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방을 일어나게 하는 날 친구를 찾았다. 쉴 새 없이 일을 한다고 잠깐 와서 도와달라 말을 듣고 낡은 차를 움직여 친구네로 출발했다. 원래 추운 날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터라 망설임 없이 움직였는데 친구네 부부를 본 순간 아차했다. 수산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주황색 앞치마를 길게 입은 친구의 신랑, 여기저기 붉은 꽃무늬가 박힌 앞치마를 둘러맨 친구를 보니 전투적으로 일을 하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보통일이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친구는 올 명절까지 강정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잘한다 잘한다 소문이 나서인지 뻥튀기 아저씨까지 소환하여 뻥을 튀기며 열심히 작업을 하는 중이다. 온 동네 할머니들이 찐쌀이며, 볶은 땅콩, 찹쌀 등등을 가져와 뻥 튀겨달라, 떡 튀겨달라, 엿 많이 넣고 강정 작업해 달라 작은 소란들이 이는 정겨운 곳이다.
쌀을 튀기는 작업은 꽤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 시장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뻥튀기 아저씨 앞에서 오래오래 기다리던 일이 생각났다. 언제 뻥! 하고 터지려나 어린 마음에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조마조마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쌀인지, 찹쌀인지, 보리인지, 찐쌀인지 종류에 따라 온도가 다르고, 달궈야 할 시간이 다르단다. 쌀 주인이 쌀만 두고 그냥 가버리면 한참을 씹어보고 먹어보고 쌀을 튀기기도 하였다. 한가득 싣고 온 석유통에 뻥튀기 기계를 연결하여 불을 지피고, 쌀에 맞는 온도가 되면 불을 빼고, 망을 연결하여 시원하게 ‘뻥이요!’ 하시든가, 호루라기를 ‘삐익’ 부시고는 ‘뻥!’하고 고소한 향을 풍기며 쌀들이 튀겨져 나온다. 수십 번을 들어도 귀에는 영 적응이 안 되는지 깜짝깜짝 놀라는 내 반응에 웃음 짓는 아저씨의 모습에 같이 웃고 만다. 몇 번을 튀기고 바구니에 튀긴 쌀들을 담는데 한 할머니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인상을 확 쓰시더니 ‘이게 와 이라노!’하고 쓴소리를 하셔서 친구도 친구의 시어머니도 뻥튀기아저씨도 한꺼번에 시선을 돌리는데, 쌀 색쌀이 이상하다. 뻥튀긴 쌀들을 대개 찐쌀이 아니고서야 하얀색을 띠는데, 이상하게 갈색이다. 먹어보니 약간 쓴맛이 나는데, 할머니가 그러신다. ‘탔네, 탔어. 뻥 잘못 튀갔네!’
뻥튀기아저씨 자존심이 상하신 듯 ‘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이거 몇 년을 했는데! 쌀이 잘못된 거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양쪽 얼굴을 오가며 내 시선이 오락가락하는 걸 보시던 친구 시어머니께서 답을 내리신다. ‘쌀 잘못됐나 보네. 정미소 전화한다. 마!’ 그러고서는 정미소 총각을 불러들여 쌀이 이상하니 다 가져가라고 하신다. 곧이곧대로 듣고 쌀을 몽땅 싣고 가는 청년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아서 친구를 쿡 찔러 물으니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일을 해결하시려고 그러시는 거라고 한다. 정말 쌀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갸우뚱하는 내게 뻥튀기아저씨도 계속 일을 하셔야 하는데 자존심 상하면 안 하시려고 할 테고, 탄 쌀을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일이고, 동네 어르신 손님인데 마음 상하게 해 드림 안 되니 그냥 정미소 직원만 달래서 쌀을 가져갔다 다시 가져오면 될 일이라 결정하신 것이다. 아! 정말 묘안이다.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누구든 누구의 잘못인가 시시비비를 가릴 때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을 텐데,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니.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탄 쌀은 그냥 우리 식구가 먹을 테니 뒤로 밀어놓으라고 하시며 정미소 직원에게 쌀값도 다 치르시고, 뻥튀긴 값도 다 주신다. 이 작은 사업소에서도 사업가의 경영 전략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정말 보통 일은 아니다 싶다. 이 완벽한 해결책을 현대 사회의 어떤 기업이 할 수 있을까.
한참 멍을 때리고 주변 상황을 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뻥을 튀긴 쌀은 이제 어떻게 될까?
