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왕나경
나는 시조시인으로 활동해왔다. 시조는 내게 뿌리와도 같았다. 짧고 단단한 정형 안에서 울림을 길어 올리며, 낭송으로 사람들과 숨결을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했다. 청중의 눈빛 속에서 시는 다시 살아 움직였고, 내 목소리와 서로의 마음이 맞닿으며 순간은 하나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글의 길은 멈추지 않았다. 내 언어의 지평을 넓히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 갈망이 나를 수필로 이끌었다.
수필은 삶의 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강물이었다. 시조가 응축과 함축의 미학이라면, 수필은 흘러가는 삶의 결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르였다. 나는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이야기를 문장 속에 담았다. 어머니의 고무장갑, 아버지의 장화, 언니와 오빠들의 사랑, 그리고 세월의 자잘한 파편까지 모두가 글이 되었다. 시로는 다 담아내지 못했던 감정이 수필 속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지금 나는 12월 수필 등단을 준비하고 있다.
브런치는 나에게 새로운 배움터였다. 짧은 디카시 한 줄에도, 긴 산문 한 편에도 누군가는 반응했다. 글을 올리면 곧바로 읽히고, 댓글로 울림이 전해졌다. 작은 반응 하나에도 마음은 흔들렸고, 그 울림은 나를 다시 글 앞으로 이끌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린다’는 감각은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렇게 브런치는 나를 단련시켰다. 글을 쓰는 행위가 더는 혼자가 아니라, 읽는 이와 연결된 세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시조시인이면서 동시에 수필가로 나아가고 있다. 두 장르를 병렬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길로 생각한다. 시조의 응축된 언어는 수필 속에서 더 깊게 울리고, 수필의 서정은 다시 시조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그렇게 서로의 결을 이어가며 나는 내 글을 완성해가고 있다. 브런치는 이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글쓰기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해주었다.
돌아보면 글은 언제나 나의 버팀목이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고독할 때도 글은 곁을 지켰다. 내 안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동시에 세상과 연결해 주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작가의 꿈’을 단단히 붙잡게 되었다.
내 꿈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글을 쓰는 것, 그 글로 하루가 조금 따뜻해지고 삶이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시와 수필, 두 세계를 넘나들며 나의 삶을 기록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 브런치가 그 길 위에서 늘 함께 있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꾸는 작가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