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7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3장 죽음에 관한 판례들


1. 보라매병원 사건


1997년 12월 4일, 58세 남성이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뇌손상을 크게 입고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었다. 신경외과 교수가 집도하고 레지던트 3년 차와 인턴이 참여하여 경막 외 혈종 제거수술을 시행하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뇌부종으로 인해 자발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야 했다. 의식은 없고 자발호흡은 불가능했지만, 동공반사와 통각반응은 남아 있어 중증혼수상태(deep coma)로 추정되었다.

환자의 보호자인 부인은 수술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과 치료비 부담을 이유로 치료 중단 및 퇴원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계속된 요청에 의료진은 사망가능성을 설명하고 귀가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뒤 환자를 자택으로 이송하였다. 환자는 곧 인공호흡기 없이 호흡부전으로 사망하였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의료 과실치사가 아닌 부작위에 의한 살인 또는 살인 방조로 판단하였다. 종전의 의료 과실치사가 살인죄 프레임으로 기소되자 사회적 논란이 크게 일었다.


1심 서울지방법원은 환자가 퇴원하면 사망할 것이 명백함에도 이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부인과 담당의사와 레지던트, 인턴에게 살인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2심 서울고등법원은 인턴에게는 무죄, 담당 의사와 레지던트에게는 살인방조죄와 집행유예, 피해자 부인에게는 살인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3심 대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7년이 다 된 2004년 6월 24일, 담당 의사, 레지던트, 피해자 부인에게 모두 2심 판결과 같은 유죄를 확정하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보라매병원 사건인데, 환자의 퇴원과정에서 의사의 책임을 형사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가 되었다. 대법원은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보증인 지위’로 규정하고 이를 포기하면 형사상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 판결이 의료현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판사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의사들은 울고 싶은 데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기껏 열심히 살려놓았더니 돌아온 것은 살인방조죄라니... 이 사건 이후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대한민국의 의료현장은 방어진료(defensive medicine)가 일반화되었다. 방어진료의 부담은 전적으로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귀착하였다.


법원이 의료행위를 형사법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응하여 첨단의료기기와 어울린 특유의 연명치료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훗날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에 까지 반영되었다. 겉으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병원과 의사의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왜곡된 법체계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행정관료들의 기술이 일조하였음은 물론이다.


2. 김할머니 사건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2008년 2월, 70대 여성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였다. 의료진은 폐암이 의심되어 기관지 내시경 조직검사를 시행하던 중 과다출혈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저산소성 뇌손상이 생겨 환자는 식물인간 상태에 들어갔다. 이후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 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갔다.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평소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병원 측은 연명치료 중단은 사실상 환자의 사망을 초래하는 조치이며,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보라매병원 사건 판례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5월 9일, 환자 가족은 연명치료 중단을 청구하는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존엄사 관련법 부재는 헌법 위배’라는 헌법소원을 제출하였고, 같은 해 6월 2일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인 서울서부지법은 2008년 11월 28일, 존엄사를 인정하고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환자는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식물인간 상태이고, 인공호흡기는 생명연장을 위한 장치일 뿐 질병을 치료하는 의미는 거의 없다고 보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의 진정한 의사(자기결정권)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병원은 항소하였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더 이상 질병의 호전 가능성이 없고 단지 사망 시점을 늦추는 의미만 있는 연명치료는 의료계약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멀며 무의미한 신체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권리임을 인정하였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하여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뒤 논의 끝에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하였다. 이 판결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한 판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은 헌법 제10조를 근거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사’의 논리를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선진 의료국가의 흐름을 반영하였다.


병원 측은 혼란에 빠졌다. 환자의 생명 보호의무를 보증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격상해 위반하면 형사상 처벌을 할 때와 달리, 이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병원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김할머니는 튜브를 통한 영양공급은 유지된 상태에서 6개월 이상 더 생존하여 2010년 1월 10일 사망하였다.


