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A-2

제3장 카파르 제4장 자연선택과 지적설계

by 김진광

제3장 카파르


쿠심

문자가 나오기 전에 숫자가 먼저 발명된 것은 분명하다. 기원전 1만 년경 소위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야생식물 몇 가지를 일정 공간에 모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말하는 ‘식물의 작물화’이며 농업혁명의 시작이었다. 또한 야생동물 중 몇 종류를 길들여 일정 공간에 가두어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를 ‘동물의 가축화’라 부른다.


한편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이를 보관 저장 유통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농업혁명이 인류역사상 최대의 실수라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견해를 따른다면, 식물의 작물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벼,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 사탕수수에게 자리를 양보하여야 할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인류는 야생의 벼나 밀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 이들을 한곳에 모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온갖 질병과 빈곤과 계급과 전쟁의 구덩이를 스스로 판 것이다. 아무튼 농업사회의 진전에 따라 귀족, 평민, 노예라는 계급질서가 생겨나고 성문법전이 공표되었다. 시스템을 유지하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관료집단을 중심으로 인구와 생산물을 계수하고 법을 집행하고 세금을 징수하게 되면서,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권력은 강화되었다.


수십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회생활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몇 사람의 뇌로 이를 관리하기에는 메모리 과부하 현상이 발생하였다. 인간의 뇌는 용량에 한계가 있고 인간이 죽으면 뇌 역시 소멸한다. 더구나 인간의 뇌는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기억하고 가공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쓰기’라는 새로운 데이터 처리시스템이 필요하였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쓰기’와 ‘문자’를 발명하게 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기원전 3천 년경 고대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사람, 동식물, 날짜 등의 기호와 숫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우루크(Uruk) 신전의 점토판 문서에는 ‘보리 29,086자루 37개월 쿠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29,086자루의 보리를 37개월에 걸쳐 쿠심이 받았다는 내용을 표시하는 증빙서류로 추정되는데, 쿠심(Kushim)은 맥주 양조업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쿠심’은 세계사에 기록된 최초의 사람 이름이자 맥주보리 차용증명서에 서명한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다.


기원전 2천 년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를 기록한 점토판에서, 신전 여인 샴하트(Shamhat)가 길가메시의 친구 엔키두(Enkidu)에게 맥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생명이라고 이야기한다(shikarum napish tum sha matim). 이를 미루어 볼 때,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보리맥주는 인도의 소마(Soma),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에서의 와인처럼 신성시되는 음료였던 것 같다.


숫자에 더 많은 기호가 추가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표의문자, 페니키아에서 표음문자가 생겨났다. 표음문자는 다시 음절문자(syllabary)와 음소문자(alphabet)로 나뉜다. 문자 시스템이 인간의 역사에 준 충격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면, ‘자유연상법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문자의 발명이 위와 같은 피상적인 제도 변화에 그친 것만은 아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문자라는 신비스러운 물건을 선택하기 위하여, 큰 뇌와 두 발로 걷기의 부담을 감수하여야 했다. 인류가 현재의 이득을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한 대가는 문명과 역사라는 미래의 이득이었다.


문자(文字)는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시각적인 기호체계이다. 기원전 3천 년 전후, 신석기시대 말기로부터 청동기시대 초기에 걸쳐 인류가 바퀴와 채색토기와 유리와 청동기와 점토판을 잇따라 발명하였다. 말에 굴레를 씌우기 시작하면서 마차와 말 탄 기병이 나타났다. 문자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왕조의 도시국가 문명을 비롯하여 이집트문명, 그리스의 에게문명, 인도의 모헨조다로문명, 중국의 고대문명이 앞서거나 뒤서며 발생하였다. 앞서 하우저의 날카로운 지적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인류는 뇌 기억에 의한 포토이미지를 일부 양보하는 대신, 문자에 의해 기록을 저장·보관함으로써 문명과 발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라는 말의 기원은 중국 후한(後漢) 시대 학자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 121년)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문해자는 당시 자리 잡은 소전체(小篆体)를 기반으로 한 2천여 한자를 부수(部首)별로 분류·해석해 놓은 자전(字典)이다.


