힘 V: 속도 t: 시간)
제2 법칙(가속도의 법칙)은 운동의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F = d(mV)/dt = mㆍdV/dt = ma
(F:힘 V:속도 t:시간 a:가속도)
제3 법칙(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F₁₂ = -F₂₁
이쯤해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F = G ㆍ(m₁ m)₂/r², F = k ㆍ(q₁ q₂)/r² 식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역제곱 1/r²은 어떤 의미인가?
원운동의 식 x² + y² = r² => x²/ r² + y²/ r² = 1이다.
(x: 초점의 x좌표 y: 초점의 y좌표 r: 원점 거리, 반지름)
타원운동의 식 x²/ a² + y²/ b² = 1이다.
(x: 초점의 x좌표 y: 초점의 y좌표 a: 짧은반지름 b: 긴반지름)
원운동이나 타원운동은 두 물체 사이의 거리 즉, 반지름(r, a, b)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힘(F)은 각각의 질량이나 전하량을 두 개의 물체 사이의 거리(r) 즉, 원심력으로 환산한 값의 곱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m₁/r) * (m₂/r) →( m₁m₂)/r²
이러한 시사점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식 E= mc²에도 적용하여 추론해 볼 수 있다. 에너지불변의 법칙은 질량보전의 법칙과 동일시된다. 질량은 곧 잠재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빛의 속도(c)는 왜 제곱인가? 물체에 가해진 빛에너지는 면적 단위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서 현재까지, 태양 빛이 일정한 물체의 일정한 면적에 투사를 계속해 왔다면 즉, 일정한 물체가 빛에너지를 계속 저장해왔다면, 그것은 E= mc² 만큼의 막대한 에너지를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가 태양에너지의 거대한 보관소라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화석(化石 fossil)은 생성 당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흔적이 가졌던 위대한 에너지 보관소이기도 하다.
신학자
수정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뉴턴의 유고를 소더비 경매에서 사들이고 확인해 보니, 신학과 연금술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케인즈는 뉴턴을 “마지막 르네상스인”이라 평가하였다.
뉴턴은 삼위일체론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반박하는 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이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교리에 반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감옥에 가거나 사형에 처해질 위험이 있는 일이었다.
4세기 초, 아리우스(Areios 256-336)는 삼위일체 중 성자가 성부에 종속되며, 성자에 성령이 종속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실세 대주교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0-373)에 의해서 배척되어, 아리우스는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으며 그의 글들은 소각되었다. 아리우스는 336년,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 의하여 복권되었다. 그러나 복권 발표 하루 전, 아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거리를 걷다가 갑작스럽게 복통을 일으키며 사망한다. 오늘날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하는 교파는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유니테리안주의(Unitarianism) 정도이다.
신학자 뉴턴의 대표적인 발견으로, “요한의 콤마(Johannine Comma)”를 들 수 있다. 신약성경 요한1서 5장 7절과 8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문은 NIV 성경에 따른 번역이다.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7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8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7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킹 제임스에서는 7절에서 성부, 말씀(성자), 성령을 열거하고 이들은 하나임을 명시하고 있다.
신학자 뉴턴은 킹 제임스 성경의 7절이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반역, 필사하는 과정에서 삼위일체론자들이 인위적으로 삽입한 구절임을 발견하였다. 아리우스 입장에 서 있던 뉴턴으로서는 삼위일체론이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 382년)성경을 제외하고는 여타 성경의 원전에는 삼위일체(Trinity)에 관한 기록이 일체 없다는 것이다.
뉴턴의 설득력 있는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에는 요한 1서 7절의 삼위일체에 관한 구절이 킹 제임스 성경 등 소수의 성경을 제외하고는 삭제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압력과 힘
프랑스 과학자 파스칼(Pascal 1623-1662)은 한때, 예수회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파스칼이 예수회가 이단이라 지목한 성직자들을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위를 설명하는 문헌으로서 「시골 벗에게 부치는 편지(Provincial letters 1656-1657)」가 유명하다. 총 19편으로 이루어진 이 편지에 담긴 유려한 문체는 프랑스 근대 산문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스칼은 동시대의 천재들인 뉴턴이나 라이프니츠와 달리 글재주도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14번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음에도 단지 명예나 재산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살인을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법률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신부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파스칼 지음, 안혜련 역,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이를 오늘의 현실에 빗대어 패러디해 보면,
“목사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맹목적이고 비열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파스칼의 해박한 숫자놀이는 수열과 확률의 기초를 놓았다. 당시에는 신의 영역이라 금기시되던 영역을 수도원 수사의 신분으로 파고든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파스칼은 확률론자로서 전공에 걸맞게 투기성 질문을 던진다.
