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적을 부르는 아이

by 소라

아이들이 동아리활동을 하고 난 후 미술관 관람평을 쓴 것을 보았다. 재밌었다. 지루했다.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등등 여러 단답식 관람평 가운데 단연코 눈에 띄는 장문의 관람평이 있었다.

이른 아침 비몽사몽 눈을 떴는데 신새벽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의 느낌을 그림을 보며 느꼈다고 한다. 추상적 형상을 구체적으로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매일 매일 감사일기를 쓸 때, 독서감상문을 쓸 때, 독서 한 줄 평을 남길 때도 늘상 나를 감동하게 하는 문장들을 쓰곤하는데 그림을 보고 이러한 감상을 남기는 감동적인 친구가 있다니 괜시리 내가 뿌듯해진다.


통사론(統辭論) ㅡ박상천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 박상천,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문학아카데미, 1997/


이 아이는 박상천의 시에서 부사어와 같은 아이이다. 일상은 단지 주어와 서술어, 간혹 목적어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는 단조로운 것이었다. 그런 내게 플롯이 살아있는 일상을 주는 아이가 있다니. 아무것도 쓰기 싫었던 나의 펜을 들게 하고 시집을 읽게 하고 삶을 생각하게하는 아이 덕에 나는 오늘 감사하다.

이 아이는 문학적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도와주고 매사 감동적 일상이 되도록 해 준다. 이렇게 기적적인 만남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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