김할머니 가족은 별도의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국가가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들지 않은 것은 환자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입법부작위 위법 소송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2009년 11월 26일 결정을 통하여, 입법부작위가 위헌은 아니라고 하여 헌법소원을 각하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문제는 헌법상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환자 자신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절대적인 공준으로 삼아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입법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가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은 아니다’라고 하여, 다소 후퇴하는 결정을 하였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을 재촉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김할머니 사건과 관련한 재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의 가족에게 미납 진료비 8,600만 원을 청구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김할머니 측은 연명치료 중단 요구 이후 발생한 치료비(2008. 5. 9. – 2010. 1. 10.)를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1심에서는 1심 판결문이 병원에 송달된 시점인 2008년 12월에 의료계약은 종료하였으므로 그 이후 발생한 진료비는 유족이 부담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고 유족은 400만 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2심 판결은 1심을 뒤집고 병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명치료 중단 판결 이후 중단된 것은 인공호흡기 치료뿐이었고, 인공영양공급, 수액 공급, 항생제 투여, 병실 사용은 계속 제공된 의료서비스이므로 유족은 미납 진료비 8,600만 원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2016년 1월, 대법원은 유족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을 확정하였다. 1심 판결 이전 치료비는 가족이 부담해야 하되, 1심 판결 이후 치료비 중 인공호흡기를 제외한 치료비(급식 튜브, 약물 주사 등) 전액을 유족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김할머니 가족은 가처분소송에서 시작하여 헌법소원,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민사소송, 병원비 소송까지 8년에 가까운 법적 투쟁을 이어갔다. 남은 것은 정신적 고통과 소송비용과 막대한 치료비뿐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 가족이 한국의 죽음문화에 기여한 바는 크다. 김할머니 가족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관행화된 병원 측의 일방적 방어진료, 천문학적 진료비, 환자 가족의 극단적 선택과 형사범죄 연루, 그리고 환자 신체 침해의 일상화 현상에 대해 강력한 문제의식과 경고를 보낸 셈이다.


3. 간병살인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중증환자와 말기환자의 퇴원이 사실상 제한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명의료(延命醫療, life-sustaining treatment)가 증가하였고, 그로 인해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한국의 병원들은 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의사 한 명과 레지던트 한 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중환자실과 장례식장을 연결하는 구조적 수익모델이라는 캐쉬카우(cash cow)를 갖게 되었다. 반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극적인 가족 간 살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2003년 10월, 서울 용산구에서 한 아버지가 딸의 인공호흡기 전원을 껐다. 이내 딸은 사망하였다. 8년 전 희귀병을 진단받아 사지가 마비된 20세 딸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까지 팔았으나 결국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장례를 치른 뒤 경찰에 자수한 그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진술하였다. 아버지는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6년 3월, 72세 여성이 말기 간경변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였다. 회복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같은 해 6월, 환자의 딸은 의료진에게 어머니의 산소호흡기 제거를 요청하였다. 의료진 2명은 환자의 상태가 회복 불가능한 말기이며 산소호흡기가 더 이상 치료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산소 공급 호스를 제거하였다. 환자는 곧 사망하였다. 같은 해 12월, 환자의 아들은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의사 2명과 누나를 살인 혐의로 고소하였다.