구약성경이나 헤로도토스(Herodotus BC 484-425)의 「히스토리아(Historia)」,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이 있다. 그 시대의 역사가들은 감정을 표현해야 할 대목에서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고 극사실적으로 세밀하게 기술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당시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비교적 적게 만들어지다 보니 같은 글자를 중의적으로 사용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신화가 역사로 이행하는 시기에 기록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부러 보다 절제된 표현을 사용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카파르의 진실

고대에서 중의적으로 쓰였던 단어들의 의미가 세분화되면서 다양화된 예는 많다. 영어 cover는 ‘덮개’, ‘뚜껑’, ‘덮다’, ‘씌우다’, ‘가리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노래 원곡을 흉내내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단어의 고대 발음은 카파르(kpr)이며 수메르어, 히브리어, 아랍어에서도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고대어에서 cover는 단순히 뚜껑을 덮는다는 뜻 외에도 속죄하다(atonement), 화해하다(reconcile), 정화하다(purify), 속전(ransom), 보상(compensation)이라는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뚜껑’ 또는 ‘뚜껑을 덮는다’는 단순한 낱말 속에 죄를 용서하고 화목하고 대속(代贖)을 위해 희생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내는 거대한 담론이 숨어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38장에는 야곱(Jacob)의 4남 유다(Judah)가 며느리 다말(Tamar)을 창녀(harlot, prostitute)로 오인하여 동침하게 되는 장면에서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16절)’라는 표현이 나온다(킹제임스 성경에서는 ‘let me come in unto thee’, NIV 성경에서는 ‘let me sleep with you’). 고대에서 ‘안다(see/know)’는 단순히 보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성적 관계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였다. 그리스 로마에서 norm은 규범이나 기준에 그치지 않고, 노예 등에게 주어진 일의 일정량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계획경제의 ‘노르마(할당량 제도)’로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기원전 5세기에 유행하였던 그리스 비극은 제한된 단어 속에서 비극적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珍光은 생각한다. 의사소통에 단어의 수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한된 단어 내에서도 코러스와 가면과 무대장치와 리액션을 하는 데 적극적인 관객과 그들만의 시대적 공감대 속에서 그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꽃에게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슬픔을 전달하는 데에는 몸짓만으로 충분하였다.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 세계 지성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 당대의 성경학자 70인이 모여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칠십인역(Septuagint)’이라 불리는 이 역사적 작업은 곧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다. 유일신 여호와의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할 그리스어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 사이의 낭만적인 사랑을 뜻하는 Eros, 우정을 뜻하는 Philia, 심지어 스승과 제자 또는 성인 남자와 미소년과의 동성관계를 뜻하는 Pederastia는 있어도,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단어는 없어 고심 끝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이것이 Agape다. 아가페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한편, 성찬의식의 의미로도 쓰인다. 예수가 로마 법정으로 끌려가기 직전 제자들과 나누는 최후의 만찬은 단순한 식사 자리라기보다는 아가페를 실천하는 자리였다. 신의 사랑은 같이 모여 떡을 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 같다. 아가페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확실한 견해는 보이지 않으나 珍光의 견해로는 히브리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아하바(Ahava)’를 음차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엘리야

사마천이 「사기(史記)」 제7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공자(孔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春秋)를 지었으며 굴원(屈原)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離騷)를 지었고 손자(孫子)는 다리를 잃고 병법(兵法)을 논하였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나라에 좌천되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전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맺힌 울분을 토로하고 발산시키기 위하여 지나간 일을 서술하는 듯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견한다. 여기에서 사마천은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감정이입하고 있다. 성경이나 사기에서 보이는 건조하고도 담담한 서술 가운데에서 드물게 감정이 드러나는 사례를 몇 가지 찾아보기로 하겠다.


