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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Jul 11. 2021

자살과 마늘장아찌 3

작가의 슬럼프 극복기 (3)

일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엄마는 샤머니즘에 심취해 있다.

그 당시 엄마의 연세 칠순 즈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경상도가 고향인 시골 할머니들의 일반적인 미신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보통의 어머니들이 하는 문지방 밟지 마라 정도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집을 나간 뒤 어느 점쟁이와 함께 산 적이 있다.

점쟁이들이 굿하러 가면 장을 봐주고, 점집의 청소를 해주는 그런 허드렛일을 하셨기에 일반적인 미신은 견줄게 못되었다. 심지어 가출하고 난 뒤 우리에게 한 말 중에 가장 어이없는 말은

"야야~ 집에 용띠가 셋이면 집안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 안카나! 그래서 내가 느그 안 죽일라고 나왔다 아이가"

라고 말씀하실 정도다.


글자 모르는 칠순 노모와 글을 써서 먹고사는 나의 동거는 하루 종일 싸움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오고 나서 나는 인근 수영장 딸린 사우나를 모시고 갔다.

그곳에 월회 원권이 있던 나는 엄마를 사우나에 두고 수영을 하러 갔다 왔는데 엄마가 식혜를 드시고 있었다.

"여기 이 분이 이거 사주셨다."

라고 말하면서 처음 본 사람에게 음료를 얻어먹는 엄마.

나를 보자 그 옆에 어른이 하는 말씀은

"아이고. 이분이 그 작가 하는 따님이신가 보죠."

불과 삼십 분 만에 신상이 털렸다.

안 봐도 뻔하다. 엄마는 어디 사는지. 여기 왜 왔는지. 내가 뭐하는지 아마도 그 사우 나안에서 일장 연설하셨을 거다. 순간 화가 났다.

그들은 가족끼리 왔었고, 나는 엄마를 모시고 나오면서 바나나 우유를 그 가족들에게 돌리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따라 나오는 엄마는 

"야야~ 나는 한 개 얻어먹었는데 니는 다섯 개 사주면 니가 손해 아이가!"

나는 버럭거렸다.

"엄마 니는 왜 처음 보는 사람이 사주는 걸 얻어먹노! 그리고 내 직업은 왜 말하노! 그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얻어먹었는데 그냥 오나? "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니 미안은 했다. 늘 그렇다. 소리 지르고 미안해하고......

그게 엄마와 나의 대화였다.

한참을 말 안 하고 오는데 엄마가 말한다.

"야야~~ 내 두류공원에 아쿠아 머시기 그거 공짜로 가르쳐준다고 구청에서 카던데..... 수영복이 없어서 못 가는데 그 수영복 비싸나?"


사달라는 소리다.

그 당시 내가 입고 있던 수영복이 십만 원이 넘는 거였고. 그걸 그냥 주려고 하니 아까웠다.

정말 웃긴 일 아닌가! 곧 죽겠다고 죽기 전에 마늘장아찌 담아놓고 죽겠다는 딸년이 입던 수영복이 아깝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결국 나는 칠만 원 정도를 써서 수모와 수경. 수건. 수영복을 세트로 주문했다.


엄마와의 싸움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티브이로 홈쇼핑 채널을 보던 엄마는 오리고기 판매방송을 보더니 말씀하신다.

"야야 우리처럼 몸 굵은 것들은 오리고기가 그래 좋단다."


사실 죽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글도 쓰지도 않고 집에만 있던 나도 심심했기에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를 모시고 포천의 회전 오리구이 골목을 갔다.

아침 11시 전에 도착한 우리는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휑한 주차장을 유심히 보더니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좀 이따 들어가자."

"와? 일부러 사람 없을 때 올라고 일찍 왔는데~"

"그래도 좀 이따 들어가자."

"와? 퍼뜩 나온나~"

"지금 손님 한 테이블도 없다 아이가!"

"그래서?"

"장삿집에 첫 손님이 여자만 주인이 싫어한다. 재수 없다고."


용띠 드립 이후에 최고로 황당한 말을 들었다.

순간 화가 났다.

"엄마. 니 와 카는데? 여자 손님은 돈 안내나? 와 그런 소릴 하는데. 드가자!"

"기다렸다가 손님 들어가면 가자. ~"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던 엄마에게 나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 니 지금 장난하나? 엄마 니도 여자고, 나도 여자다. 와 여자가 여자를 비하하노!

