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냥 일기

잠이 오지 않아 쓰는 일기는 위험하다

by 소라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집을 본 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이사를 결정하고 3일 만에 이사를 해치워버리고 개학을 하고 정신없는 1학년들과 삼주를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날이 왔다. 그런데.. 젠장 잠이 안 온다. 오랜만에 푹 쉬어서인지 느지막이 마신 아아 탓인지. 야심 차게 티브이를 없앤 후 중독되어 버린 유튜브 쇼츠도 지겨워져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좀 삶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이사하고 여유로워져서인가. 피곤에 절어 머리만 닿으면 잠들 때보단 확실히 여유로워지긴 했지만 무려 새 학기인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낯설다. 늘 마주하던 벽이, 늘 듣던 음악이, 아이방문 앞 문 열라고 소리치는 고양이 가을이의 울음조차도 낯설다. 언젠가 내 어린 친구는 생생한 생경함이란 표현을 썼었는데 그런 것인가. 텅 빈 마음 추스르고자 생각의 꼬리를 잘라버리려 하는데도 자꾸만 비집고 들어오는 이 녀석 때문에 잠은 다 잔 듯하다.

이런 날이면 자주 드는 생각이 대화의 굶주림에 관해서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끔 지친다. 누굴 만나도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되는 것 같아 힘이 든다. 그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주도를 하며 떠들기도 하면서 왜 내내 힘이 들고 쉬고 싶을까. 누군가의 먼저번 인생도 누군가의 부모도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자식도 아닌 그저 나인채로 대화할 수 없는 것에 지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문학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사뭇 떠오르기도 하고 아주 많이 사랑했던 내 어린 친구를 마음 아프게 했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아직 그 친구의 이야기에 솔직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애쓰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편안하게 바라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게 핑계라면 핑계일 것이다. 그 대화가 더 이상 즐겁지 않을 테니까.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또 편안히 편지를 쓰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오지 않아도 할 수 없지. 아주 많이 사랑하는 친구인데 거짓말하고 싶지가 않다. 언제쯤 잠이 들 수 있으려나. 이럴 땐 오래된 책장 속에 오랜 시간 박혀있는 책이나 꺼내면 좋으련만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가면 영 잠을 못 이룰까 겁도 나고 움직이는 게 귀찮기도 하다. 파도소리 듣고 싶은 날이네. 조용하게 한나절만 입 다물고 앞에 선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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