1) 구약성경 열왕기상(列王記上) 19장

“선지자 엘리야(Elijah)가 이세벨 왕비(Jezebel 페니키아 왕 엣바알의 딸로서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Ahab)의 아내, BC 9세기경)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브엘세바에 이르러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다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 로뎀(Rodem)나무 아래에서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더라”


2) 구약성경 느헤미야(Nehemiah) 8장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여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레위(Levi)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풀이하여 깨닫게 하니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Ezra BC 5세기경)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3) 신약성경 사도행전 20장

“바울이 밀레도(Miletus)에서 사람을 에베소(Ephesus)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예루살렘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바울은 원래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를 핍박하던 자이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환상을 접하고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후로 이방에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자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방인 전도를 하는 동안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Abraham)이래 내려온 오래된 전통이자 징표인 할례를 무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육체적 할례보다는 정신적 할례를 주장하였다.


회심한 바울은 유대인들의 적이자 옛날의 동지였던 바리새인들의 적이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으로 오는 즉시 성전을 모독한 혐의로 살해될 처지에 놓였다. 예루살렘교회는 예수 사후 로마제국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고 매우 궁핍한 가운데 있어 바울이 모아온 후원금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돌아오자마자 붙들려 재판정으로 끌려간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임을 항변하여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받기를 주장하였다. 로마로 끌려온 바울은 2차에 걸친 재판 끝에 네로황제 치세에 순교하게 된다. 바울의 순교 전,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James 예수의 형제)도 처형당한다(AD 62).


4)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제70 태사공자서

“태사공(사마천 자신을 말함)은 이릉(李陵)의 화를 입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이 내 죄인가, 이것이 내 죄인가, 몸이 훼손되어 쓸모없게 되었구나.”


사마천은 흉노와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항복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았다. 사마천의 주요 연표를 보면,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태어나 태사령이 되어 천문지리학자였던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지를 실천하던 중, 기원전 99년에 이릉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출소한 후 기원전 91년에 사기를 완성한 뒤 5년 후에 사망하였다.


제4장 자연선택과 지적설계


팡글로시안 패러다임

「산마르코의 스팬드럴과 팡글로시안 패러다임(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은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와 리처드 르윈틴(Richard Charles Lewontin 1929-2021)이 공동 집필한 논문 제목이다. 부제는 ‘적응주의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이다. 스티븐 굴드의 논문 제목을 빌려온 이유는 먼저 굴드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와 궤를 달리하는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하기 위함이다.


1979년 굴드와 르윈틴의 논문 발표 후, 진화생물학계에서는 건축 용어인 ‘스팬드럴’ 개념을 주제로 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어졌다. 산마르코 성당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하며 성(聖) 마르코(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이며 바울과 베드로의 조력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의 유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 후, 9세기에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옮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스팬드럴(spandrel)은 돔(dome)을 지탱하는 아치(arch)와 아치 사이에 생기는 역삼각형의 여유 공간을 뜻한다. 이 공간은 부수적으로 생겼지만, 예술적 장식으로 채워졌다. 건축에서는 돔과 아치가 핵심이지만, 생명현상에서는 부수적 요소인 스팬드럴이 오히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굴드의 논문이 인기를 끌자 ‘생물학적 스팬드럴’에 대한 수많은 논문들이 이어졌다.


珍光은 생각한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12장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cornerstone)이 되었나니’라는 시편에서 인용한 글귀가 있다.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는 마술은 리비히(Liebig, 1803 -1873)의 최소량의 법칙에서도 볼 수 있다. 식물의 필수 영양소 중에서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항상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모자라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물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돔이나 아치가 아니라 스팬드럴에 있는 장식품이라는 역설도 충분히 이야기해 볼 수 있다.


