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비하인드 스토리 (4)
집도 절도가 첫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 이성호 감독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이 작가. 오늘 술 사!. 내가 당신 서울에서 머리 올려준 거니까!"
"암요 암요~"
이성호 감독과 함께 삼일로 창고 극장으로 향했다.
[집도 절도]는 이미 대구에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었기에 이 작품의 재미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거기다가 한예종의 유명한 연출가 선생님이 공연을 맡으셨다.
거기다가 대학로의 배우들이 공연을 한다. 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고, 공연을 보고 나서 나는 나오자마자 말했다.
"감독님 술 먹으러 가죠. 저 지금 술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으니까!"
우리는 내려와서 제일 가까운 술집인 족발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는 소주 3병을 마셨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알았다.
내가 글을 잘 적어서 이 작품이 흥행한 것이 아니라 좋은 연출과 좋은 배우가 공연을 해 줬구나.
다시는 연극을 하지 않겠다고 맘먹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의 연출가 선생님께 장문의 메일을 적어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차마 부끄러운 짓이고, 그분에게는 아마도 최고의 트라우마가 되었을지 모를 편지였을 텐데
그분은 대인배셨다. 그 일로 내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는 걸 보면.
장문의 메일 내용은 연출 이따위로 하지 마라였다.
교수님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이유가 논문을 대신하여 이름만 거는 크레디트이라면
적어도 연출을 배우들에게 맡기지 말았어야 한다며 뼈 때리는 팩폭을 했던 것이다.
연출의 부재와 배우들의 혼란. 애드리브 남발과 작가 의도의 부재가 된 그 작품은 산으로 간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그 연출가 선생님에게 비록 욕을 하긴 했지만 나도 반성을 한 계기가 되었다.
대구에서 공연을 했던 배우들과 연출에 대한 고마움.
그 작품의 흥행이 나의 실력이라고 믿었던 그 오만함에 대한 반성
그 모든 것이 교차하여 절필을 선언했던 것이다.
소주 3병을 먹은 나는 취해 서울 아현동의 작업실로 왔다.
그리고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나에게 아침 일찍 한통의 전화가 왔다.
낯선 전화번호는 대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단비의 담임선생님의 전화였다.
"단비 어머님이시죠? 저 단비 담임입니다."
"아.... 네... 선생님. 죄송해요. 애 맡겨놓고 제가 서울에 있어서 너무 뜸했죠?"
"아닙니다. 안 그래도 어머님 서울에서 작가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단비가 저학년인데 이번 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았어요. 너무 기분 좋은 소식이라서 일부러 전화드렸어요."
나는 기분이 얼떨떨했다.
나 어젯밤에 분명 절필을 선언했는데......
단비가 나를 닮아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단다.
부랴부랴 선생님으로부터 단비가 적은 동시를 문자로 받은 나는 그 동시를 읽으면서 웃었다.
가을이라는 제목의 시인데 단비는 거기에
낙엽 한 잎 낙엽 두 잎
송편 한 입 송편 두 입이라는 라임을 맞춰 적은 글이었는데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때 내 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아직은 절필하지 말자.
단비에게 난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는 가난한 엄마인데
단비에게 작가 엄마라는 거 하나는 제대로 해주자.
그래~ 연극이 배우 예술이면 어때~
난 이제부터 시나리오 작가인데. 시나리오 잘 쓰면 되지.
연극 [집도 절도]의 서울 첫 공연은
내게 연극이 무엇인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르쳐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