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카메라

by 소라

아빠다!

입원한 지 6개월, 사고 후 이제 좀 내가 딸이라는 걸 인식한 아빠였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아침에 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아빠 괜찮아. 낼모레 퇴원할 거니까 걱정 마.’

퇴원은 무슨, 4개월은 있어야 한다는데, 아빠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괜찮다는 말씀만 연신하시고는 면회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끊으셨다.

오지 말라고 해 놓고 보고 싶은가 보다.


비가 세차게 내려 우산 쓰고 좀 걷고 싶었는데, 잘 됐다 하며 짧은 바지에 구두를 신고 작은 우산을 펼치고 -우산이 크면 비를 일부러 맞기가 쉽지 않다-첨벙거리며 물웅덩이도 지나고,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우산으로 받아내며 튀는 빗방울을 피하지 않고 흠뻑 맞아주기도 하며 병원에 갔다. 온다는 소리에 8시 반부터 로비에서 기다렸다는 아빠에게 좀 미안했다 물장난하느라 늦다니! 오전 운동이 끝나고 피곤해서 잠시 낮잠을 즐기는 것 같던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눈을 번쩍 뜨고는 웃는다.

‘아빠 점심시간이래, 밥 먹어야지.’

‘너 밥 먹어.’

‘난 밥 먹고 왔는데?’

‘휠체어 가져와. 나가자.’

간병인이 밥 먹어야 한다고 앞치마를 가져오고 식탁을 올리자 역정을 내신다.

‘딸내미 왔는데 애 밥 먹여야지. 내가 왜 밥을 먹어? 안 먹어! 내가 딸 밥 먹인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

참, 못 말린다. 우리 아빠.

아빠는 사진을 좋아하셨다. 사업을 하느라 가뜩이나 바쁜데 사진까지 찍으러 가야 해서 늘 집에 없는 아빠가 야속해 괜한 카메라를 붙들고 화를 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불만을 품은 와중에도 아빤 사진대회에 나가는데 아이 사진이 필요하다며 강가로 숲으로 나를 끌고 다니며 이런 포즈 저런 포즈를 요구하기도 해서 사진은 가짜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이 바로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의 사업이 많이 기울어져 가족들이 흩어져 살게 된 시기에 그 마지막 우리의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아빤 카메라를 들고 나와 바닥에 엎드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우리의 모습들을 담아내기도 했었는데,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의 난 어떻게 그 소중한 시간을 사진만 찍어내느라 다 버릴 수 있었냐고 아빠의 생각 없음을 질타하기도 했었다. 이런 기억들만 가득한 사진이 내게 곱게 비칠 리가 없다. 그래서 내게 사진은 나와 거리가 먼 세계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주변에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지고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도 생겨나는데, 카메라를 배워보겠다 스스로 꺼낸 적은 없었다. 그저 폰이 없을 때 똑딱이 기능만을 요구할 뿐이었는데, 요즘 아빠를 만나고 난 후 아빠의 모습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많이 쇠약해져서 깡 말라버렸지만 머리가 하얗게 세버려 노인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병약하고 깐깐한 아빠가 되어버렸지만, 아빠는 내가 보고 싶고, 나를 먹이고 싶어 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빠로 돌아와 있었다. 예전처럼 멀쩡하다고 오지 말라고 하진 않지만, 바쁜데 자주 오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 아빠를 언제고 기억하고 싶을 때 그 모습 하나 남기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카메라로 마구 찍어대고 싶지도 않다. 아빠가 주신 카메라로 최대한 잘 찍고 싶다. 그래서 카메라를 조금씩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에 다 해버릴 수 없는 도구이기도 하고, 아무거나 막 배우고 싶지는 않아서 주변에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 가르쳐주겠다 선뜻 응해주셔서 카메라를 들고 갔다. 자동으로 돌려놓고 그냥 자동 초점을 찍어보기만 했다니 좋은 카메라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웃으시고는 카메라를 돌려보시며 이것저것 가르쳐주셨다. 바보같이 카메라 충전 상태를 보지 못하고 가서 5분도 배우지 못하고 카메라는 꺼져버렸지만 밝게 웃으면서 다음에 또 가져오라고 배려해 주신 마음이 고마워 또 가보려 한다. 자꾸 찍어보아야 한다고, 찍다 보면 어느 곳에 마음이 가는지 알 거라고, 그리고 사진을 많이 봐야 배운다 얘기해 주셔서 사진전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직은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고, 사진 조정을 통해서야 겨우 사진 몇 장 볼 수 있는 정도지만, 무언가 아빠에게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 설렌다. 아빠를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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