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기억.

by 소라

수술대기실

성인침상 6, 성인휠체어 5, 소아침상 2

분주한 발걸음, 수술복, 환자복이 여러 겹 뒤엉켜 머리 위를 그리고 지나간다.

해외로 팔려나가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배에 실린 차들의 모습처럼

그들 수술의 성공여부와도 관련이 있다는 듯 침상이 나란히 줄 서 있다. 침상을 고치는 건지 사람을 고치는 건지 침상에 열중하는 동안 하나씩 수술방의 시간에 맞추어 침상 위는 고쳐지러 들어가고 10번과 12번의 침상만이 덜렁 남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고쳐질 수 없다 선고받은 것처럼 죽음과 대면하는 허공 속 두려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손을 들어 휘휘 저으며 누군가를 향해 인사하는 손짓이 생을 마감하는 듯한 움직임 같아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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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단다.

아이의 침상이 옮겨지고, 수술복과 마스크, 모자를 쓰고 아이와 함께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이름을 확인하고, 어느 위치에 무슨 수술을 하러 왔는지 묻는다. 자칫 실수로 이어질 수 있는 생명을 목전에 두고 하는 위험한 시도. 마취하기 전 감기 기운이 있는지 가래가 있는지 이가 흔들리는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한다. 이가 흔들리면 수술 중 이가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가래가 있으면 폐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수 있고, 기침이 심해질 수도 있어 미리 확인을 하고 아이가 위험하다 판단이 되면 수술을 미루어야 한단다. 위험의 단초가 되는 것을 모두 제거한 후 재차 아이를 확인하고 모두 맞다고 대답을 하고서야 마취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걸쭉해보이는 하얀 마취액이 아이의 링거에 꽂히고, 액체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아플 거라는 말을 듣고 아이가 인상을 찌뿌린다. 마취가스가 아이의 입에 씌워지고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함께 세는 동안 아이가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옆으로 비틀자 의료진이 아이를 바로 잡아 눕힌 후 잠이 드는 것을 확인하였다.

수술 후 부르겠다하여 안내를 받아 보호자 대기실로 오는데 그 꼬불꼬불하고 혼란스럽고 시장 바닥같이 어지러운 길들이 안개에 가려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울렁거린다. 아이를 어디 멀리 보내는 것도 아닌데 자는 아이를 두고 나오는 그 순간의 세계가 얼마나 황폐해지는지 마음이 아려서 그 쪽으로는 시선조차 둘 수 없다. 마취하고 수술하고 깨는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이라 하여 책을 들고 왔는데 무겁게 챙겨온 책이 말 그대로 무게로 느껴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아 책을 꺼내 의자에 두었다.

수술 환자 상황 안내판.

수술 중.

신규 환자 7세.

모두 다 성인인데 7세라는 나이가 뜨자 보호자 대기실 모두 한탄을 한다. 어린 아이가 이 시간에 수술을 하냐고, 아이고 쯔쯔 혀를 차며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무거운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책을 꺼내놓았음에도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방을 자꾸만 뒤적거리게 된다. 무거운 게 있나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겁고 또 무겁다. 책을 내려놓은 것처럼 시름을 좀 덜고 싶어 가방을 내려놓을까 하다 내려놓지 않는다. 내려놓으면 안 될 것만 같다. 수술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 침상이 지금 내 어깨에 놓여진 무게같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책마저 집어넣는다.

다 살아내겠다고 작은 몸이 씩씩하게 혼자 견디고 있는데 다 큰 내가 조금 무겁다고 내려놓으면 안 될 것만 같다.


안내벨이 울리고 000보호자 수술실 앞으로 오세요 라는 방송이 이리도 철렁 가슴이 떨어지는 일일 줄이야. 할머니의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아빠의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겪지 못했던 아픔이, 이지러지는 상황들이, 이 순간들이, 폐부 깊숙이 들어간 가시같은 숨들이, 아프다. 무게에 넘어질 것만 같아도 쓰러질 것 같아 의자를 꼭 붑잡고 있어도 안내판에서 눈을 뗄 수는 없다.

수술중. 수술중. 수술중.

언제 끝나려나

집착처럼 모니터에 열중하는데 대기실로 안내했던 의사가 다가왔다. 얼른 수술실로 오라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아니면 이제 끝난 건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는데, 수술 대기실이 아닌 수술실로 데리고 가는 통에 혼자 만 가지 상상쯤은 한 것 같다. 수술실로 가는 길은 왜 드라마와 같이 깨끗하게 정리된 복도가 아니라 여기저기 환자복이 쌓여있고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혼란스럽게 쌓인 시장통 통로 같은지 정신을 어지럽히고, 그 겹겹이 쌓인 물건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먼지들처럼 묻어나오는데 숨구멍을 막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그리 혼란스러운 와중에 ‘여기가 아닌가’하는 의사의 말에 더 놀란다. 수술실에 아이가 없다. 수술방에서 다음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앉은 의사만 멀뚱히 우리를 바라봤다.

결국은 그 분의 실수.

수술 대기실로 돌아오는 길에 호되게 혼나는 의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혼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덕에 내 심장은 남아나지 않을 뻔 했다.

수술은 잘 되었고, 마취만 깨면 된다는데, 언제 아이가 깨어나나 한참 들여다보니 기지개를 쭈욱~ 키고 눈을 뜨더니 엄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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