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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변태 Mar 05. 2024

식물의 번식 - 제비꽃

요즘 저출산 문제로 시끌시끌합니다. 사실 하루아침의 문제가 아닌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대단한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23년 합계 출산율은 0.7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수치를 기록했고, 병력모집 미달로 인해 현역 복무 대상이 확대됐으며, 초중고등학교가 폐교한다는 소식은 점점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와닿게 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으로 정부나 여러 단체에선 부랴부랴 다양한 대책과 방안들을 고안하고 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생물의 목적은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것, 즉 '번식'입니다. 인간의 저출산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이라는 종의 번식률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물론 이 지난한 과정에는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위기도 많았죠. 그럼에도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서 가능한 많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번식 전략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땐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저출산 아니, 번식 위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또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을까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보랏빛 귀여운 꽃.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속(Viola) 식물은 제비꽃과(Violaceae)에 속하는 다년생 또는 일 년생 초본 식물로, 종에 따라 3~7월에 화경이 올라와 혼꽃으로 핍니다. 전 세계에는 550여 종이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팬지꽃(pansy)도 제비꽃과 식물로, 우리나라 말로는 삼색제비꽃으로 불립니다.


제비꽃속 식물들은 다양한 화색, 잎 무늬, 잎 형태를 가질 뿐만 아니라 향기가 있는 종, 지표면에 낮게 깔리는 종, 전체 길이가 40~60cm에 이르는 종까지 다양한 형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형질 덕분에 실내 분화용, 조경용, 화단용, 지피용 등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제비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생식능력에 있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현화식물, 더욱이 일 년생 또는 이년생의 초본식물은 생애주기와 계절에 따라 연 1회 개화기를 맞고 꽃을 피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제비꽃속 식물은 개방화와 폐쇄화라는 두 종류의 생식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개방화는 말 그대로 우리가 꽃을 생각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형태입니다.


개방화(왼쪽) 폐쇄화(오른쪽)


제비꽃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고 수분 매개 곤충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주로 개방화를 피웁니다. 꿀벌이나 호박벌 등의 도움으로 타가수분하죠. 반면, 일조량이 적어지고 수분 매개 곤충들의 활동이 줄어드는 늦여름부터 가을 무렵에는 꽃잎이 벌어지지 않는 형태의 폐쇄화로 자가수분하며 종자를 생산합니다. 폐쇄화는 닫힌 꽃 속에서 자신의 꽃가루를 자기 암술머리에 직접 옮기는데, 수분이 확실히 보장될 뿐만 아니라 꽃잎과 꿀 등을 만들지 않아도 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죠. 이렇게 제비꽃은 자가수분과 타가수분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며 가능한 많은 후손을 남깁니다.




제비꽃의 생활사를 보았을 때, 번식 위기의 문제는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프랑스 몽펠리에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팬지꽃의 자가수분을 취하는 비율이 27% 증가했다고 합니다. 90년대 채집된 씨앗에서 피어난 야생 팬지꽃과 최근 채집한 야생 팬지꽃을 비교해 밝혀낸 결과이죠. 수분 매개곤충의 수가 줄어 타가수분이 힘들어지니 화려하고 꿀이 가득한 꽃을 피우지 않고, 폐쇄화로 자가수분하도록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가수분으로만 번식이 이루어지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한 종자는 유전병이나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한 번의 위험으로도 전원 멸종이라는 리스크를 갖게 되죠. 단기적으로 보면 효율적 종자 생산이 가능한 자가수정이 유리하지만, 생태계를 바라볼 때는 항상 먼 미래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법입니다. 때문에 유전적으로 건강한 종자를 만들어내고 벌들에게 꿀도 제공하는 타가수정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이렇게 우리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로운 성공처럼 슬픈 게 또 있을까요? 내 성공을 축하해 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제비꽃 역시 종자를 아무리 많이 생산했을지라도, 찾아올 벌이 없고 그것을 즐길 대상이 없다면 외로운 성공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계에서는 함께 잘 살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쩌면 머리 아픈 먼 미래의 ‘번식’ 문제는 둘째 치고, 오늘 하루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는 사실 위로가 먼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Reference

- 유다원, “저출산 비상걸린 군대...고도 비만도 현역 입대“, YTN, 2023년 12월 15일,
  https://www.ytn.co.kr/_ln/0101_202312151321228413

- 임화영, “ 폐교에 주차장으로 변한 초등학교”, 연합뉴스, 2024년 2월 13일,
  https://www.yna.co.kr/view/PYH20240213060100013?input=1196m

- 최종석, “제비꽃에 무슨 일이", 중부매일, 2011년 12월 7일,  
  https://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7681

- Carl Zimmer, Flowers are evolving to have less sex, The New York Times, 2024년 1월 4일,

   https://www.nytimes.com/2024/01/04/science/flower-sex-evolution-bees.html

- 홍행화. 2009. 고깔제비꽃, 왜제비꽃, 남산제비꽃의 종자 생산 특징. 한국환경생물학회, 27(3)

- 권혁환, 길민, 권영현, 권혁준, 김수영, 이용하. 2020. 제비꽃과 남산제비꽃의 종자 휴면과 저장에 따른
  발아 특성, 한국화훼학회, 28(3)



 edit. 초록변태

https://www.instagram.com/chorok.bt/

https://chorokb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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