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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31. 2023

너의 이별을 준비해주고 싶어서 1

<나는 죽음이에요>를 읽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골학교에는 '농번기'가 있었다.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 학교에서 주는 일종의 재량휴업 형식이었던 듯싶다. 나에게는 그냥 집에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휴일이었지만, 꽤 많은 친구들 농사일을 도왔다. 친구들은 특히 여름방학을 싫어했는데 방학 기간 내내 논과 밭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몽상가였다. 생각도 많고, 감정도 많았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감정과 생각들이 내 안에서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농사일을 돕다가 사고가 났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동요할까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고, 추모 행사도 없었다. 선생님들도 수업을 하실 뿐 그 친구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동 수업 시간에만 같이 앉는 짝이었고,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었는 데에도 슬픔이 컸다. 친구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요구하는 학교와 어른들이 이상했다.


'역겨움.'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이것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어른들이 내 친구의 죽음을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죽음에서 느낀 슬픔이 투명하고 깊은 그것이라면 이 슬픔은  흐릿하면서도 짙었다.


 우리들에게는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를 잃은 우리를 누군가 토닥여 주는 것이 옳았다. 수업을 듣지 않음으로써 나름의 반항을 했다. 그 아이와 짝이었던 과목 수업에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책을 읽었다. 어긋나는 방식이지만 나름대로의 추모였다. 상위권이었던 과목의 성적이 서른 명 남짓의 학급에서 17등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5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마음이 헛헛해지는 증상이 사라진 것은 결혼 이후이다.


방과후로 만난 글쓰기 반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털어놓고, 내 마음을 정리했다. 시를 쓰고, 읽었다. 백일장을 핑계 삼아 학교 밖으로 향했다. 정말 씩씩했지만 문득 큰 슬픔이 밀려오던 고등학교 시절을 글을 읽으며 버틸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생겼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생겼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름의 기준이 생겼고, 어설프지만 삶의 가치관이 생겼다. 그러니 세상이 좀 괜찮아졌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이별을 겪었지만, 어쩌면 너무 바빠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시 추모를 생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이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의 슬픔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당시의 어른들도 그 녀석을 추모하고, 함께 이별하는 방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커다란 슬픔 앞에서, 결국 나도 그들과 똑같은 어른이라는 것을.  


같은 이별을 마주한 공동체는 어떻게 그 슬픔을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그 시작은 아마 우리 모두 슬프고,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하는 것이 아닐까.


 30년이 지난 아빠의 죽음이, 인사만 하던 친구의 죽음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타인죽음도 10년 동안 마음을 멍들게 할 수 있다.  


딸아이는 그 해.  예정된 달보다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다. 아이를 낳아보니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강력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을 마주 보려 한 적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딸이 죽음이 무엇이냐고 내 눈을 바로 보고 물은 날, 이 책을 만났다.


출처 - 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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