2023년 9월 16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성당의 벽면에 동방의 나라 조선의 순교자 김대건(金大建 1821-1839) 신부의 성상이 세워졌다. 성상이 세워진 장소는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벽감(壁龕 loculus)이라는 곳이다. 하찮은 공간으로 취급받았던 벽감은 종래에는 50 스팬드럴과 같이 푸대접을 받아왔으나 이제는 훌륭한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공간의 건축학적 용도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그곳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느냐에 따라 공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역설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팡글로즈(Pangloss)박사는 당대의 비주류를 자처하던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Candide 1759)」에서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팡글로즈박사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최상의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코는 안경을 쓰기 위해 만들어졌고,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굴드는 ‘팡글로시안 패러다임’을 통해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하는 낙관주의를 비판한다. 이것이 주는 메타포는 일방적인 적응주의와 자연선택론이 근거없는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만하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관점은 위험하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다. 인간은 역사의 운동장에서 선수로 뛰어야 하며, 단순한 관중이나 심판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굴드는 진화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회현상을 결과로 원인을 정당화하는 적응주의적 시각을 비판한다.


판다의 엄지

생물학자가 유리한 점은 난초, 지렁이, 달팽이, 거북이, 핀치새, 달맞이꽃, 곰팡이, 시아노박테리아, 쇠똥구리 등 생물의 어느 한 종을 가지고서 수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관찰 기록, 가설 검증, 논쟁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굴드의 저서 「판다의 엄지(The Panda’s Thumb)」에 의하면, 중국 서부 산악지대의 대나무 숲에 서식하는 “판다(panda)”는 곰의 일종이지만 초식성으로 대나무 잎만을 먹고 자란다. 특이하게도 판다의 엄지를 제외하고도 나머지 발가락(또는 손가락)은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다. 엄지는 나머지 다섯 개의 발가락들과 협력하여 대나무 잎을 신속하고 능수능란하게 훑어내게 해준다.


난초의 입술 모양의 꽃잎은 곤충이 꿀을 보고 찾아왔을 때 꽃가루를 묻히고 나가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어떤 바다거북은 브라질 해안에서 적도해류를 타고 출발하여, 약 3,200킬로미터나 떨어진 아프리카 서쪽 어센션(Ascension) 섬에 가서야 번식을 한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2억 2,500만 년 전에 성립한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향후 2억 년에 걸쳐 조각조각 나뉘어 온 과정에서, 바다거북이 원초적 기억을 보존해 온 결과인지는 확실치 않다. 민물대합조개는 몸의 뒷부분에 먹이를 유혹하기 위한 미끼 물고기를 달고 다닌다. 벌집이나 거북의 등딱지는 왜 정육각형의 반복인가? 이것 하나만 분석해서도 노벨상이 이미 두 차례 수여되었다.

스티븐 굴드의 과감한 통찰에 의하면,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에 대한 유비(類比)로 확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질서 있는 경제 상태를 원한다면, 각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경쟁을 시키고 투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무능력자가 제거된 후에는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룬 사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리 예정된 원리나 보다 높은 차원의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 개인의 투쟁으로부터 뚜렷한 질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자원의 최적배분 이론은 19세기 초기자본주의의 나침반이 되었다. 이것은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시장은 신의 도움이나 명령 없이도, 정부의 개입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스스로 적응하게 된다. 이것은 초기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실패들, 착취와 빈곤과 공해 문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훌륭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자본가들과 정치가들에게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어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이론을 다윈의 자연에 적용하면 생존경쟁, 적자생존, 자연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동료인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이 노동, 경쟁, 신시장 개척, 발명, 그리고 맬서스의 생존투쟁의 관점에서 동식물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관심을 표하였다. 그러나 珍光은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진정한 공산주의 이론가였다면, 혹독한 시장주의와 자연선택의 원리에 근거하는 아담 스미스와 찰스 다윈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에서 그의 공산주의를 출발시켰어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레세페르(laissez faire)는 성공하였는가? 국부론이 나온 지 130여 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과 중화 인민공화국의 공산주의 실험은 중앙아시아 농민의 홀로코스트와 문화혁명의 실패로 형해화되었고 남은 것은 고도로 세련되고 게으른 관료주의만 남았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범지구적 저출산과 고령화의 당면 과제 앞에서 무력해졌다. 이에 더하여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인 화석에너지의 과다 사용으로 지구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관료주의와 파시즘으로 오염되어 유명무실해졌다. 인류는 아담 스미스만큼 착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았으며, 칼 마르크스만큼 인류애와 사명감에 불타지도 않았다. 균형이론은 칠판이나 교과서의 그림에서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며 현실 세계는 다차원의 인터스텔라 시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무신론을 동력으로 하여 더 큰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화생물학은 인근 학문인 심리학과 사회이론, 나아가 정치이론으로 무장하여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설령, 진화론에 근본적인 오류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중세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들을 단죄하듯이 진화론자들을 파문할 수는 없다. 과학은 경제이론이나 정치이념에 비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다. 원자폭탄의 해악이 확인되었다고 해서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에게 귀책사유를 물을 수는 없다.