2007년 4월, 방배경찰서는 의사 2명과 딸을 모두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산소호흡기 제거가 아니라 간경변의 합병증이라는 감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7월, 서울중앙지검은 의사 2명과 딸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는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담당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말기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행위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결정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고려하여, 이번 사건을 비교적 일관된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연명의료결정법의 기본적 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간다는 책임감과 윤리적 신념이 필요하였다. 만약 이 사건에서 의료진이 다른 병원의 예처럼 법적 책임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형식적 치료에 머물렀다면, 제2의 김할머니 사건으로 이어져 오랫동안 지루하고 소모적인 재판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2007년, 전라남도 담양군에 사는 한 아버지는 루게릭병에 걸린 큰아들을 광주 소재 장애인 학교에 등하교시키며 돌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질환이 발병하였다. 큰아들이 머리를 다쳐 기계호흡장치에 의존하는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자, 같은 해 8월 아버지는 직접 호흡기를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이 사건에서 아버지는 불구속 입건에 그쳤고, 담당 의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09년 정부는 암, 희귀 난치병, 중증 외상 환자 등에 대한 치료비를 지원하고 감면하는 ‘산정특례제도’를 도입하였다. 산정특례제도는 고액의 치료비가 필요한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5~10% 수준으로 낮춰주는 매우 획기적인 의료비 지원제도이다. 그럼에도 환자 가족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간병 지원은 제도에서 제외되어 있다. 지원 대상 질환에는 암, 중증 화상,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중증 외상 등이 포함되며, 2023년부터는 만성신부전 환자의 인공신장투석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2012년 10월 19일 밤 9시경, 서울 영등포구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74세)를 2년째 간병하던 남편(78세)이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하는 이른바, ‘간병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珍光이 이 사건의 기록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사건의 경과는 더욱 비극적이다. 남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회사 임원을 역임한 뒤 은퇴하여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은퇴 후의 평온한 생활은 아내가 치매에 걸리면서 순식간에 고통의 연속으로 변하였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부모 없이 자라서 막돼먹었다”, “바람피운 거 다 안다” 등 치매환자 특유의 망상과 의심 증세를 보이며 폭언과 폭행을 반복하자, 남편은 결국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그는 범행 후 스스로 베란다 난간에서 투신하려 했으나, “내가 네 어머니를 죽였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귀가한 아들에게 발견되어 제지되었다. 경찰은 남편을 살인 혐의의 현행범으로 체포해 구속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가 2년간 헌신적으로 어머니를 돌봐 왔다고 진술하며 선처를 호소하였다. 남편에게는 살인죄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유사한 간병 살인 사건들에서 법원은 2년 6개월에서 5년 사이의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법원이 간병 살인에서 양형 감경 요소로 고려하는 사항들을 보면, 장기간의 헌신적 간병, 피고인의 고령과 건강 악화, 우발적 범행, 자수 또는 즉시 신고, 유족의 선처 탄원, 피해자의 폭언이나 폭력, 피해자의 생명 연장 가능성 등이 있다.


2013년 9월, 경기도 포천에서 아들이 뇌종양 말기 상태의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족들은 평소 아버지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안락사를 요청해 왔다며 선처를 호소하였다. 법원은 아들에게 징역 7년, 딸에게는 징역 5년, 부인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같은 해 11월, 충남 당진에서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아들을 25년간 돌보던 아버지가 간병 부담을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자택에 불을 질러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현장 감식 결과, 불에 탄 아버지는 아들을 꼭 껴안은 채 발견되었다.


2020년 6월, 충남 천안에서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기계호흡장치에 의존해 연명하는 상태였다. 남편은 외국인 신분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경제적 부담이 극심하였다. 법원은 남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였다.


2021년 8월, 대구지방법원은 대구 수성구에서 뇌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누워 지내던 아버지에게 인공영양을 중단해 사망에 이르게 한 아들에게 존속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월세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22살의 청년은 1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수술비와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퇴원시킨 뒤 집에서 직접 간병해야 했다. 당시에는 65세 미만 치매환자에게 장기요양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린 청년은 아버지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119에 신고하였다. 이후 구급대원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대법원은 청년에게 존속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4년을 최종 확정하였다.


간병살인은 분명 살인이다. 그러나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아니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나 코마 상태에 이르러서도 치료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의료 환경의 구조적 배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연명의료에 들어가면 이는 죽음의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병원의 법적 책임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장치일 뿐,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명목상에 불과하다.


환자 가족은 치료비와 간병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렵다. 그렇다고 가족 해체가 일반화된 마당에 집에서 간병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치매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현실에서, 현재의 요양원, 요양병원, 호스피스 제도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할머니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첨단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죽음과 돌봄의 복지시계는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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