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에 대한 가벼운 반항

by 서희

대부분 그러하듯 나도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지금만큼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했고,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시기다. 그렇기에 어떤 산업군, 직군으로 가고 싶은지 꾹 닫아놓고, 문어발식으로 여기 저기 지원했다. 과 동기들, 동아리 친구들 어깨 너머로 대충 보고 듣고선 대기업 공채가 뜨면 급하게 지원하고 꾸역꾸역 자기소개서를 채웠다.


그렇게 허술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내가 그래도 영어는 잘하지, 이걸 좀 살려보자 라는 생각에, 그리고 대기업 공채보다는 수월할 것이라 감히 판단하여, 외국계 회사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다니게 된 회사들도 쭉 외국계 회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 회사의 유형 중 외국계 회사가 그래도 나와 꽤 궁합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쳐도 냉정하고, 경쟁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이번에 이직 준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외국계 회사만 떠올렸다. 산업군이 달라도 인사팀과 같은 지원부서는 크게 업무 범위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여느 외국계 인사팀 경력직 채용공고를 봐도 정말 익숙한 단어, 표현들이 나열되어 있다. 심지어 산업군이 달라도, 본사가 유럽이든 미국이든, HR에서 추구하는 방향, 트렌드, 가치와 같이 이런 상징적인 모습들이 마치 서로 맞춘 듯 비슷하다.


처음엔 그 익숙함이 수월함으로 다가왔다. 혹은 안도감, 안정감과 유사했다. 그런데 선뜻 지원하기가 망설여졌다. 그 곳에 가게 되었을 때 펼쳐질 모습, 미래가 눈에 보이는 느낌이었다. 내가 일을 잘 하고 잘 알아서 눈에 훤하다, 지루하다의 개념이 아니다. 내가 이직할 이유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소중한 기회인데 그냥 발로 뻥- 차는 것 같다.






외국계 회사는 몇 년 전만해도 보통 국내 기업들에 비해 자유로운, 수평적인, 눈치 안 보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 후 시간이 흘렀고, 한국 사회도 변했다. 그 기저에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 코로나의 발발, 스타트업 세상도래와 같은 많은 이벤트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의 인식에는, 대기업이 옛날의 보수적인,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라 좋은 복리후생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스타트업 중에서도 대기업의 위상과 유사한 회사가 많아졌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인 HR로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와중에 외국계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걸까. 느낀 바로는, 결국 주체가 유럽, 미국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본사의 가이드라인이 창의성과 혁신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본사가 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당연한 것이다, 지사의 숙명이다.

더군다나 그 가이드라인이 국내 정서나 근로환경에 적합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Localization, Globalization 이 2가지 모두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적합하도록 조율하고, 조금 바꾸는 작업은 직원의 몫이다. 나는 이 중간다리의 역할은 좋았다. 재밌다. 그런데 Localization 보다는 Globalization을 좀 더 하고 싶다. 이상한 비유지만, 수입보다는 수출을 하고 싶달까.






내가 변한 것인지, 권태기인지, 이상한 반항심이 내 속에서 머리를 들고있다. 물론 모든 외국계 회사가 이렇다 단언할 수 없다. 특히 내가 다녀보지 못한 상위(?) 레벨은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관점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요새는 회사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공고를 유심히 보고, 홈페이지를 먼저 꼭 살펴보고, 어떤 식으로 본인을 소개하는지 찬찬히 보고있다. 몇 군데 지원해보긴 했지만 결과는 모르겠다.

원래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 눈에는 내가 안 차고, 날 좋아하는 상대방은 막상 내가 별로고,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지 않은가. 이번 짝사랑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으나 문을 계속 두드려 보고 있다. 그냥 해도 어려운 이직, 이거 더 꼬이겠는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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