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어주셨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한단다. 본인은 IVe의 after like, 동생은 반짝반짝 작은 별, 엄마는 '내가 술래가 되면이지?'라고 한다. 내가 그 노래를 좋아했나?
평소에는 눈물을 잘 감추는 내가 뮤지컬 배우 김지훈이 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볼 때마다 아이들 앞에서 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눈물 치트키가 있다면... 나에게는 이 영상이다.
결혼 전에는 정말 눈물이 없었다. 아니 남들 앞에서 절대 울지 않았다. 초, 중, 고 시절 성적이 떨어져서, 숙제를 안 해와서, 반항을 해서.... ^^ 등 다양한 이유로 크게 몇 번 선생님들께 맞은 적이 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바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맞았다. 친구와 단 둘이 과학실에 가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울음의 이유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둘째가 아직 완벽하지 않은 발음으로 '엄마, 잘못했죠요!.'라고 하면 왠지 그냥 넘어가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눈물이 많아졌다. 조금만 감동해도 울고, 토요일마다 하는 KBS 동행을 봐도 울고,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다치는 드라마 장면을 보면 또 운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된 것인지... 더 아이가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몇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눈물이 안 나는 순간이 온다. 가끔 사람들 앞에서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슬픈 영상을 사용해야 할 때는 미리 집에서 몇 번이나 돌려 보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노래만은 아직 안 된다. 몇 백 번은 본 것 같은데, 김지훈이 부르는 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 어느 순간 정말 툭툭하고 떨어진다. 특히 '단풍나무 그늘 아래 여긴가.' 구절 부분에서, 내 마음 안의 무엇이 툭 떨어진다. 전생에 단풍나무와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코로나 시기에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 공연을 관람하기는커녕 외출조차 힘들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주던 프로그램이 바로 뮤지컬 프로그램이었다. 뮤지컬을 좋아한다. 뮤지컬을 볼 때면 짧은 시간 안에 극적인 상황을 다 때려(?) 넣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발단-갑자기 위기- 하강 - 또 갑자기 위기-결말'의 구성이랄까?
말 그대로 닫힌 생활이었다. 생필품도 온라인 주문을 하고, 가족들이 감기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다. 산후조리원에 있던 2주도 마스크를 내내 쓰고 생활했다.
" 둘째는 사람들이 입이 없는 줄 알았을 거야."
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 시기, 늘 마음이 답답했다. 그래서 감정의 답답합을 툭 터뜨려 주는 강렬한 뮤지컬 넘버가 필요했다.
그중 가장 나를 사로잡은 넘버가 '내가 술래가 되면.'이다. 본 적은 없지만, 6.25 전쟁의 군인 유해 발굴 작업을 다룬 뮤지컬 '귀환'의 넘버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가사. 슬픔이나 그리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가 자신의 옆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난 언제나 술래였지 / 가위바위보를 못해서 / 달리기가 꼴찌라서 / 높은 곳이 무서워서
난 언제나 술래였지 / 눈 감고 백까지 세면 / 똑같은 풍경화 속에 / 나 혼자 남아있었지
내가 술래가 되면
온 동네를 찾아다니다
산 밑까지 뛰어갔다가
집에 오는 길을 잃어버렸지
단풍나무 그늘 아래 여긴가
산등성이 돌탑 뒤에 여긴가
휘파람이 들리는 곳 여긴가
다 어디 숨었니
해 떨어지는데
<중략>
겁이 많은 나와 종이비행기를 함께 접어 날리고, 작아진 신발을 구겨 신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매일, 꽃이 피는 봄부터 눈 내리는 겨울까지 항상 나와 함께 뛰놀던 친구. 영상 속 엄기준은 세월호가 떠오른다고 했다. 집에 가자고. 밤이 깊었다고. 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면.....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 가자고 조르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나도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싶다고 입 밖으로 내뱉고 싶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존재는 떠올릴 때마다 '사무친다.' 아마 이 노래가 그 감정을 떠오르게 하나보다.
그럴 때마다 왠지 이 노래를 핑계삼아 우는 건지도. 나의 아이는 이런 노래가 필요치 않아도 보고싶다는 소리를 소리내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운 모든 사람들이.. 오늘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사무친 사람들에게 나타나 딱 한번 웃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