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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Feb 02. 2023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승윤의 꿈의 거처를 듣고

https://youtu.be/yDg3Lth8uQ8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 최고의 구절을 고르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조차 없이 이상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를 말할 것이다. 그가 쓴 글 중 어쩌면 가장 잘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는 < 날개 >를 시작하는 첫 구절인데, 실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한다.


< 갈매기 >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새로운 형식을 주장하는 작가 지망생과, 그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진 유명 여배우.  성공한 작가와 배우 지망생; 이들이 느끼는 꿈과 좌절,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비극을 그려낸다. 작가 지망생, 뜨레플레프는 죽은 갈매기를 자신의 연인이자 배우지망생, 니나에게 보이며, "이제 당신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평범하고 가치 없다고 생각하겠지. 이해해, 완전히! 이건 마치 내 뇌에 박한 못 같아, 젠장, 내 피를 빨아먹는 자존심, 뱀처럼 날 빨아먹는 거야..." 라고 말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승윤의 < 꿈의 거처 >를 처음 들었을때, 그러한 뜨레플레프의 말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 말한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 부터, 장래희망을 적으라는 종이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었던 기억이 난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는 말 또한 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이란 미래를 향한 '희망'과 동일시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때로 꿈이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한 자리에 박제가 되어버린 갈매기와 같다. 어렸을때 꾸었던 꿈, 판타지와 다르게 현실 속의 삶은 꽤나 변수가 많다. 노력한다고, 아니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여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함은 물론이고, 일단 운이 좋아야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때때로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 했을 때 조차, '포기'라는 말을 지닌 부정적인 어감에 얽매여, 앞으로 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며 안절부절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 가는 것이 더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꿈을 이루었다고 하여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것만 해낸다면 상상했던 것 처럼 행복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도리어 지치거나, 삶에 대한 전의를 잃어 버리는 경우 또한 있다. 어찌되었건 삶이란 상승하는 일직선이 아닌 곡선이기에, 올라가는 길이 있다면 내려가는 길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또 실패감을 맛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꿈이란 건 꾸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 꿈의 거처 > 에서 이승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눈보란 너에게서 그쳐
파묻힌 내 꿈의 거처는
아무래도 너여야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


여기서 '너' 란 아무래도 음악을 말하는 것일 터. 세상엔 멀쩡한 진리도, 북극성도, 박제된 정답 중에는 살아있는 것 또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을 곳은 아마 '음악' 뿐이라고. 그것이 어떤 형태든, 어떤 방향이든 일단 '음악'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갈매기 >에서 체호프 또한 비슷한 말을 한다. 임신하여 사산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받았으며, 배우 인생 또한 3류로 전락해 버린 니나는,


우리가 연기를 하건 글을 쓰건 진짜 중요한 건 명성도 영광도, 우리가 꿈꾸던 그런 것들이 아니라 어떻게 참고 견디느냐 하는 거라는 걸요. 스스로 십자기를 메고 믿음을 가지는 거죠. 믿음을 가지면 아픔도 두렵지 않아요. 그리고 내 일을 생각하면 인생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어떤 성과를 이루었느냐가 아니다. 단지 꿈을 꾸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아니,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 있어 '너'란 오직 글이어야만 한다. 생각해보면 꼭 작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글을 쓰는 매 순간 행복하다. 어쩌면 그것으로 되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통해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을 참고 견딜 것이다. 내게 믿음은 내가 글을 사랑한다는 것에 있고, 아마 그것은 내가 글을 쓰는 한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주문을 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내가 사는 삶 또한 나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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