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단편극장] 싸이월드와 AI 그 사이-5

by 서희

월요일 아침, 민준은 부장과 본사 측에 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A 사업부 직원들을 직접 컨택하여 인터뷰를 진행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리하여도 좋다는 컨펌을 받았다. 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업무 루틴에도 민준은 왠지 모르게 에너지가 쏫아난다. 옆에 있던 최 대리가 민준의 미묘하게 활기찬 에너지를 느꼈는지 슬쩍 물어본다.


"과장님, 기분 좋아보여요. 프레젠테이션 준비 잘 되어가세요?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아유 아니에요. 대리님은 방향 좀 잡았어요?"

"아뇨, 근데 일단 뭐 AI 툴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해보려고요."


짧은 대화가 끝난 후, 민준은 즉각 계획에 돌입했다. 민준은 우선 A 사업부 직원들 한명씩 만나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 직원의 솔직한 감정과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그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상태를 알기도 전에 어떠한 진단 툴을 사용할지, 어떠한 방향으로 접근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AI 툴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민준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개인평가에 반영된다는 사실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에게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A 사업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진심을 다해 집중하기로 했다.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해본 결과, 각 직원마다 느끼는 부분이 의외로 달랐고, 공통되게 느끼는 해당 조직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그리고 점차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큰 틀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프레젠테이션 당일, 월요일 오전 9시. 민준을 포함한 모든 팀원들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각자 자리에 앉아있다. 1시간 뒤면 시작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각자의 자료를 한번 더 검토 중이다.


오전 10시, 미팅룸으로 모두들 모인 후 본사 매니저를 위해 화상화면을 셋팅한다. 곧이어 미팅룸 제일 앞 쪽에 위치한 TV 화면에 유럽 출신 본사 매니저가 밝은 얼굴로 인사한다. 부장이 이에 질세라 서툰 영어로 화답한다.


“Hi, Silvia! Yes, we are ready. Of course!”


나머지 직원들도 화면의 Silvia를 바라보며 최대한 경직된 표정을 풀고, 눈웃음으로 인사한다.

Silvia가 오프닝 멘트 겸 여러분 모두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해왔음을 알며,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조직문화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그럼 이제 한명씩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열정 다 해 보여달라며 코멘트를 마무리 짓는다.



첫 시작은 최 대리였다. 최 대리는 민준과 비슷한 연배이지만, 민준보다 조금 더 어리고 트렌드에 민감한 편이다. 그리고 업무를 할 때 눈치가 빠르고, 어딘지 얄미운 구석이 있는 편이다. 최 대리는 어디서 많이 본 AI 툴 중 하나를 이용해서 조직문화와 직원 만족도 진단으로 유명한 방법론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적당히 AI를 활용했고, 시각적으로도 눈에 띄도록 잘 준비했다. 전문적인 용어와 인사 담당자의 지식이 엿보였으나, 민준이 봤을 때 다소 원론적이고 일방적인 접근으로 보였다. A 사업부에게 딱 특성화된 방법으로 보이진 않았다.


나머지 직원들도 비슷하게 이어나갔다. 민준의 앞 순서인 지윤의 경우, 가장 화려했다. 화려했다는 것의 의미는 가장 다양한 AI 툴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들 지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어머 저런 AI 툴도 있구나, 몇 가지를 쓴거야 어머"

"저런 기능도 되나봐, 5분이면 뚝딱이네 정말"


하지만 마찬가지로 프레젠테이션의 컨텐츠는 부족했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애초의 목적인 A 사업부에 대한 진단과 이들 조직문화를 개선할 방법은 쏙 빠져있었다.


마지막으로 민준이 미팅룸 앞으로 걸어간다. 민준의 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은 흔한 ppt 슬라이드가 아니었다. 오디오 파일이었다. A 사업부 각 직원과 인터뷰한 내용을 편집한 파일이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도록 AI 툴을 이용해서 최대한 목소리도 변조했고, 압축적으로 이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간추렸다. 그리고 민준은 그 메세지를 강조하면서 이들에게 그렇다면 필요한 접근이 무엇일지 본인의 분석을 얘기했다.


민준이 발견한 A 사업부의 문제는 ‘팀 리더와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각자의 업무분담이 비효율적으로 분배,’ ‘업무와 휴식의 균형분열’ 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를 분석하자면 A 사업부 내 직무를 재구성, 각 직무별 역할과 업무를 재정의, 이에 따른 인원 재배치, A 사업부의 인원이 급속도로 증가됨에 따라 작은 단위로 팀을 관리할 중간관리자 선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 단위의 팀들을 화합시킬 정기적인 워크샵을 계획하는 순서로 민준은 솔루션을 제안했다.


민준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긴장감이 그제서야 풀린 민준이 직원들과 Silvia의 표정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나, 갸우뚱 거리다가 민준은 개의치 않았다. 민준은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더 이상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의 목표를 위해 적재적소에 AI를 활용했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컨텐츠에 중점을 두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몇 주 뒤, 다시 미팅룸에 모인 민준의 팀원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있다. 부장도 함께 착석해있다. 민준은 미팅룸 제일 앞에 TV 화면 앞에 서서 얼마 전 그가 제안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팀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는 Silvia와 팀원들의 만장일치로 선발이 됐고, 민준이 공식적인 이번 프로젝트 리더로써 프로젝트를 이끌게 됐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퇴근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다. 그렇게 밤 9시 퇴근길에, 민준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얼마 안 가고 아버지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뭐하세요? 저 퇴근길에 전화 한번 드려봤어요."

"아, 그래. 고생이 많다. 피곤하지? 밥은 먹었니? 나야, 뭐. 또 이것 저것 보고 있지."

"네, 아버지. 열심히 이것 저것 계속 보셔요, 지금처럼.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저 좀 더 성장한 것 같아요. 위로도 됐고, 용기도 주셨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요, 하하. 걱정마세요. 정말 좋아서 연락 드린거에요. 저 좀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절 2번 낳아주신 셈이세요 하하"


민준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알아듣지 못 할 여러 감정들을 뒤죽박죽 이야기하며 전화를 끊었다. 코 끝이 괜시리 찡하다. 마음에 어떤 장작불 하나가 천천히 타오르듯 온 몸이 따듯해진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본인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아버지의 세대, 민준의 세대, 지윤의 세대, 그 어느 세대를 위한 시대는 없다는 걸 깨닫고, 민준은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방구석 단편극장] 싸이월드와 AI 그 사이 끝.



[마지막 오답노트] 허접하지만 하나의 단편 프로젝트를 끝내니 쬐끔 뿌듯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소재로 글을 써볼까 다시 두근거리기도, 빈 우물 바닥을 두드리는거 아닐까 당황스럽기도 하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고, 캐릭터에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글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낀 시간이다.

그리고 복직하기 전 두려웠던 AI 기술은, 지금 나에게 너무나 시간을 아껴주는 똑똑한 팀원(?)이다. 게다가 이 팀원은 무급이다. 내가 더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하고, 직원들과 대면해야 하는 업무에 시간과 에너지를 정성스레 투입할 수 있게 해주는 팀원이다.

AI 뿐만 아니라 나의 복직에 대한 두려움을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나에게 위안을 준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 파트를 업로드 하며, 이제 또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아서 글을 계속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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