“성공 확률이 50퍼센트 또는 그 이상이라면 베팅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 불리는 게임이론은 동전 던지기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신의 존재와 지구온난화, 인공지능과 같은 묵직한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핵무기 개발, 게임이론, 컴퓨터, 생명과학 분야에서 만능이었던 과학천재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은 말년에 췌장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 가톨릭에 귀의하였다. 불가지론자였던 그가 가톨릭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은 파스칼의 내기와 같은 매우 단순한 논리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러셀이나 틸리히의 복잡함보다는 의외로 파스칼의 단순함이었다.
힘과 질량과 속도의 관계를 정리한 뉴턴에 이어서, 힘과 압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파스칼의 원리(Pascal’s principle)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P₁ = F₁/S₁
P₂ = F₂/S₂
P₁ = P₂이면,
F₂ = F₁ × (S₂/S₁)
여기서 P는 압력, F는 힘, S는 단면적을 뜻한다.
물이나 기름과 같은 비압축성 유체를 넣은 밀폐된 관에서, 서로 단면적을 달리하면 작은 압력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비압축성 유체 압력을 이용하여,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리를 적용한 분야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각종 펌프류, 로봇 등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동일 면적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가 같다고 함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창조의 원리에 맞닿아 있다. 신의 작은 손짓 하나가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의 시공간에서 질서 있는 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힘을 정적으로 보면 압력이 되고, 동적으로 보면 만유인력이 된다.
자연과학에서 어느 것 하나도 발명은 없다. 발견만이 있을 뿐이다. 발견은 신에게 감사할 일이지 자랑할 일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파스칼이나 뉴턴이나 다윈 중 누구도 신에게 감사하지 않은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과학자들은 원자폭탄과 허블망원경이 나오고 나서 많이 자만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공로를 독차지하는 것은 교만함이다. 치료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우연과 기적의 섭리까지도 독점해서는 안된다.
수전해
태양은 태양계의 주인으로서 나이는 46억 년이며 앞으로 남은 수명은 50억 년 정도로 추정된다. 태양은 지구보다 109배 더 크며 33만 배 더 무겁다. 태양 질량의 75퍼센트는 수소, 25퍼센트는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다. 헬륨이 수소 융합의 결과물임을 고려하면 태양은 사실상 수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은 1초당 5.7억 톤의 수소를 태워서 헬륨으로 바꾸며, 핵융합 과정에서 감소한 426만 톤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하여 E=mc²에 따라 3.9 × 10²⁶ J(Joule 주울)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열과 빛은 태양이 자기 몸의 수소를 태운 희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소가 중요하다.
수전해(水電解)는 물에 전기에너지를 가하여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으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수전해 기술에는 네 가지 주요 방식이 있다.
알칼라인 수전해(AEC, Alkaline Electrolysis)는 알칼리 전해액을 이용하여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이다. 수전해 방법 중 일찍부터 연구가 진행되어 온 기술로서 안정적이고 상용화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전해액을 수시로 보충해 주어야 하며 부식 위험이 있어 효율이 낮고, 설비가 커서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한다.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PEM, Polymer Electrolyte Membrane)는 액체 전해질 없이 순수한 물을 전기분해하여 분리막을 통하여 양이온을 이동시키는 기술이다. 이 방식은 에너지 효율이 높고 장치의 소형화가 가능하지만, 초기 설비비용이 매우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AEM, Anion Exchange Membrane)는 음이온 교환막을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저가의 촉매를 사용하고 생산성과 효율이 높고 소형화도 가능한 기술이지만, 아직은 성능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고체산화물 수전해(SOEC, Solid Oxide Electrolysis Cell)는 고체산화물 전해질을 이용하여 섭씨 약 800℃ 이상의 고온 수증기를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부식에 강하고 전해질을 보충할 필요가 없어 유지보수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8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고체전해질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 네 가지 방식은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라는 전 지구적 당면 과제를 전제로 한다. 수전해의 궁극적인 목표는 1차적으로 물을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고, 2차적으로는 생산한 수소를 이용하여 전기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저렴하고 친환경적으로 물을 분해하는 기술이 표준화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수소에너지
지구의 대기는 78퍼센트의 질소와 21퍼센트의 산소, 이산화탄소 0.04퍼센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이 수소를 태워 만든 햇빛에너지의 작용으로 산소와 탄소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고,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여 물이 된다. 다음 단계로, 이산화탄소와 물이 결합하는데 여기에는 조류(algae)나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또는 육상식물의 엽록체(Chloroplast)가 관여하여, 생명의 양식인 탄수화물을 생성하고 부산물로 산소를 배출한다. 이를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 한다.