요즘 세상에 돈 내는 손님이면 되지. 뭐 남자 손님은 돈을 더 주나? 엄마 니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

내 지금 당장 서울역으로 엄마 내라 줄 거다. 그냥 드가자. 내 승질 돋우지 말고!"


불같이 화내는 나를 보고는 엄마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는지 차에서 내렸다.


그 며칠 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며칠 집안에만 있던 나는 멀리서 오셨는데 회나 고기를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를 모시고 차를 타고 식당을 찾던 나는, 동두천에서 유명한 떡갈비를 사들 릴까 생각을 하다가 엄마에게 여쭤봐야겠다 싶어 물어봤다.


"엄마 니는 고기 좋아하나 회 좋아하나?"

"야야. 나는 고기도 좋고 회도 좋은데.. 회가 참 맛있긴 하더라. 예전에 점쟁이랑 살 때. 내가 엄청 아팠는데

그때 학꽁치 회를 먹었는데 그거 먹고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엄마. 근데 여기는 회보다는 고깃집이 많다. 떡갈비 먹을 때. 아님 그냥 소고기 드실래?"

"떡갈비는 뭐꼬? 그냥 소고기집 가자."

"뭐든 좋다. 아... 예전에 점쟁이랑 살 때는 윽시 맛있는 거 많이 먹었는데. 점쟁이가 얼라가 없어서 식탐이 많다 아이가!"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게 무슨 말이고?"

"아니. 점쟁이가 아가 없다고. 원래 얼라 없는 여자들이 식탐이 많다 아이가!"

"엄마 니 그게 무슨 소리고? 와 그런 말을 하노?"

"원래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나는 느그 어렸을 때. 느그 아빠가 밖에서 뭐 사주면 입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가 꼭 싸들고 와서 느그랑 같이 먹었다 아이가!"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불행의 원천은 마늘장아찌가 아니라 엄마였던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하면 안 되는 소리를 해버렸다.


"엄마. 니 무슨 말을 그래 하노? 애가 없으면 돈이 적게 드니까. 좀 비싼 거 먹겠지. 애가 없으면 밥하기 귀찮아서 나가서 많이 사 먹겠지. 그래서 그럴 수가 있지. 그게 어떻게 식탐이 많은 거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엄마가 자식이 눈에 밟혀서 음식이 입에 안 넘어간다고? 엄마. 엄마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면 안 된다. 자식을 버리고 나가서 산지가 이십칠 년인데 우째 살아있노!"


정말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엄마와 나는 단 한마디 말도 없기 고깃집으로 갔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우리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거친 말에 대꾸조차 못하고 화조차 내지 않는 엄마에게 미안했고, 정말 말없이 고기를 먹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 엄마는 내게 리모컨 조작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밤새 내 방에서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를 고민을 했었고. 아침이 되자 나는 엄마의 아침 드라마를 틀어주기 위해 거실로 나갔는데, 그때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냉장고에 있던 하유미팩을 얼굴에 붙이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야. 소고기가 좋긴 좋다. 얼굴이 안 붓네~ 근데 이거... 내 내려갈 때 몇 장 주면 안 되나? 안 떨어지고 윽시 좋네~"


나는 졌다. 

그때 알았다. 나는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돌아가신 나의 아빠는 직업군인이었다.

물론 이십 년 만기 제대를 하셨던 상태에서 엄마와 재혼을 하셨다.

엄마와의 재혼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아빠의 첫 번째 부인이 아기를 가지지 못했기에 아빠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꽤 많은 살림을 차렸고, 번번이 자식을 얻지 못하고 결국 고아원에서 열명의 넘는 아이를 입양했으나

끝까지 남아있는 자식이 없이 번번이 가출을 했었다. 결국 아빠의 첫 번째 부인은 시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씨받이를 들였고. 그때 대리모로 들어온 사람이 바로 나의 친엄마이다.


엄마가 오빠를 낳고, 그리고 나를 낳자마자 그분은 이혼을 했고, 결국 내 동생까지 태어났다.

우리 삼 남매가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것은 엄마가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아빠의 전부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우리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낯선 오빠와 언니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에게 소개해줬다.

"자야. 여기 언니는 니 친언니다. 한배에서 낳았으니 친언니 아이가! "


엄마의 마지막 대리모집이 우리 집이었고, 엄마는 그전에 낳은 자식들과 연락을 하고 지냈고

우리에게 소개해주기까지 했으니, 우리 삼 남매가 엄마와 사이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늘 엄마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에 아주 가끔 연락을 하며 용돈을 드리는 정도의 사이였었다.