珍光은 생각한다. 창조의 질서가 유지된다 해서 진화의 원리가 부정될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은 획득형질은 유전하지 않고 돌연변이가 더 많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진화의 근간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창조론의 입장에 서 있더라도 진화론자를 극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주와 생명과 지구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게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의 95퍼센트가 넘는 암흑물질의 실체를 모르고도 우주에 대하여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생명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의사가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고 해서 그것이 의사의 논문 등재를 도와줄지언정 전적으로 의사의 공로일 수는 없다. 위험을 관리하는 확률의 세계에서 우연과 기적의 비중은 통계학적 수치보다 의외로 더 크고 더 중요하다. 인간이 아직 모르는 영역이 우연과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져 있을 뿐이다.


한편, 진화라는 단어의 보편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의미 때문에 진화론자가 아닌 사람들도 진화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는 진화 이론에서 돌연변이를 제외하고 남은 부분에서 라마르크(Lamarck 1744-1829)의 용불용설과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의 발생반복설의 오류를 뺀 다음, 화석의 머나먼 시간의 간극을 고려하고 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돌아갈 것이다.

스티븐 굴드는 창조와 진화를 대립하는 두 가지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굴드는 진화 현상이 점진적이고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珍光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에서 ‘믿음(fides)’이란 말에 상대되는 말은 ‘행함(works)’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번역 목록에서 제외한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니 믿음에 상대되는 말은 ‘율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창조에 상대되는 용어가 진화라고 하는 개념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진화에 상대되는 개념을 ‘도약’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본다. 굳이 진화를 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무신론으로 연계하려는 시도는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오만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현대 과학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는 있다. 여러 가지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

리차드 도킨스가 유려하면서도 단단한 필체로 써 내려간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세계관은 신선하고 화려하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초판 서문에서 우리는 생존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들이라고 선언했다. 본문 중에서 그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구절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화론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과 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도킨스에게 자연선택의 주체는 개체(individual)나 집단(group, species)이 아니며, 보다 근본적인 유전자(gene)이다. 개체는 자기복제자인 유전자의 생존 기계이며 단순한 운반자에 지나지 않는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자가 원시 대양에 나타났을 때, 바닷속 남조류의 길고 긴 암중모색과 함께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와 리보좀이 동식물의 세포 내에 들어와 독자적인 역할을 형성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것은 DNA의 이중나선모델에서 가능한 분자생물학의 세계관이다.


이기적 이타주의

왜 이기적(selfish)인가? 도킨스가 예시하는 동물의 이기적인 행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검은머리 갈매기가 이웃 갈매기의 둥지를 습격하여 어린 새끼를 삼켜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암사마귀는 짝짓기를 할 때 교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수놈을 잡아먹는다. 남극의 황제펭귄은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물속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다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무리 중 하나를 떠밀어 넣기도 한다.


반면에 동물의 이타적(altruistic)인 행동도 관찰된다. 일벌이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여 침을 쏘는 행위는 침과 함께 내장이 빠져나가므로 자살행위다. 작은 새가 매와 같은 포식자를 보고 경계음(alarm call)을 발하는 것은 집단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이타적 행동이다. 어미새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여우와 같은 포식자의 주의를 끄는 행동(distraction display)을 하는 것도 이타적이다.


