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11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6장 생존과 죽음 사이


1. 심폐사


한국에서 사망의 기준은 심폐사다. 심폐사(心肺死)란 심장과 폐의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완전히 멈추어 더 이상 혈액 순환과 산소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폐보다는 심장이 자율성(autorhythmicity)을 가지고 있어 심장이 더 늦게 기능을 상실하므로, 심장 박동이 정지하는 시점이 사망의 기준이 된다.

* 심장의 자율성 : 심장이 뇌의 직접적인 명령 없이도 스스로 전기적 자극을 발생시켜 박동을 만들어내는 성질을 말한다.


* 의료현장에서 심폐사의 판단 기준

1) 심장활동의 정지 : 심전도 등 모니터링을 통해 심장의 전기적, 기계적 활동이 더 이상 관찰되지 않고, 혈액을 순환시키지 못하는 상태로 확인된다.

2) 자발호흡의 정지 : 폐에서 공기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발적 호흡이 완전히 멈춘 상태로 확인된다.

3) 혈압∙맥박의 소실 : 맥박 측정이나 혈압 장비를 통해 순환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맥박이 잡히지 않고 혈압이 측정되지 않는 경우, 생명유지가 불가능한 상태로 평가한다.

4) 비가역성의 확인과 사망 선포 : 적절한 응급처치(CPR)를 시행해도 회복 불가능하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되면 의료진이 사망을 선언한다. 단, 저체온이나 약물 영향 등 일시적 요인으로 기능이 감소한 상황은 배제한다.


심장과 폐 중 어느 하나만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결국 다른 하나도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심장이 멈추면(심정지) 폐가 기능을 유지하더라도 혈액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소가 전신에 공급되지 못하고, 결국 뇌와 다른 장기가 손상된다. 따라서 심정지는 곧바로 심폐사로 이어지며, 즉시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해야 한다. 폐가 멈추고(호흡정지) 심장이 뛰고 있더라도 산소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혈액 내 산소가 고갈되어 결국 심장도 멈추게 된다. 인공호흡기나 기계적 환기장치로 일시적으로 보조할 수는 있지만, 회복되지 않으면 심폐사로 진행한다.


응급실에 실려온 심정지 환자에 대해 의료진은 생존사슬(chain of survival)에 따라 여러 조치를 진행한다. 심정지 환자의 뇌 손상은 일반적으로 4~6분 사이에 시작되므로, 가능한 한 4분 이내에 CPR을 시작하는 것이 권장된다. 응급실의 풍경을 시뮬레이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응급실 도착 직후)

간호사 A : “환자 심정지 상태입니다! 바로 심폐소생술 시작합니다”

의사 : “심전도 모니터 연결하세요 제세동기 준비합니다”

간호사 B : “산소공급기 연결 완료, 앰부백으로 환기 시작합니다”


(1~2분 경과: 기본 소생술 진행)

의사 : “흉부압박 계속하세요 리듬 확인합니다”

간호사 A : “심전도상 무맥성 심실세동(VF)입니다.”

의사 : “제세동 200J 충전! 모두 떨어지세요… 충격합니다!”

간호사 B : “충격 완료, 바로 흉부압박 재개합니다.”

* 1J(joule) = 1watt∙second


(3~5분 경과: 약물 투여)

의사 : “정맥로 확보하세요 에피네프린 1mg IV 투여합니다”

간호사 A : “에피네프린 준비 완료, 투여했습니다”

의사 : “2분 후 리듬 다시 확인합니다”

(6~8분 경과: 추가 처치)

간호사 B : “리듬 여전히 심실세동입니다”

의사 : “아미오다론 300mg IV 볼루스 투여하세요”

간호사 A : “투여 완료했습니다”

의사 : “제세동 다시 준비, 300J 충전합니다 모두 떨어지세요… 충격합니다!”

