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활동 중간반성보고서

by 서희

우리 아기는 생후 90일쯤부터 수면교육을 했다. 온갖 유투브와 육아책을 참고하여 성공적으로 분리수면을 했고, 낮밤 가리지 않고 아기 혼자 스스로 잘 잠들었다. 신생아 때 2시간 텀으로 분유를 주고, 새벽수유 때문에 잠 못자던 괴로운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 생각했다. 이후로는 육아가 훨씬 수월했고, 이 단조롭고 규칙적인 육아활동 중 가끔씩 울적한 것 빼고는 할 만하다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부터 육아가 소위 마라맛이 되어버렸다. 잘 울지 않던 순한 우리 아가가 사나워졌다. 싫다는 의사표현으로 소리지르며 울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확실히 커졌다.

자만하던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이상하게 신생아 때보다 더 힘들어진 기분이었다. 그 땐 잠이 부족해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나름 꽤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데도 계속 기운이 빠졌다. 떨어진 체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몸 밖으로 쭉쭉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많이들 얘기하는 것처럼, 아기는 정말 짧은 시간 안에 훌쩍 성장한다. 몸이 바스라질까봐 안기도 조심스러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기어다니고 혼자 일어나겠다고 이것 저것 손을 짚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때부터였을까 혼자서도 잘 놀고, 시간되면 낮잠 자는 아기 옆에서 나는 핸드폰을 많이 봤다. 핸드폰을 붙잡고 한참동안 드라마를 보거나 한 건 아니고, 카톡이나 네이버 뉴스처럼 짧게 짧게 육아의 지루함을 넘길 정도로만.

그런데 그 짧은 시간들을 다 합치면 시간이 꽤 되지 않을까 싶다. 딸래미가 놀다가 문뜩 꽤 자주 뒤돌아보며 엄마를 확인하던 순간들이 있다는걸 안다. 놀고 있는 자기를 잘 보고 있는지, 소파를 짚고 일어섰는데 다시 내려가기 무서워서 엄마가 센스있게 바로 잡아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짧게나마 놓쳤던 그 순간들이 모여서 아기를 불안하게 했던 거 같다.

그렇게 한 며칠동안 활동하는 낮 시간이고, 낮잠을 재울 때고, 밤잠을 재울 때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다. n개월 아기 소리지름.

나와 비슷한 경험이 맘카페에도 올라와있고, 육아 커뮤니티 같은 사이트에도 있는걸 보고선 원래 이맘때쯤 그런건가 싶었다.


이제 본인의 욕구가 생기고, 좋고 싫고의 의사표현이 확실해지는 시기에요.

어떤 사이트에 육아 전문가 라는 사람의 글을 보고선, 그럼 그냥 그런 시기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던 찰나였다. 바로 밑에 또 다른 글이 있었다.

낮 시간에 아기가 불안함을 느낀게 있으면 소리 지르면서 울 수도 있습니다.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아기에게서 눈을 떼고, 관심대상에서 멀어지고,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던 내 모습이 비디오 화면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기가 보고, 뒤늦게 응 왜그래 우리 애기, 한 템포 지나서 반응 해줬던 순간들. 그렇게 테이프를 뒤감아 보니, 왠지 모르게 아기의 눈빛이 쓸쓸하고 나 좀 봐줘 엄마- 안쓰럽다.


곧바로 행동을 교정했다. 그랬더니 이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건지, 진짜 그 이유 때문인지, 괜찮아졌다.

좋고 싫고의 의사표현은 여전히 있지만 악 쓰며 소리 지르는 행동이 없어졌다. 잠깐 원더윅스여서 그랬던건지, 정말 핸드폰 때문인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번 정신 차리게 해주는 계기였고 이렇게라도 중간에 한번 얻어맞아 다행이다.

특별한 엄마랍시고 어줍잖게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아기가 말 잘 듣고 귀여울 땐 내가 기분이 좋답시고 춤추고 과장된 목소리로 놀아주던 일방적인 사랑의 모습들.

그러다가 힘을 뺐다. 그냥 옆에서 지켜봐줬다. 나를 찾는 눈빛을 보낼 때 곧바로 더 가까이 가줬다.

규칙적인 일정에 맞춰 빨리 완벽하게 미션을 소화하자는 욕심을 버렸다. 아기가 잘 안 받아주면 그냥 좀 더 기다린다.

나의 육아는 조금 더 차분해졌고, 기분의 높낮이가 많이 없어졌고, 자연스러워졌다.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의 듬뿍 넘치는 사랑보다는 지속적인 안정감과 아늑함 같다.

예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결혼생활과 육아에 모두 적용되는 말인 듯 하다.

너무 특별하게 잘 키우려 하지 않고, 나는 욕심 부리지 않아 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지치지 않는게 중요한가보다.








어제 우리 가족 셋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치과에 갔다. 남편은 스케일링, 나는 검진상담 받기 위해서였다. 한번에 함께 일정을 해결하고자 예약 시간을 서로 이어지게 잡았다.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남편이 유모차를 들고, 나는 아기를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내가 먼저 일정을 끝내고 남편 차례 동안 아기를 품에 안고 대기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까부터 우리 아기가 귀여운지 한번씩 힐끔 보시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아가 너무 귀엽다. 몇개월이에요?

8개월이요~

아고 한참 이쁠때네요.

래요? 근데 어딜 막 가질 못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도 그랬었는데, 그러다 걷고 말하기 시작하고 하면 더 힘들어요. 지금 애들 초등학교, 중학교인데 사춘기 오고 하면 아휴 말도 마세요~

으아 이거보다 더 힘들어진다구요? 큰일이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생아 때에는 조금 더 몸에 살이 올랐으면, 목을 가눈다면, 기어다니기만 한다면, 이렇게 조건들을 붙이면서 그렇게 되기만 하면 더 수월할거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조건이 이루어졌는데 제일 힘든 것만 같다. 그 때의 내 감정이 왜곡된건지 그래서 착각하고 있는건지, 감사함을 모르는건지, 둘 다인지 거참 모르겠다.

치과에서의 아주머니 말씀 듣고선 정말 갈수록 더 힘든 건 빼도박도 못한 미래구나 싶긴했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모든 부모가 성숙한 어른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를 통해 그 전에 느껴보지 못한 무력감, 슬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기쁨처럼 롤러코스터 감정을 겪으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단순히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도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엄마도 처음이어서 잘 몰라, 실수해도 좀 봐줘, 근데 계속 발버둥 치면서 이것저것 시도할거고 나아질거야, 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복직 전, 두번째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