도킨스는 이기적 행위의 주체를 유전자로 전제하고 있으므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한다는 집단선택론이나 혈연선택론으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기적 유전자에게 희생 같은 것은 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유전자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이타주의를 반박하는 데 역부족을 느낄 즈음에 이를 보완해주는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정치학자 로버트 엑설로드(Robert Axelrod 1943-)의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다. 공범관계에 있는 두 죄수가 상대방의 의중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배신을 하여 하이리스크와 하이리턴의 위험한 전략을 선택하기보다는, 호혜적으로 상호협력(cooperation)하여 위험을 극소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혜적 상호협력은 겉보기에는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기적이므로 ‘이기적 이타주의’라 할 수 있다. 겉보기 이타주의다.


엑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와 생물학자 트리버스(Robert Trivers 1943-)의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는 찰떡궁합이 되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유전자의 이타주의도 상호협력의 방식으로 진화한다고 하면 이것도 실상은 이기주의의 한 유형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확장된 표현형

도킨스는 숙주와 기생자처럼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서 협력하는 관계도 유전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이라는 개념인데 도킨스의 예시에서 이해하는 게 더 편리할 듯하다. 진화생물학이나 사회생물학은 생물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의인화하여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류(algae)는 히드라에게 산소를 공급하여 히드라의 건강에 기여하는 대신, 히드라의 알을 통하여 세대를 이어간다. 하천이나 늪에 사는 비버(beaver)는 나무를 갉아 넘어뜨려 댐을 만든다. 댐의 길이는 20~30미터 이상, 때로는 수백 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댐의 중앙에 섬을 만들고, 그 위에 포식자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한 보금자리를 짓는다. 비버가 만든 호수도 일종의 확장된 표현형이라 할 수 있다.


珍光이 우연히 TV에서 본 화면에서는, 매가 날카로운 발톱을 사용하여 포획한 다람쥐를 나무 위로 끌고 와서 먹으려는 순간, 작은 새들이 주변을 어지럽게 날면서 집단으로 짹짹거려 주의를 분산시킴으로써 다람쥐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다람쥐는 자신을 구사일생에서 구해준 새들과 먹이를 나누며 은혜를 갚는다. 그밖에도 인간과 동물의 이타적 교호작용은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밈 복합체

도킨스는 이제는 유전자를 넘어 인간의 문화도 진화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pool) 내에서 정자와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밈(meme)도 밈 풀에서 모방이라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밈의 예로 멜로디, 사상, 표어, 유행, 도자기 만드는 법, 아치 건축법 등을 들 수 있다.


도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종교는 전형적인 밈의 복합체이며 창조주는 만들어진 신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진화론과 유물론과 원자론이 집대성되고 있다. 도킨스는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 없이도 진화론의 자연선택 이론만으로도 생명의 복잡성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초자연적인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영국의 정신과 의사 앤소니 스톨(Anthony Storr)의 말을 인용한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 하고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 한다.’ 그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는 911테러도 없고, 십자군 전쟁도 없고, 마녀사냥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회진화론자의 태두인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하여 다윈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아담 스미스와 다윈과 스펜서가 하나의 그룹을 이루어 19세기 진화론의 불을 지폈다면, 도킨스는 액셀로드에 힘입어 진화론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면서 창조론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도킨스의 주장과 저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회의론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도킨스를 추종하는 현대 의학에서 쾌락은 호르몬의 작용임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행복은 생존의 기회라는 것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저명한 목회자들이 도킨스에 대한 반박에 나서고 있지만, 그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어본 결과는 실망스럽다. 그들의 저서가 신을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설득력을 얻을지 몰라도, 무신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길항력(拮抗力)만 키워줄 뿐이라는 게 珍光의 생각이다. 현재까지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도킨스가 머지않아 파스칼이나 폰 노이만처럼 스스로 믿음의 세계로 돌아오길 기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된다.


