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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Feb 20. 2023

 막장 드라마의 한계

천금아환 후기


장르를 가리지 않는 내가 기피하는 장르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막장 드라마이다. 그 유명하다는 펜트하우스도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단지, 재미없고, 있고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이야기 또한 예술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없이 요란하다면 빈깡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무작정 폭력성이나 자극을 끌어모으는 방식이 결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판 막장 드라마인 < 천금아환 >을 시청한 이유는, 이 작품이 막장 드라마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남자 주인공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 그럼 그렇지....).


시작했으니 완주는 했으나 내게는 적잖아 불쾌한 작품이었다.


먼저, 작품이 '아랫'사람들을 그리는 방식이 마음에 안들었다. 주인공인 동청요와 방천일은 명문가의 적장자, 적녀로 태어나서부터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닿기 위해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었으니, 약한 자들에게 선뜻 손을 건네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여유 또한 있었다. 그에 반해, 악인으로 그려지는 방여택과 동안아는 서인이었기에, 평생을 두 '주인공'에게 가려져 서러운 삶을 살았다. 그럼으로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요와 천일의 자리를 탐하게 된 것은, 단지 그들의 잘못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녀와 적녀를 구분하는 시대의 문제이고,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한 집안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대신, 나는 잘 해주었는데 무엇이 문제였냐는 식으로 대응한다.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정당한 것이고, 아랫 사람들이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니;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사고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이 여성을 그리는 방식 또한 불쾌했다. 비록, 동청요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결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어리석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천일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여택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속아 넘어간다. 또한, 시대상을 그리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집착 남주라는 타이틀 아래, 엄연한 조카의 여자를 탐내고, 억지로 밀어붙여 폭력성을 띄는 것이, 꼭 우리나라 8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모든 작품에서 비열한 하녀라든가, 폭력적인 남자 주인공이 없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시청한 < 유성화원 >이라는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따오밍스 또한 비슷한 행동을 보였으나, 그다지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창란결 >의 동방청창 또한 연약한 여자 주인공과 능력이고 냉혹한 남자 주인공을 그린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성이 정당하다거나 낭만적으로 그려지면 안 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옳지 못한 설정이나, 행동을 하는 캐릭터가 변화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등의 전환점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여주를 통해 따뜻하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운 따오밍스나 동방청창처럼 말이다.


천금아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같고 순응적인 여자 주인공과 능력있고 박력있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식상한 전개 방식으로 점칠된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였다.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엔 좋을 수 있으나,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이 너무 자주 소비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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