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슬럼프 극복기 (2)
마늘장아찌를 담겠다고 생각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두천 보산동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갔다.
그리고 간장 한말 통, 식초 한말 통, 젓갈 한통, 설탕 한 포대를 샀다.
한 번도 담아 본 적은 없는 장아찌지만 함바집 경력에 요리사 경력이 있었던 나는 비율은 모르지만
뭐가 필요한 지는 알고 있었다.
배달시켜놓고 집에 와서는 컴퓨터에 앉아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마늘장아찌 담는 법'이라고 치고 요리법에 대해서 읽어보았지만 모두들 아주 작은 잼병에다가
만드는 소량만 적어 놓았다.
답답한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이다.
전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오 학년에 집을 나가셨고, 그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알게 된 엄청난 출생의 비밀들이 있었다.
드라마 작가들이 하는 말이 있다. 언제나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자식을 버리고 나간 엄마가 할 수 있는 모성애는 학교로 한 번씩 찾아오는 일이었다.
몰래 만나다가 아빠에게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두 분이 서로 합치려고 한 적도 있었으나
엄마의 문제로 그것도 불발되었다. 우리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빠는 엄마와의 만남을 허락하였지만
엄마와 우리 삼 남매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엄마의 캐릭터를 설명하자면, 엄마는 글자를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샤머니즘에 심취하셨고, 그리고 엄마는 눈치는 빠르나 염치는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가난했다.
아마도 이 세줄이면 상상 가능하지 않은가!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엄마에게 전화해서 대뜸 물었다.
"엄마야. 마늘장아찌 우예 담노?"
그러자 엄마는 한참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야. 놔둬라 내가 가서 담아줄게"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게 남은 돈은 이제 백팔십만 원 정도인데..... 엄마가 오면 이 돈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그런데 나는 순간 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제 마늘장아찌 담고 나면 죽을 건데, 그래! 죽기 전에 엄마 얼굴이라도 보자.
결국 나는 엄마를 픽업하기 위해 동두천 보산동에서 서울역으로 갔다.
엄마는 내 차 조수석을 사랑하신다.
"야야~ 나는 이렇게 차 타고 어디 가는 게 제일 기분 좋더라~"
동두천으로 들어오는 국도길에서 연신 밖을 보며 기분 좋아하는 엄마를 보는데
자꾸 엄마의 핸드폰이 삑삑거린다.
"엄마야~ 뭐가 이래 삑삑거리노? 문자 오는 거 아니가?"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본다고 아나~ "
"줘봐라. 내가 봐줄게~"
"개 안타! 내 안 봐도 안다. 산악회에서 오라고 카는 기다."
"엄마 니 산도 타나? "
"내 무릎 아파가 산 못 탄다. "
"근데 산악회는 와 가입했노?"
"막걸릿집에 가 있으면 다들 내려온다 아이가!"
"술도 못 먹으면서 막걸릿집에는 와 가노?"
"술 안 먹으면 입도 아이가! 찌찌미 무러 안 가나!"
순간, 동두천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소요산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엄마를 모시고 소요산에 가서 묵채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보산동을 지나쳐 소요산으로 갔다.
소요산 입구에 도착한 나는 차를 주차하고 내렸는데 먼저 내린 엄마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니
엄마는 입구에 있는 등산용품점에 서 계셨다.
그곳에는 [등산화 만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순간 불안한 감이 들었다.
보아하니 등산화 하나 사달라는 말이겠구나 싶었고. 각오하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 니 여서 뭐하노?"
"아이고 야야~ 산악회 사람들 중에 등산화 없는 사람은 내 밖에 없다 아이가!"
무슨 말인지 뻔히 아는 나는 엄마가 얄미워 한소리를 했다.
"엄마 니 산 안 탄다 미? 무릎 아파서 산 안 오른다 미!"
"야! 니는 전집은 어디 도롯가에 있는 줄 아나~ 산 중턱에 있지!"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만 원짜리 등산화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인은 어르신이 신으려면 좀 더 좋은걸 신어야 한다부터 시작해서
비 오는 날 입는 판초까지...... 결국 도합 이십칠만 원이란 돈을 쓰고 나왔다.
내 캐릭터는 그렇다. 분위기상 돈을 쓰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 엄마한테 쓰는 돈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내게 엄마는 그랬다. 아마 아빠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다.
내게 엄마는 자식 버리고 도망가서 자기 입에 풀칠도 못해서 자식들에게 부담 주는 그런 엄마였기에
자발적이지 않은 소비에 대해서는 늘 화가 났다.
엄마와 함께 나온 나는 묵집으로 가지 않고 차에 탔다.
"자야~ 니 묵채 묵는다 안 했나?"
"엄마. 내가 지금 돈이 있겠나? 그냥 집에 가서 밥 묵자."
묵채 한 그릇 꼴랑 해야 사천 원 하는데 그것 사주기도 싫었던 나는 집으로 갔다.
집은 엄청 넓었고, 그 집을 본 엄마는 마치 서울 온 딸내미가 성공한 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지역 케이블이 아닌 티브이의 리모컨 조작법을 몰라
하루 종일 자야~ 하며 나를 불렀다.
"엄마. 근데 장아찌 담으러 온 거 아이가? 마늘 사러 가자."
그러자 엄마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야야~ 햇마늘이 지금 나오나~ 유월 되어야 나오지. 일주일 기다려라!"
젠장, 그럴 거면 일주일 뒤에 오시지 왜 벌써 오셨지?
그리고 그때부터 내 불행의 서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