단속평형론

생물학계에서 획득형질(acquired traits)은 유전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확인되는 순간,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Lamarck 1744–1829)는 물론, 춘화처리(vernalization) 실험으로 소련 농업을 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트로핌 루센코(Trofim Lysenko 1898–1976)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Theory of Use and Disuse)은 폐기하기에는 재해석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라마르크에 의하면, 생명이란 자연발생적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로 발생한 다음, 미지의 힘에 추동되어 복잡성의 사다리(complexity ladder)를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린은 긴 목을 획득하고 새는 물갈퀴가 달린 발을 획득하며, 두더지는 시력을 잃어간다. 라마르크의 진화는 생물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반응한 결과이며, 부모의 노력으로 후손이 이익을 얻는 메커니즘이다.


춘화처리 이론은 식물에게 최면을 걸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문제는 이 방식이 당대에만 유효하고 유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춘화처리는 식물의 한계일장(critical day length)을 역이용하면 생산력을 두 배 이상 크게 증대시킬 수 있었다.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하는 가을보리 씨앗을 일정 기간 저온에 노출하여 최면을 걸어 이른 봄에 파종하더라도, 보리 씨앗은 겨울을 난 것으로 착각하여 초여름에 결실을 맺는다. 춘화처리의 원리를 응용하면 재배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데 비하여, 수확량은 일정하므로 생산성이 급증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춘화처리한 보리에서 얻은 씨앗을 다시 춘화처리하지 않으면 보리 씨앗은 원래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획득형질은 유전하지 않는다. 들깨를 재배하는 농사에서 열매보다 잎을 더 원하는 농가는 무엇보다도 들깨의 꽃대가 올라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가을부터 밤에도 인공으로 조명을 밝혀주면, 들깨는 여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착각하여 꽃대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농부는 요즘 인기가 높아진 들깻잎을 1년 내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는 유전적 변이도 무작위적이고 특정한 방향성도 없는 진화이다. 능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이기적인 행동만 존재할 뿐이다. 가을보리나 들깨가 생전에 인공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해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획득형질은 유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정통 다윈주의 관점에 대해서 두 가지 도전이 제기되었다. 선택의 단위가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라는 주장과, 선택의 단위가 유전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후자의 견해가 앞에서 살펴본 리차드 도킨스의 주장으로서, 개체는 유전자를 보관하는 일시적인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굴드와 도킨스의 오랜 논쟁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택의 단위가 집단이라는 집단선택(group selection) 이론에서는 거의 모든 생물이 제한된 자원과 조건과 일정 수준에서 일치하는 개체수를 유지하는 이유를 규명한다. 새의 지저귐, 여치의 진동, 물고기의 소리, 반딧불이의 명멸 등은 집단 내 개체의 이타적인 행동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집단선택론자가 개체선택론자에게 이타성을 증명하는 회심의 카드로 제시한 것은 새의 경계음과 혈연선택이었다.


그러나 집단선택의 이타성은 강한 반론에 부딪혔다. 최초로 포식자를 발견한 새가 경계음을 내는 이타적 행동에 대해서, 이것은 진정한 이타성의 발현이라기보다는 겉보기 이타성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외침은 새 무리 전체에게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일으켜 포식자가 타겟을 선정하는 데 혼란을 주고, 그만큼 포획에 실패할 확률을 높여준다. 그리하여 집단이나 개체 모두 이기적인 행동만으로도 상호 이득을 얻게 된다. 혈연선택이론은 형제자매 중 한 개체의 이타적인 행동으로 나머지 형제자매에게 유전자를 안전하게 보전함으로써 집단에게 더 많은 이익을 얻게 한다는 주장인데, 혈연선택 역시 개체선택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반론에 직면하였다.

