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집이 많다. 여기저기 덕지덕지 세월의 때들을 묻혀놓고 이리저리 상처받아 문지르고 덧대고 씌운 곳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돌담 같은 옛 정취가 풍기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멋스러운 전통적인 집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슬레이트 지붕, 시멘트 벽, 찢어지고 쓰러지고 닳고 닳은 집들이 띄엄띄엄 홀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집집마다 조금씩 자투리땅을 내어 무언가 심어놓고 있다. 하나씩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자라나는 싹들이 보이는 것 같아 다져놓은 흙만 보아도 절로 웃음이 난다. 건축가는 집을 지을 때 집을 어디다 지었나, 어떻게 집을 배치했나, 집은 어떻게 놓았나, 무슨 원리로 지붕을 저렇게 둔 건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집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는 그 집을 지은 건축가의 삶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곳은 큰 도시도 아니고 작은 도시의 구석에 논밭 과실나무만 가득하였었다. 지금은 원룸 건물들이나 새로운 현대적 주택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예전엔 이웃들이 띄엄띄엄 건너있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많이 살지 않는 작은 동네였다. 그런 이 동네에는 작은 새싹들이 어느 집에서든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먹고살기 힘든 그들이 먹고사는 방편으로 마련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웃 간에 서로의 삶을 돌봐주며 가꾸라는 건축가의 시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러한 옛집들을 점차 바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좀 더 편리하고 따뜻한 현대식 주택으로, 그렇게 오래된 집들은 쓰러지고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집들은 깨끗하고 단정하지만 그 선이 너무나 반듯하고 색이 선명하여 보는 데 불편함을 주는데, 그것은 오래된 집이 지니는 정겨운 역사가 없고, 부드러운 세월의 색이 없으며, 사람들의 온기가 없어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다 지워내는 것만 같아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또한 곤궁한 삶의 한 때를 책임질 땅뙈기조차 없어 집을 지을 때 고심하는 건축가의 사유가 보이지 않아 불편하다. 그래서 동네를 산책할 때는 으레 오래된 집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으로만 다니는 나를 보게 된다.
오늘은 바람이 좀 부는 날이었다. 코끝에 찬바람이 쉬~하고 지나면 온몸에 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걷기 싫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따스함에 잠을 자버리는데 시간을 쓸 것 같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끄고 동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눈은 아주 살짝만 뜨고, 시멘트 벽 바로 근처에서 천천히 걷다 보면 곰팡내 같은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시멘트 냄새를 내려두고 찬 벽에 머리를 기대면 어릴 적 온 동네를 쏘다니던 내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나는 친구들이랑 놀다가 어스름 저녁이 되면 밥 먹을 시간 지나 들어왔다고 혼쭐이 날까 땀이 뻘뻘 날 때까지 집으로 뛰어가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뛰다가 숨이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집 앞 전봇대에 뜨거운 이마를 갖다 대고 커다란 숨을 몰아쉬곤 했었는데, 그럴 때면 찬 기운이 가득 몰려와 정신없이 몰아치던 내 몸을 진정시켜주곤 했다. 그 전봇대가 꼭 그 벽 같아서 이 순간만큼은 그때 우리 동네에 와 있는 것만 같아서 산책을 나갈 때면 꼭 그렇게 벽면으로만 길을 걷는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걷다 문득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아 뒤를 돌아보면 띄엄띄엄 서있는 집들 사이로 그 시절의 내가 숨 가쁘게 뛰어오는 것 같아 나는 여기 이 동네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