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반찬이 없어 마트를 돌다 아이가 먹고 싶다 했던 시금치 앞에 섰다. 파랗게 쭉 뻗은 시금치를 보고 멈칫한다. 큰 시금치는 맛이 없다고 했는데, 작은 시금치를 골라볼까 시금치를 고르다 귀찮은데 저걸 언제 다듬고 씻고 양념을 넣고 무치나 생각을 하다 문득 냉장고에 덩그러니 데쳐져 뭉쳐 있던 시금치 한 덩어리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오일장을 즐겨 가셨다. 5일마다 오시는 시장 할머니들과의 입담도 즐겁고, 이것저것 고르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즐겁고, 무엇보다 심심하지 않은 소일거리들로 가득하다고 좋아하셨다. 장에 가서 상인들과 나물을 다듬기도 하고, 그 나물을 사 와 온 방에 펼쳐놓고 하나씩 다듬으며 텔레비전 드라마 줄거리를 이야기하시는 것을 즐기셨다. 대개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들을 하셨지만, 그냥 웃으며 다 들었었는데 그렇게 나물을 사 온 날이면, 늘 냉장고에는 데친 나물들이 일회용 봉지에 꽁꽁 묶여 놓여 있었다.
할머니 드시지 힘들게 다듬은 거 뭐 하러 가지고 오셨냐고 하면 귀찮아서 젊은애들이 그런 거 하냐며, 하지 말라고 한사코 말려도 늘 가지고 오셨었다.
할머니께서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온몸을 웅크리고 내게 전화를 했을 때도, 퉁퉁 부은 몸으로 힘없이 나를 쳐다보았을 때도 , 축 쳐진 시선으로 빙그레 웃으셨을 때도, 돌아가시기 전날 환한 얼굴로 내 꿈속에 찾아오셨을 때도 몰랐다. 할머니가 그렇게 그리워질 줄은.
이렇게 마트에서 시금치를 보다가, 삶은 나물 코너를 보다가 찡해진 코끝을 훔치며 눈물을 꾹꾹 차까지 눌러 안고 가서는 차 안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할머니가 그렇게 그리워질 줄 몰랐다. 냉장고에 덩그러니 놓인 데친 나물이 이리도 선명하게 기억날 줄 몰랐다. 온전하다 느꼈던 내 삶이 송두리째 뭉쳐져 차디찬 냉장고 안에 놓인 것만 같아 내 모습이 내내 시렸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는 삶의 전부를 밭에서만 보내신 외할아버지의 밭을 볼 때마다 땅을 매만지며 눈물을 흘리신다고 하셨었다. 이뻐하시던 강아지를 볼 때도, 그리 싫어하시던 신김치를 볼 때도 그렇게 생각이 난다고 하셨었는데, 이렇게 사소한 일상이 순간을 휘청이게 하는구나. 그 말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