그날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고, 이제 더 이상 엄마와 같이 있다가는 마늘 살 돈도 없어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시장을 갔다.

시장에 가서 빨간 뚜껑으로 된 18리터짜리 유리병 일곱 개를 샀다. 그리고 햇마늘. 햇양파. 고추, 마늘종을 가 가지고 왔다.

그걸 본 엄마가 말했다.


"아이고 야야. 손은 누구 닮아서 이래 크노. 그리고 고추는 가을에 담아야지 봄에 담으면 꽃핀다 아이가~"

"꽃?"

"곰팽이 말이다 곰팽이~"


엄마는 양파와 마늘을 다듬고, 나는 고추를 바늘로 찔러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야채를 손질하던 엄마가 문득 이런 말을 한다.


"야야~ 근데 니 드라마는 언제 나오노? 니 대구 있을 때는 맨날 티비 나와서 내가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도 하고 공연도 보러 갔는데. 이제 드라마 작가 한다고 했는데 와 니 드라마는 안 나오니?"


엄마의 그 질문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차 올랐다.

고추가 매워서도, 양파가 매워서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아홉. 생각해보면.... 엄마가 우리 집에 대리모로 들어와 동생을 낳았을 나이.

초혼에 실패하고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하다가 대리모의 삶을 살았다는 엄마.

그 엄마의 서른아홉은 나 보다 더 잔인했을 텐데.......

지금 나는 내 인생이 제일 잔인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엄마가 엄마가 아닌 여자. 그리고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엄마에게 고해성사하듯이 이야기했다.


"엄마야. 내 엄마 니가 생각하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내 대구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서울 와보니까, 내 진짜 별거 아니더라. 그래서 어쩌면 엄마. 내 이게 마지막일 거 같다. 내 마지막으로 엄마 얼굴 보고 싶어서. 내 이제 그만 살고 싶다."


그 말을 하는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마도 내가 엄마에게 하는 처음 고백이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나는 엄마에게 그런 속엣말을 하지 못했고, 오 학년 이후에는 같이 살지 않았기에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마음속에 품은 말을 솔직하게 했다.

엄마가 울더라도. 엄마가 슬퍼하더라고 나는 지금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던 엄마에게 그 말을 했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뭐라고 말하면. 다음 대사까지 준비했었다.

"엄마 니 때문이다. 엄마 니가 그때 우릴 안 버렸어도. 내가 이래 불행하지는 않았을 끼다"

그 말을 하기 위해 고백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는........


"뭐라카노!!!  니 죽을 때 죽을 깝시라도 니 이거 다 하고 죽어라. 니 장아찌 담는 게 뭐 쉬운 줄 아나

이거 간장 딿이가 식하가 붓기를 삼일에 한 번씩 세 번 해야지 된데이. 내 이거 무거버서 혼자 못하니까

니 이거 다 담아놓고 죽어라. 아가 손은 누구 닮아서 이래 크노~ "


순간. 내 눈물이 쏙 들어갔다.

지금 딸내미가 울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저렇게 대답한다고?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마늘장아찌는 하루 만에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삼일에 한 번씩 간장을 끓이고 식혀서 붓기를 세 번을 해야지 완성이 된다고 한다.

아........


순간, 나는 느꼈다.

내가 저 캐릭터를 내 드라마에 쓰지 않고는 죽을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엄마는 십일을 더 있다가 갔고.... 나는 친구에게 이백만 원의 돈을 더 빌렸다.

그리고 그 많은 장아찌를 2리터짜리 작은 플라스틱 병에 소분하였다.


내 주변에 아직 입봉 못한 조감독님들과, 작가들. 그리고 피디님들에게 이 사연을 적은 글과 함께

장아찌를 돌렸다.


나는 지금 자살충동과 슬럼프를 이렇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대들도.... 버티어 봅시다.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그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자살을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슬럼프는 여러번 겪었다.

그럴때 마다 나는 그 슬럼프를 탈출 해 왔고, 그것은 매번  나의 일상안에서 치유되었다.


오늘 누군가에게도 이 글이 치유가 되는 수다가 되길 바라며......




아차차...엄마~

다들 궁금해 하시는 엄마.

나는 지금 팔순이신 엄마와 한두달에 한번씩

이런 일상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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