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2026년에 들어서면서 안락사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 의료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러한 바람이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지 금세 알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과정, 중단 대상에서 제외되는 진료 항목, 의사가 말기환자와 임종과정에 있음을 판단할 때 보이는 방어적 태도,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대한 엄격한 기준,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운영 실태,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부족 문제 등은 모두 힘들게 넘어야 할 과제다. 더 나아가 미성숙한 시신 기증제도와 장기 기증제도까지 개선해야 한다. 그런 후, 설령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어려운 고개를 넘어선다 해도, 그때에야 비로소 적극적 안락사를 논의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 사이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급증하는 고독사 문제, 제3의 길로 모색되고 있는 단식 존엄사 논의 등은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모든 문제를 단순히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의료진을 살인방조죄로 판단한 1심 판사의 결정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
우리가 병원 제도를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서울대 윤영호 교수가 말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각자도생은 어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능동적인 생존전략을 도모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각자도생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환자가 ‘좋은 죽음(well dying)’을 맞이하기 위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고 처절하다. 현행 병원 시스템은 친절하고 품위 있는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결국 목마른 자가 먼저 샘을 팔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근거하여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체계로 구분된다.
의원(clinic) : 병상이 없거나 30 병상 미만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1명 이상의 의사가 기본적인 검사와 진료 등 일차 진료를 담당한다.
병원(hospital, 일반병원) : 30 병상 이상을 갖춘 중소규모 의료기관으로, 일차 진료 외에도 입원 치료, 수술, 전문과 진료 등 이차 진료를 수행한다. 병원 중에는 특정 질환이나 진료분야에 특화된 전문병원(specialized hospital)이 있으며, 이들은 관절, 척추, 심장, 암, 뇌신경 등 특정 영역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담당한다.
종합병원(general hospital) : 100 병상 이상의 시설을 갖추고 일정 수 이상의 진료과를 운영하는 중대형 병원이다. 종합병원은 이차 진료뿐 아니라 중증∙고난도 질환 치료를 포함한 삼차 진료까지 담당한다.
상급종합병원(advanced general hospital) : 정부가 정기적으로 지정하는 의료기관으로, 300 병상 이상을 갖추고 중증∙고난도 질환 치료를 담당한다.
대학병원(university hospital) : 의과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상급종합병원(대학교병원)과 종합병원(의대 부속병원)으로 구분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요양병원 수는 약 1,500개에 달한다. 요양병원(long-term care hospital)은 의료법에 근거한 병원급 의료기관으로서 비영리법인 형태를 가지며 30 병상 이상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입원환자 40명당 1명 이상의 의사, 6명당 1명 이상의 간호사, 100명당 1명 이상의 물리치료사를 두어야 한다.
요양병원은 급성기 치료(수술, 고위험 항생제, 중환자실 수준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 재활 및 장기요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가, 비급여 수익, 정부 보조금, 기부금에 의존하는 구조이므로 운영이 쉽지 않다. 실제로 의사가 상시 근무하지 않는 요양병원이 절반을 넘는다는 지적이 있으며, 일부 기관은 수가가 높은 연명의료에 의존하거나(인공호흡기, 인공영양공급 등) 비급여 진료를 과도하게 권유하기도 한다.
요양병원은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보완적 기능을 담당한다. 중환자실(ICU)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환자를 계속 입원시키는 것은 중증∙응급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취지에 맞지 않으며, 환자와 가족에게도 큰 비용 부담을 준다. 또한 건강보험공단이나 심사평가원의 규제에 따라 병원 측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은 의료사회복지사를 통해 급성기 치료가 끝난 환자에게 돌봄과 재활을 제공하는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하게 된다. 집이나 요양원에서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 치매, 뇌졸중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가족이 주도하여 요양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있다.
요양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로 제기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환자가 ‘임종기간에 있음’을 판단하기 위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2.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확인되어야 한다.
3.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의 심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전문의가 상주하는 경우가 드물고, 윤리위원회 설치 의무도 없다. 따라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병원(대학병원, 종합병원)이나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이송하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설사 연명의료를 중단한다 하더라도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은 중단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지속된다.
복잡한 절차와 규정은 그렇지 않아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하며 괴롭히는 결과를 낳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누구의 부작위나 책임을 명확히 묻기 어려운 가운데, 매뉴얼에 의해 환자의 죽음이 연장되고 고통이 지속되며 신체가 훼손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현장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 요양기관 현황에 따르면 전국 요양원(노인요양시설) 수는 약 4,000개에 달한다. 요양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노인의료복지시설’로 분류된다.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요양시설(요양원)’을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입소시켜 급식∙요양 및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입소자 10인 이상의 시설’로 정의한다. 입소자가 9인 이하인 시설은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라 부른다. 관련 법률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사회복지사업법이 있다.
요양원은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으로서 1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사회복지사와 함께 어르신 2.5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배치해야 한다. 대략적으로 보자면, 치매 환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담당하고, 말기 암환자는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전담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요양원 시스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이 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의 건강 증진과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인정신청 :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환 대상자는 국민건강보함공단에 의사가 발급한 소견서를 첨부하여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제출한다.