(9~12분 경과: 기도 확보)

의사 : “환기 효율 떨어집니다 기관 내 삽관 준비하세요”

간호사 B : “튜브 7.5 준비 완료, 라링고스코프 세팅했습니다”

의사 : “기관 내 삽관 완료, 위치 확인했습니다 산소 100%로 환기합니다”


(12~15분 경과: 리듬 회복 시도)

간호사 A : “심전도상 자발 순환 회복(ROSC) 확인됩니다 혈압 90/60mmHg”

의사 : “좋습니다 혈압 유지 위해 노르에피네프린 소량 시작하세요 ABGA 채취하고, 심초음파 준비합니다”

간호사 B : “환자 안정화 단계로 넘어갑니다”

* 용어 해설

(장비)

심전도 모니터(ECG monitor) : 심장의 전기활동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치, 리듬 분석에 필수

제세동기(defibrillator) : 심실세동(VF) 같은 치명적 부정맥을 전기충격으로 교정하는 장치

앰부백(ambu bag): 수동으로 눌러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

산소 공급기(oxygen supply) : 고농도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

라링고스코프(laryngoscope) : 기관 내 삽관 시 성문(glottis)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 튜브가 식도(esophagus)가 아닌 기관(trachea)으로 정확히 들어갈 수 있도록 확보

기관 내 튜브(endotracheal tube) :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기 위해 기관에 삽입하는 튜브

(약물)

에피네프린(epinephrine, adrenaline) : 심정지 시 1mg IV로 투여, 심장 수축력과 혈압을 높여 소생 가능성을 증가시킴

아미오다론(amiodarone) : 항부정맥제, 심실세동 지속 시 300mg IV 볼루스(bolus)로 1회 투여, 필요시 추가로 150mg을 투여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 혈압 유지용 약물, ROSC 후 저혈압 환자에게 사용

(의학용어)

무맥성 심실세동(pulseless ventricular fibrillation, VF) : 심실이 무질서하게 떨리며 수축하지만 맥박이 없어 혈액을 전혀 내보내지 못하는 상태

정맥로 확보(IV access) : 약물 투여와 수액 공급을 위해 정맥에 주사 바늘이나 라인을 삽입하는 행위

환기 효율(ventilation efficiency) : 환자의 폐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제세동 200j : 제세동기에 설정하는 전기 에너지의 양, 1J(joule) = 1watt∙second

IV 볼루스(bolus) : 정맥으로 한 번에 빠르게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

기관 내 삽관(endotracheal intubation) :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기관 내 튜브를 삽입하는 행위

튜브 7.5(ET tube size 7.5) : 기관 내 튜브의 내경(mm), 성인 남성에서 흔히 사용되는 크기

자발순환회복(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ROSC) : 심정지 환자에서 심폐소생술 후 심장이 다시 스스로 박동하여 혈액순환이 회복된 상태

ABGA(arterial blood gas analysis) : 동맥혈 가스 분석. 산소, 이산화탄소, PH 등을 측정해 호흡과 대사 상태를 평가


2. 뇌사 식물인간상태 코마


의료기술의 발달로 심폐사가 인공적으로 연장되면서 뇌사, 식물인간 상태, 코마의 구분이 중요해졌다. 뇌의 대뇌피질이 담당하는 고등 인지 기능(의식)과 뇌간이 담당하는 생명 유지 기능이 모두 소실된 뇌사 상태에서도 심장 박동이 유지될 수 있으나, 과거에는 이를 사망으로 공식적으로는 간주하지 않았다. 따라서 장기 기증이 가능하려면 예외적으로 뇌사도 사망으로 인정되어야 했다. 역사적으로 선구적인 의사들이 장기 이식을 시도하였고, 이후 법적으로 뇌사를 조건부로 인정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한국에서는 식물인간 상태(PVS)나 깊은 혼수상태(coma)를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영양 공급이나 수액 공급과 같은 기본적인 돌봄 행위가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진이나 환자 가족은 살인죄 또는 살인방조죄의 그물에 포획될 수 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식물인간이나 코마로 진단되면 환자는 의료진에 의해 무기한으로 생명이 연장되는 연명의료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며, 이 기간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밖에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윤리적∙법적 책무를 맹목적으로 지켜야 하고, 가족은 효도 콤플렉스와 치료비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뇌사는 대뇌피질과 뇌간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어 자발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공호흡기와 약물로 심장 박동을 유지할 수 있으나, 의학적으로는 사망으로 판정되며, 장기 이식이 가능한 상태이다.


식물인간 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는 대뇌 기능은 상실되어 의식은 없지만, 뇌간이 살아 있어 자발 호흡과 심장 박동은 유지된다. 회복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법적으로는 생존으로 간주된다.