광합성의 화학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6CO₂ + 12H₂O + 빛에너지 → C₆H₁₂O₆ + 6O₂ + 6H₂O
광합성이 활발해지자 대기 중에 산소가 많아져서 공룡처럼 적응을 잘한 생물은 몸집이 커지고, 혐기성 생물은 산소의 독성으로 말미암아 어둠 속으로 숨어들거나 소멸하였다. 한편 엽록체와 함께 외부에서 세포 내에 들어 온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생명 에너지를 발전한다.
생물은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蛋白質 Protein)을 필요로 하는데, 단백질을 구성하는 성분이 아미노산(Amino Acid)이다. 단백질은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고분자 유기물질로서 호르몬, 효소, 항체 등을 구성하는 성분이기도 하다. 아미노산은 수소, 탄소, 산소, 질소가 결합하여 몸 안에서 직접 합성하거나 외부 음식물을 섭취하여 얻어진다. 아미노산은 아미노기(-NH₂, Amine)와 카복실기(-COOH, carboxyl group)가 탄소를 중심으로 결합한 구조를 가진다. 세포 내 리보솜(ribosome)은 RNA의 도움을 받아 아미노산을 연결하여 단백질(protein)을 합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만들어지자, 식물과 동물의 생명 싸이클이 형성되었다.
수소, 탄소, 산소, 질소와 같은 원천 재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태양의 수소 연소 즉, 핵융합 반응으로 헬륨이 만들어지고, 수소와 헬륨의 원자핵이 서로 융합하여 탄소, 산소, 질소 등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공은 양자 하나와 전자 하나를 가진 수소라는 물건인 셈이다. 수소를 태워서 다른 원소를 만들고, 만들어진 원소는 다시 수소와 결합하여 여러 가지 모양의 유기체를 만들며, 유기체들은 결합하여 수많은 생명체를 만들어내었다. 얼핏 자연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다 하고 창조주는 별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최초의 수소가 우주의 암흑 속에서 먼지나 반죽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빅뱅의 주체는 무엇인가? 우주먼지나 암흑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주를 유지하고 있는 질량과 에너지와 힘과 중력과 온도와 압력과 속도와 가속도의 주체는 무엇인가? 우주와 생명현상을 과학으로 다 규명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역설적으로, 알 수 없음이 과학의 동기가 유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모르기 때문에 우주와 생명에 대해서 과감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일생을 종교의 경전에 쓰여 있는 내용을 동어반복만 하다 보면, 어느새 무신론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의 질서를 아는 지식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와 과학은 서로 친하다. 오늘 현재, 수소는 태양의 빛에너지에 실려 지구라는 행성에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다. 최근 삼백 년 동안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인류가 자초한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내지 기후재앙이라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 문제가 지구의 자생력이나 자정능력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오래전에 지구에 닥친 위기들, 화산 폭발이나 소행성 충돌이나 생명체의 멸종과 판(Plate)의 이동은 우주의 질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인위적인 것이다. 인류가 자초한 무질서이며 불균형이다. 그래서 기우에 그칠 일은 아니다. 옛날 옛적에 인간이 만든 바벨탑은 무너졌고 언어는 흩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지식만으로도 수소를 새로운 재생에너지로 다루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신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인간의 자유의지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영역으로 여견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