2) 방문조사 : 공단 직원(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은 신청인의 거주지를 방문하여 신청인의 심신 상태와 필요한 장기요양급여의 종류 및 내용을 조사한다. 조사원은 신청인의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관찰∙측정하고, 신체 및 인지 기능을 점수화하여 장기요양인정 점수를 산정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 소견서와 가족의 진술도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3) 등급판정 :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방문조사가 완료되는 즉시 조사결과서, 신청서, 의사소견서 및 기타 심의에 필요한 자료를 등급판정위원회에 제출한다. 위원회는 의사, 사회복지사, 자치단체 공무원, 전문가 등 15인으로 구성한다. 위원회는 심의 자료를 검토하여 신청인이 자격 요건을 충족하고,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급판정 기준에 따라 수급자로 판정한다. 등급을 받으면 ‘장기요양인정서’와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가 교부된다. 등급판정은 신청서 제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완료되어야 한다.
* 장기요양등급 판정기준
1등급 : 95점 이상
2등급 : 75점 이상 95점 미만
3등급 : 60점 이상 75점 미만
4등급 : 51점 이상 60점 미만
5등급 : 45점 이상 51점 미만
인지지원등급 : 45점 미만
실무적으로 장기요양 인지지원등급은 치매 대상자로서 ‘경도인지장애’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하며, 장기요양 5등급은 치매 대상자 중 휠체어, 보행기, 지팡이 등에 의존하는 ‘초기 치매환자’를 의미한다.
4) 급여이용 : 1~2등급은 원칙적으로 시설급여(요양원 입소) 대상이며, 3~6등급은 재가서비스(방문요양, 주야간보호) 대상이다. 다만 3~5 등급 대상자 중, 가족 돌봄이 불가능하거나 독거 상태, 주거환경이 취약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별도 심사를 거쳐 요양원 입소가 가능하다.
급여 유형에는 재가급여(방문요양, 방문간호, 방문목욕, 주야간보호센터 이용, 단기보호), 시설급여(장기요양기관 입소), 그리고 가족요양비(제한적) 등이 있다. 장기요양급여 갱신을 위한 유효기간은 1등급 5년, 2~4등급 4년, 5등급 2년, 인지지원등급 1년이며, 방문조사와 등급판정위윈회 심의를 거쳐 등급과 급여가 결정된다.
요양원 이용 시, 기초생활수급자는 본인부담금이 면제되며, 일반 수급자는 시설급여 20%, 재가서비스 15%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설급여 총비용이 55,000원 * 30일 = 1,650,000원일 경우, 이 중 본인부담금 20%는 330,000원이며, 여기에 식재료비, 간식비, 개인용품 등 비급여 200,000원을 포함하면 월별 본인부담 총액은 530,000원이 된다. 재가급여의 경우에 본인부담금은 20만~30만 원 수준이다.
2023년도 대한중환자간호학회지에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How to die well?)’라는 주제로 설문 및 면접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조사대상자들은 임종과정에서 원하는 치료로 ‘충분한 통증 조절’을 꼽았다. 반면 원치 않는 치료로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의료, 인공영양‘을 선택하였다.
임종을 희망하는 장소는 압도적으로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선호하였으며, 그 이유로 통증 조절(고통 감소), 연명의료 중단, 자연스러운 임종을 들었다. 논문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호스피스 기관에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약하면 의료진이 바라보는 좋은 죽음은 ’ 고통 없는 죽음‘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의사 박중철은 “의료기술주의에 도취된 중환자실 종사자들이 환자에게는 ‘최선’이라는 명분으로 연명의료를 시행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지적은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죽음 인식 간 괴리를 드러내며, 연명의료 결정 과정의 구조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이것은 비단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엄격하고 보수적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정작 자신의 부모가 환자가 되었을 때에는 연명의료를 거부한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에서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말기환자’로 진단을 받아야 하며,
둘째, 4대 질환에 해당해야 한다.
4대 질환은 말기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이다. 그러나 의료진이 ’ 말기환자‘ 진단을 늦게 내리면 내릴수록 호스피스 서비스는 장례식장에 가기 전 잠시 들르는 정거장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2025년 기준 중앙호스피스센터의 호스피스 전문기관 현황에 따르면,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총 202개소, 1,862 병상이며, 이 중 입원형 호스피스는 103개소, 1,798 병상이다. 시험적으로 운영 중인 요양병원 호스피스는 6개소, 64 병상이며, 자문형 호스피스는 42개 소다. 입원을 원하는 환자 수에 비해 호스피스 기관이 부족하여, 입원 대기 기간은 수 주에 달하고, 사망 환자의 호스피스 평균등록기간은 25.6일에 불과하다. 이는 말기환자가 너무 늦게 호스피스 서비스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소한 수개월 전부터 입소해 고통 없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호스피스 제도의 근본 취지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입원형 호스피스의 만족도는 94.8%로 매우 높다. 이는 병원죽음과 자택죽음 사이에서 환자와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매우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대형병원에 호스피스 병동 설치를 의무화하기 어렵다면, 요양병원을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통합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호스피스가 죽음 문화를 위한 주요 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 현행과 같은 점진적 방식은 지나치게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우선순위를 두고 결단해야 할 중요한 어젠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호스피스 제도는 대만에 비해 체계와 보장 수준 면에서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 2024년 한국의 신규 호스피스 등록 환자 수는 24,209명이며, 이용률은 2023년 기준 26.2% 수준이다. 즉, 대략 4명 중 1명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은 대형병원 호스피스 병동 의무화와 공적 재정의 광범위한 부담을 통해 이용률이 60~70% 수준으로 보고되며, 자문형(콘설테이션) 모델의 확대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차이가 이용 접근성과 시의성에서 격차를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