코마(coma)는 혼수상태로, 의식이 없고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뇌 일부 기능은 남아 있어 자발 호흡이 가능하며, 일정 기간 후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3. 사례연구 : 도착 시 이미 사망(DOA, dead on arrival)


사망 후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영혼은 이미 좋은 곳으로 훌훌 날아갔지만 남겨진 몸은 끝없이 수고를 겪는다. 비록 시신일지라도, 낯선 사람들이 몸에 손을 대어 이리저리 옮기고 장시간 붙잡아 두는 일련의 행위들이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죽음을 맞이했는가이다. 병원이나 요양병원, 호스피스 기관에서 임종하면 담당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것으로 곧바로 장례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요양원에서의 임종이나 자택 사망은 복잡해진다. 자택에서 사망(자연사: 노화나 질환으로 인한 병사)이 발생한 환자를 앞에 두고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제목 : 장례식장 가는 길


(등장인물)

유가족 A, B: 환자의 가족

구급대원 1, 2: 119 구급대원

응급실 직원

응급실 의사

장례식장 직원


장면 1: 자택 거실

(무대: 침대에 누운 환자, 가족들이 주변에 모여 있다 조명은 어둡고 긴장된 분위기)

유가족 A: (떨리는 목소리) “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아요… 몸이 차갑습니다.”

유가족 B: “119에 신고합시다.”

(전화벨 소리, 무대 뒤에서 구급대원 목소리)

구급대원(전화): “네, 자택에서 심정지 의심 상황이군요.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장면 2: 구급대원 도착

(사이렌 소리, 구급대원들이 들것과 장비를 들고 들어온다)

구급대원 1: “환자분 상태 확인하겠습니다… 심정지입니다. 바로 CPR 시작합니다.”

(구급대원 2가 흉부 압박, 구급대원 1은 앰부로 산소 공급)

유가족 A: “살릴 수 있는 건가요?”

구급대원 1: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고령 환자분이라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면 3: 구급차 안

(무대: 구급차 내부, 사이렌 소리와 CPR 리듬, 무전기 소리)

구급대원 2: (무전) “여기는 ○○구급대, 심정지 환자 이송 중입니다. 응급실 준비 부탁드립니다.”

응급실 직원(무전 응답): “네, DOA 가능성 있는 환자, 접수 준비하겠습니다.”

유가족 B: (눈물 흘리며) “아버지가 고통 없이 떠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구급대원 1: “저희는 끝까지 시도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최종 확인을 합니다.”

장면 4: 병원 응급실

(무대: 응급실. 의사와 직원이 대기, 구급대원이 들것을 밀고 들어온다.)

응급실 직원: “환자분 접수합니다. 가족분은 잠시 대기해 주세요.”

응급실 의사: (환자 확인 후) “환자분은 이미 사망 상태로 도착하셨습니다. 자연사로 판단합니다.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겠습니다.”

유가족 A: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급실 직원: “사망진단서를 받으신 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장면 5: 장례식장 안치실

(무대: 장례식장 안치실, 조명이 차분하게 바뀐다)

장례식장 직원: “환자분을 안치실로 모시겠습니다. 가족분은 장례 절차를 상의하시면 됩니다.”

유가족 B: “네, 준비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상의해서 장례를 진행하겠습니다.”

장례식장 직원: “장례 일정과 절차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차분히 준비하시도록 돕겠습니다.”

(조명 서서히 어두워지며, 가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무대 중앙에 남는다 사이렌 대신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응급실 의사가 볼 때, 사망자가 자연사(병사)가 아닌 변사(變死 : 범죄, 사고, 자살, 불상 등)로 의심되는 경우, 시신은 병원 내 영안실(안치실)에 보관되고 경찰에 통보된다. 이때 의사는 사망진단서 대신 시체검안서를 발급하며, 경찰은 검시필증을 발급한다. 범죄나 사고가 강하게 의심되면, 경찰은 검사와 협의하여 시신을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송해 부검을 진행할 수 있다.


‘응급실 뺑뺑이’로 이송할 응급실을 찾지 못하는 경우, 장시간 CPR(심폐소생술)로 인해 시신이 훼손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늑골(갈비뼈) 골절, 흉골 골절, 내부 장기 손상, 피부 손상 등이 동반될 수 있다. 구급차에 동승한 가족은 이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기존의 지역소방본부 산하 구급상황관리센터 외에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이 시범적으로 설치되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3인으로 구성된 24시간 상주 시스템이 확립되면서 응급실 상황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계속)

작가의 이전글히스토리 D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