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혈

by 소라

딸아이의 방에서 베란다로 나 있는 문에는 유리로 된 창이 여러 개 붙어있다. 괜한 셀프인테리어 바람으로 체리색 창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하다 창에 페인트가 묻어버렸다. 꼼꼼하게 창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칠하라는 경험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세심하게 칠하겠다 섣부른 마음만 믿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초보자의 붓터치는 세밀하지 하기는 커녕 몇 번의 붓질만에 뭉툭하게 다 발려버렸다. 체리색 창틀보다 더 그 창문이 보기 싫어 그림으로 가려놓았는데, 그 창과 그림 사이에 낀 나무 막대를 보지 못하고 문을 세게 밀다 그만 유리창이 깨져버렸다. 유리조각을 쓸고 물티슈로 닦고, 깨진 창에서 유리를 하나씩 빼내다 오른손 검지 한 마디를 깊숙하게 베이고 말았다. 날카로운 유리가 순간 피부 속을 쑥 파고드는데 탱탱한 푸딩에 숟가락을 푹 꽂아 넣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러나 정작 베이는 순간에는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치듯 뭔가 지나는 느낌에 손가락을 보니 피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핏방울이 뚝 바닥으로 떨어지자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 신경이 곤두서고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오른손 검지를 꾹 누르게 된다. 휴지로 닦아내다 지혈이 안 되는 것을 알고는 주방으로 뛰어가 손을 씻어내고, 두꺼운 키친타올로 손가락을 꽉 쥐는데 그 두꺼운 키친타올이 빨갛게 물드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피가 많이 베어져 나오는 데도 아무런 통증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하얀 키친타올이 시뻘건 피로 물들어 보기 흉측해지자 싱크대로 던져넣고는 약통을 꺼내 제일 큰 밴드를 찾았다. 잠시 밴드를 붙이기 위해 눌렀던 손가락을 떼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다가오는 통증들이 온 감각을 집중시키고 그 작은 아픔이 견디기 힘들어 손가락을 꼭 쥐고 밴드로 칭칭 감았다. 밴드를 다섯 개쯤 갈고나니 더이상 피가

베어나오지 않는다.

내게 속한 부분. 그래서 그 어떠한 것도 내게는 낯설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내 것. 그러한 내 것에 작은 상처가 나고 아픔이 스치니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게 속한 것조차 이리도 이질적이라니!

동질적인 것과의 교류만이 익숙하다 여기고 이질적인 것은 피하려고만 하는 나는 이런 익숙하지 않은 대면이 아직도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불편해서 마주하지 않으려 했고, 불편했기에 피하기만 해서 나는 성장할 수 없었다. 반성하고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힘든 것은 내게 갇힌 나를 아직도 꺼내지 못함은 아닐까. 아직 내 마음 속 손가락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 그것을 지혈할 밴드가 없다. 5개는 있어야 지혈이 될 텐데,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낯선 상황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당황하게 만들지만 이런 사귐이 적잖이 반가운 것은 낙담할 만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 아직 희망은 있다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오늘도 이 낯섬은 내게 머리를 들이밀고 내 무릎을 툭툭 친다. 자기를 봐달라고. 오늘 하루 많이 힘들었다고. 고단한 하루를 만져달라고. 이제 내 세계로 들어와 내 것이 되고 싶다 하는 이 낯섬이 아직도 나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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