강정을 만드는 작업이 이리 고되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튀긴 쌀을 라면 5인분 정도 끓일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양푼이에 넣어두고 재료를 준비한 뒤 넓은 팬에 기름을 먼저 두른다. 팬에 기름이 골고루 입혀졌으면 물처럼 중탕이 된 물엿을 두 국자 넣은 뒤 설탕을 한 스푼 넣고 휘휘 저으며 설탕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워 다 녹이지 않고 그냥 만들 경우에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한 번 먹어보겠냐며 씩 웃는 본새가 사나워 손사래를 쳤더니 설탕이 녹지 않으면 쌀들이 엉겨 붙어 제 모양이 나지 않고 이에도 들러붙어 식감이 나쁘고 맛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얀 설탕이 녹아 불투명 액체가 되어가면 쌀을 탁 넣고 나무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준다. 섞는 동작이 어찌나 큰 지 어깨 떨어지겠다며 보고 있으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큰 팬을 들어 옆에 탁자 위의 틀 안으로 팬 전체를 탁! 하고 거꾸로 뒤집는데 보는 내가 어깨 통증이 일어나는 듯 충격이 상당할 듯하다. 전체가 다 떨어지게 해야 일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그렇게 통째로 섞은 쌀을 던지듯 빼준다고 한다. 얼마나 쳐 댔으면 팬 한쪽이 다 찌그러져있고, 얼마나 주걱으로 휘둘렀으면 반듯한 주걱이 비스듬하게 깎여져 나갔다. 친구의 고된 노동을 보여주기나 한 듯 다 찌그러진 도구들이 내 시선까지도 찌그러트린다. 그런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친구는 나머지 쌀들을 주걱으로 싹싹 정리하여 다 덜어준다. 그러고나면 친구의 신랑이 뜨거운 물로 싹 닦은 틀 안의 쌀들을 기름 묻힌 장갑을 끼고 넓게 펴고, 밀대로 두께를 고르게 만든 다음, 틀을 빼내고 살짝 식혀둔다. 그 후 조금 식은 강정을 자르는 기계에 가로 세로로 한 번씩 밀어 넣으면 정사각형의 반듯한 강정이 완성된 것이다. 그 강정을 그물로 만들어놓은 탁자에 툭 떨어뜨려 놓으면 강정들이 식으면서 먹기 좋은 형태가 되는 것이었다. 찐쌀 한 되는 2판, 찹쌀 한 되는 4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수공비가 한 되에 15000원이고, 땅콩을 껍질을 까서 갖고 와야 하며, 얼린 생강보다는 가루 생강을 가져와야 만들기가 좋다고 여태껏 강정을 만들어온 사업가답게 잘 설명을 한다. 아직 어린 내 친구를 우습게 보시기도 하여 옆에 와서 물엿을 더 많이 넣어라. 달아야 하니 설탕을 더 넣어라. 땅콩을 더 많이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 훈수를 두시는데, 친구가 그런다.
‘그렇게 다 해드리는데 나중에 질척하다, 이에 붙는다 그러시면 저는 책임 안 집니데이.’
빙그레 웃는 내게 웃기냐며 핀잔을 주지만,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며 쌀에 맞춰 물엿의 양을 조절하고, 할머니들의 비위에 맞춰 설탕 양을 조절하고, 뭐라고 하시든 자기의 스타일에 맞춰 열심히 해 나가는 친구의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그러는 사이 친구의 시어머니께서 강정을 팔러 장터에 나가시고, 친구네 부부만 열심히 강정을 만들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께서 강정을 만들러 오셨다.
‘아이고, 일꾼도 없이 둘이 하나? 힘들어서 우짜고’
걱정 섞인 소릴 하시더니 살짝 와서 등 뒤에다 그러신다.
‘실패해도 괜찮데이.’
아, 너무 행복하다. 할머니의 다정한 미소와 애정 어린 목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아 자꾸만 그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고집불통 할머니들이 많은 것 같아도 이렇게 대개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수고한다 등 두드려 주시고, 만들어진 강정들 보고 있는 내게 강정 몇 개 손에 쥐어주시며 ‘이런 건 허락없이 먹어도 된다’고 자꾸만 먹어보라 하신다. 귤향 나는 강정, 생강향 나는 강정, 편의점에서 사 오신 짭짤한 견과가 든 강정 등 여러 종류의 강정들을 얻어먹다 보니 시간이 반나절이 지났다. 배달 심부름 몇 개 해주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동네 언저리 산책을 다니는데, 쉴 새 없이 일만 한다는 친구의 힘든 등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살이 빠져 라인이 드러난다며 즐겁게 웃기는 했지만 단 한순간도 앉지 못하고 팔과 어깨를 휘두르며 팬과 싸우는 친구가 안쓰럽다. 한참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휘익휘익 탁 주르륵 만들고 털어내고 미는 모습이 음악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어떤 음악이 이렇게 단조롭고 군무와 같은 적확한 리듬으로 사람의 귀를 건드릴까 하지만 한 시간만 듣고 있으면 고소한 향기와 함께 들리는 음악들이 아이들의 입으로 어른들의 입으로 바삭바삭 들어갈 모양새가 함께 생각나니 구성진 풍악만큼이나 듣기가 좋아진다. 노동이 저런 건가 하며 걷는데, 바람이 나를 들어 올릴 기세로 불어댄다. 하지만 생각만큼은 들어 올리지 못하는지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며 친구의 노동을 생각했다. 쉬고 싶으면 몸을 움직이라 했는데, 그만큼 정신노동이 힘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종일토록 움직이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정신노동 따위가 다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일 고생했다며 좋아하는 강정들을 한 보따리 챙겨주는 친구에게 이걸 받아갈 자격이 없다며 값을 치르겠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며 바리바리 싸주는 것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 안 가득 풍기는 고소한 향내와 함께 친구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한참이나 떠올랐다. 그 등 한 번 쓸어주지 못하고 온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