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스물네 살이 된 저의 딸아이 단비가
아홉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구에서 살고 있었고
대구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는 후배를 데리러 단비와 함께 갔었죠.
레슨이 남아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와 단비는 학원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문득 눈앞에 보이는 건 세계 위인전집이었습니다.
"단비야 심심할 텐데 책 읽어~"
그러자 단비가 한번 훑어보더니 말합니다
"응. 엄마 나 저거 다 읽었어."
"너 기다리기 지루할 텐데 괜찮아?"
"응 괜찮아."
결국 기다리기 지루했던 제가 그 책을 읽었습니다.
이성계, 피카소, 칭기즈칸.... 두껍고 간략한 그 위인전 세 권을 읽고 난 나는
단비에게 궁금함이 들었습니다.
위인전이란 이긴 자들의 기록이기에, 지금 보면 잔인한 그 시대의 영웅이
몇 년도 어떤 싸움에서 몇 명을 죽이고 전쟁에 승리했는지를 외우는 단비가
과연 자기 엄마는 어떻게 자신을 낳았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알까?
순간, 질투가 났습니다.
그리고 불안함이 엄습했습니다.
죽어도 단비 아빠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남은 자의 말로 기록되는 내 삶에 각색이 더해질까 봐
그때부터 단비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든 새 계정에 단비가 크면 보여주기 위한 엄마 삶에 대한 기록들
그런데 아차 했습니다.
자신의 계정에 일정기간 동안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그 계정은 휴먼 상태가 된다는 걸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나의 역사.
그 뒤에, 뇌경색. 심근경색. 극심한 빈혈 등과 마주하면서
몇 차례의 수술을 반복한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 잃어버린 메일이 간절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 글들을 잃어버린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꽤 비관적이고 암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저의 삶은
오늘 죽어도 호상!
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는 오늘을 이야기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추억하는
당신의 하루를 위로하는 글이 되었으면 하고
나를 다독이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그대의 오늘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