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52초. 당신의 수명이 연장되었습니다.

ㅡ벌써 6년이나 된 이야기.

by 소라

오래전 이런 이야기를 끄적였었다.

ㅡㅡㅡㅡㅡ

건강 계단.

계단을 오르면 수명이 늘어납니다.


한 계단을 밝을 때마다 늘어나는 3초의 수명 연장, 계단은 하나의 뭉텅이로 싸매져 24초씩 나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있었다. 두 번째 뭉텅이를 오르니 48초, 또 오르니 1분 12초, 또 1분 36초,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 염려스러웠던지 이번엔 18초만 준다. 더 올라만 가고 싶게. 불로초를 찾아 영생불멸하고 싶다 갈망한 중국의 어느 유명한 황제처럼 계단 위에 올라서서 자꾸만 위를 쳐다보게 된다.


지금껏 차지한 수명 연장 시간은 1분 52초다.


내가 열심히 걸어온 그 계단은 일반 병실에서 폐렴이 심해지는 바람에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진 아빠가 누워있는-인공호흡기를 달고, 일부러 수면제로 잠이 들게 한-중환자실로 가는 계단이었다.


새벽녘 길을 건너던 아빠가 달려오던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서 꼬박 40일을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긴 지 5일 만의 일이었다.


‘폐렴이 심해지셔서 ICU로 다시 가셔야 합니다.’


순간 ICU가 뭔가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니 의사가 가르쳐준다. 집중치료실이라고. 바보 같게도 집중적으로 치료를 하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인가? 하고 묵묵부답인 내게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대뜸 중환자실이요.라고 답을 내려준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들어갈 때마다 손을 씻고 발라대야 했던 손 소독제 냄새, 아빠를 여기저기 만지다 나오면 늘 묻어나는 약 냄새가 다시금 깊숙이 파고들고 그 여파로 어지러워 한참을 벽을 붙들고 기대서 있어야 했다. 병문안을 갈 때마다 열이 나는데, 왜 열이 계속 나는지 물어도, 땀을 잘 안 흘리는 편인데 계속 땀이 난다고 분명 설명을 했는데도 그냥 힘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고 열이 조금씩 나긴 하는데 원인은 모른다고 했었다. 그래서 원인을 찾겠다고 여러 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 폐렴이란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하여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라 다시 중환자실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중환자실에서 열이 계속 났을 때 그런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울화가 치밀었으나, 내가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입장도 아니었고, 계속 아빠를 돌봐주셔야 할 분이기에 그냥 알았다 하고 끊어버리고는 애꿎은 전화기만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대다 가방 속에 냅다 던져버렸다.

아빠는 어떤 약인지도 모르는 치료를 한다는 약들을 6개나 몸에 꽂아놓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도 없는 피를 몸으로 직행하게 내버려 두고 있었으며, 폐를 쉬게 한다는 이유로 수면제를 먹어서 잠든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래프들이 아빠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고, 건강한 폐 그림이 그려진 인공호흡기에 아빠의 생을 맡겨놓고 있었다. 아빠의 주변에는 온통 알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데 전부 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데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염치가 없어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아빠는 이런 기계에 목숨 맡겨놓고 살고자 하는데, 나는 1분 52초 목숨 늘리겠다고 계단을 걸어서 왔어. 아빠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시간 동안 내가 목숨을 늘려보겠다고, 삶을 늘리겠다고 계단을 걸어왔네? 아빠 딸 참 나쁘지.’


중환자실에서 아빠는 눈을 뜨고 있을 때면 계속 소리를 지르셨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아빠의 고함 소리였다. 처음엔 그저 섬망 증세라 해서 일종의 단순 사고 후유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리 좀 그만 지르라고 다른 환자들에게 폐가 된다고 아빠에게 핀잔을 주었다. 금세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또 소리를 질러대는데, 아파서 우는 소리 같아서 더 이상 아픈 아빠를 다그칠 수가 없었다, 평생 내 앞에서는 아버지로 사셨으니 울음 한 번 편하게 내뱉지 못하셨을 텐데 그냥 그리 우시라고 모른 체를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 보니 웅얼대던 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온다.


‘어머니!’

‘아빠, 할머니 부른 거야?’

‘......’

‘아빠, 할머니 돌아가셨잖아. 기억 안 나?’

‘......’


또 어머니를 부르며 소리를 지른다.

물조차 마시는 것이 허락이 안 되는 아빠는 눈물도 말라버려서 내내 그렇게 소리만 지르고 있나 보다. 평생을 두고 자기편은 할머니 밖에 없다 하더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금 슬픔을 가득 안고 자기 안의 생을 둘러보고 있나 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또다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와 눈물은커녕 슬픈 표정도 지을 수 없겠지.

그런데 이젠 그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덩그러니 누워만 있다.


잠든 아빠를 지켜보면서 내가 살기 위해 감히 쌓은 1분 52초의 삶은 아빠가 잠들면서 내게 내줘버린 자기 생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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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고통이 내게는 나를 깊숙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지만 아직 그날의 감각이 생생하기만 하다. 아빠는 모두 다 죽음의 시간만 기다려야 한다고 했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 부자연스럽지만 걷기도 가능한 만큼 많이 좋아지셨다. 기억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예전만큼 유려한 말투를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서툰 몸으로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내딛고 있다. 나의 수명을 늘리는 동안 아빠 역시 자신의 시간을 견디며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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