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자세히 느낄 수 없다. 차별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을 당하지 않고는 절대 차별 당한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없고, 직접 길을 나서보기 전까지는 그 길이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노인이나 임산부의 심정을 알아보라며 체험 센터도 생기고 여러 가지 수업이나 영상 자료도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해보지 않고서야 노년의 감성까지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직접 열 달을 배에 넣지 않고서 어찌 임산부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니 배불러 돌아다닌다는 욕을 할 수 있겠지.
오래전 경산역 근처 서점 앞에 만든 ‘장애인 경사로’ 철거 논란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 출입구에 외부경사로를 설치했는데, 경사로가 보행자에게 불편을 준다고 민원이 들어와 시에서 철거를 요청했다 한다. 그렇지만 책방 측에서는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 충분하기에 다시 철거취소요청을 했으나 그렇다면 모든 경사로 신청을 들어주어야 한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장애인 복지시설관련하여 기사가 나고 사람들이 아는 척을 시전하자 다시 조사를 하고 검토를 하겠다했다는데, 제일 좋은 것은 책방 측이 턱을 깎아 낮게 만드는 것이라며 아직 명확한 해결책을 찾진 못 했다 한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 불편하니까 들어주지 왜 그런데? 민원은 왜 들어왔을까?라고만 생각했지 불편했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아빠와 대학 병원에 검진을 가면서 난 또 한 번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빠와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근전도 검사는 적어도 3시간은 걸린다고 하기에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는 아빠와 같이 있고, 간병인과 교대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근전도 검사라 해서 난생 처음 듣는 검사에 갸우뚱했다. 모두들 근전도 검사라면 심전도 검사 아니냐며 처음 듣는 검사라고 했다. 아침에 일이 있어 조금 늦게 도착해 아빠가 먼저 가 있었는데, 근전도 검사실이 어디냐고 안내하시는 분께 여쭤봐도 근전도 검사는 처음 들어봤다고 하셔서 치료를 받는 재활의학과를 찾아가니 척추센터 안의 근전도 검사실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근전도 검사란, 신경과 근육의 전기 생리학적 현상을 기계를 이용하여 시행하는 검사로 질환의 정도와 범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네이버 지식백과)이라 한다. 아빠의 오른쪽 다리는 정강이뼈 골절과 대퇴부 골절이 심해 쇠?를 뼈 안에 부목처럼 대서 수술을 한 상태인데 다리 바깥쪽 피부는 남의 다리 만지는 듯 신경이 돌아오지 않고 있고 발목을 꺾는 것조차 되지 않는 상태이다. 왼쪽 다리 역시 그리 골절이 되었으나 오른쪽만큼 심하진 않아서 지금은 감각도 느껴지고, 움직임도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오른쪽 다리가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검사를 받으려 대학병원을 찾은 것이다. 신경손상이 의심이 된다고 하셔서 검사를 받았는데, 골절 부위 모두에 신경 손상이 있고 오른쪽은 아주 심하다고 한다. 팔도 뼈가 부러지지 않았는데 부러진 것처럼(흡사 혹과도 같다) 어깨뼈가 돌출되어 재활을 시작해야 하고, 신경은 재활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단다. 온몸을 주삿바늘로 찌르며 검사를 하는 것이라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셨다. 그런데 아프다고 신경질적이 되시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몸 상태를 보기 위한 거라고 참는 아빠를 보니 마음이 더 아팠다. 2시간 넘는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아빠가 검사실에서 나와서 탈의실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데, 가는 입구가 너무나 좁았다. 휠체어가 편하게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겨우겨우 밀어 넣었는데, 나올 때 역시 녹록지 않아 이리저리 휠체어를 움직여 빼는데 애를 먹었다. 환자 대기석을 조금만 밀면 공간이 훨씬 더 여유로워질 텐데.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동안은 병실도 넓고 모든 것이 환자에게 맞춰진 재활병원에만 있었기 때문에 공간도 넓고 다니기 좋았다. 그런데 일반인들도 아주 많이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는 곳인 대학병원은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작은 편안함을 줄 공간은 넉넉하게 주지 못했다. 다들 너무나 바쁘고 바빠 타인을 배려할 틈은 그 누구도 없어 보였다. 단편적인 예로 우리 집만 봐도 단 한 사람도 신체적인 조건으로 불편한 사람이 없어 장애인들이 어떻게 다니는지, 어떤 불편함을 겪고 사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자 해놓고서는 어느 순간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다. 그냥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탈의실로 가는 길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아주 좁은 길이라 해도 어떻게든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절대 혼자서는 들어가기 힘든 구조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되는데, 그 작은 배려가 훨씬 더 나은 생활을 만들어주는데 참 답답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병원인데, 그것도 중환자들이 많은 대학병원인데 그들을 위한 배려가 이리도 없다면, 그들에게 사회는 대체 어떤 곳이었을까.
장애인은 세입자로도 받지 않는 거라며, 예전에 월세를 내지 않아 나가라 했더니 장애인 단체 전체가 시청으로 몰려가 악덕 건물주 물러나라며 몇 날 며칠을 시위를 해서 이사비 쥐어줘 가며 겨우겨우 부탁해서 나가도록 해야 했다고 자기들의 권리만 생각한다며 핀잔을 주던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겠다 소리를 질러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배려조차 힘든 사회에서 갈 곳을 잃고 설 자리를 잃어가니 그리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도와달라고 애를 써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 강제성을 부여하고-강제성을 띄지 않는 법은 무용지물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을 것이니-, 그 법으로 인해 차별을 조금씩 줄여나가고자 하는 것이 약자들의 연대 이유라고 들었다. 간극을 좁혀가는 것.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 사회적 시선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 본질을 바라보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