집단선택이론이 개체선택이론을 충분히 공략하지 못할 즈음에, 선택의 단위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도킨스의 주장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도킨스는 육체는 유전자를 보관하는 일시적인 그릇이며, 유전자가 조작하는 생존기계(survival machine)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굴드는 다윈의 완만하고 질서있는 변화에 거부감을 가진 듯하다. 그는 화석에게서 점진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성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첫째 화석에 나타난 생물은 대부분 그것이 출현할 때나 사라질 때나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형태상의 변화가 없을 뿐더러 일정한 방향성도 없다. 둘째 특정한 생물은 그 조상이 조금씩 변형되는 과정을 거쳐 서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완성된 상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공룡에 관한 굴드의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공룡은 갑작스럽게 멸망했다기보다는 그들이 지구상에서 오랫동안 군림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룡은 1억 년 동안이나 지구 세상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포유류는 소형 동물로서 공룡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틈새 시장에서 살았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인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온 기간은 고작 5만 년에 불과하다. 굴드는 질문한다. 과연 호모 사피엔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내기에서 우리는 어느 쪽에 베팅을 할 것인가?


굴드는 진화에 관한 논의를 종합하여 단속평형론(Punctuated Equilibrium Theory)을 제시하고 있다. 생물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 종 분화라는 사건이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그 평온함이 깨진다는 것이다. 굴드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점잖게 대응한다. 몸과 유전자의 관계는 물과 물을 구성하는 분자의 관계로 설명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것이라는 것이다. 몸과 유전자의 관계를 물과 물 분자의 관계처럼 물리학적 원자론으로 설명하려는 접근은 오류라는 것이다.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물리학, 심리학, 정치경제학의 가설들을 흡수해 가며 무난히 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저명한 기독교 목회자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그 기세가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珍光이 생각하기에 생명현상에서 단속과 점진은 상대적이다. 긴 시간으로 보면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현상도, 더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단속적이다. 평형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단속과 연속도 평형과 불평형도, 시간의 수평선에서는 모두 상대적이다. 제임스 망원경으로 보는 우주는 아름답지만, 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미생물이 숙주를 가지고 노는 난감한 현장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자연선택이라는 개념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자연이 스스로 선택하면 진화론이 되고, 신이 자연을 선택하면 창조론이 된다. 자연이 선택한다 하더라도 개체 혹은 유전자가 선택의 주체가 되어 전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기적’이고 ‘선택’인 것이 맞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언제부터, 생물의 자유의지를 수반하지 않은 행동에 대하여 ‘선택’과 ‘이기적’이라는 형용을 덧붙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여전히 존재한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기존의 신과 동급의 경지에 올려놓음으로써 신의 존재를 만들어진 신으로 격하했을 뿐 아니라, 그의 조상인 다윈까지 혼란에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DNA 이중나선모델이 항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모델은 모델이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모델은 무너진 지 오래고, AI 시대에서 수요와 공급의 시장균형이론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하였으며,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뉴턴의 법칙이 한편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파시즘

최근 80세 중반에 접어든 도킨스는 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어느 대담에서 종교는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말하였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과감하게 단정하며, ‘풍파가 없는 항해는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고 외쳐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珍光의 학창 시절, 독일에서 갓 돌아온 어느 헌법학 교수는 실증법주의자 칼 쉬미트(Carl Schmitt, 1888–1985)의 사상에 경도되어, 젊은 법학도들 앞에서 ‘가진 자는 아름답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금은 원로 교수가 되어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오래된 일본 군국주의와 독일 나치 시절의 통치행위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파시즘의 근원은 생래적인 유전자의 탓인가, 아니면 빈약한 독일어 실력에 있었던가?

지성인들은 기독교 앞에 어떤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어 한다. 적어도 맹목적인 믿음에 빠지기는 싫다는 현학적 표현일 것이다. 오히려 말년의 폰 노이만의 선택인 파스칼의 단순한 동전 던지기 게임을 괜히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도킨스를 비롯한 대다수 지식인들의 마지막 허들은 파시즘의 망령일 것이라고 珍光은 생각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대의 지성인들이 너무 높은 빈도로 파시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교회에서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강퍅(剛愎)함과 완악(頑惡)함’의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본 후에 그때 가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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