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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r 24. 2019

그 많던 단골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사랑했던 카페를 찾아

“어? 이게 얼마만이에요. 살이 많이 빠지셨는데요. 턱 선이 살아났어요.”

카페 키오스크 사장님은 예의 그 환한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니 왠지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는 패션 센스 넘치고 장군처럼 호탕한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두 살 난 애기 아빠다. 그와의 인연은 서촌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돼 시작되었다. 쉬엄쉬엄 동네 산책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아내와 나는 배화여자대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작고 세련된 카페 키오스크를 발견했고 그날부터 그곳은 우리가  편애하는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선 굵은 외모의 그는 아트 디렉터라 해도 될 만큼 감각이 남달랐다. 녹색 유리병에 벌개미취 한 줄기를 꽂을 줄 알았고 유리잔에 내놓는 냉커피에는 요구르트 빨대를 꽂아주었다. 패션 센스는 또 얼마나 좋은지. 녹색 바지와 하늘하늘한 티셔츠, 뽀글머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키오스크의 주요 메뉴는 프렌치 토스트. 계란물에 하루 동안 푹 재워 말랑해진 바게트를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운 후 그 위에 설탕절임한 블루베리나 사과, 딸기를 토핑으로 얹어주는데 한 입 떠 넣으면 절로 눈이 감길 만큼 보드랍고 달콤했다.


휴가를 내거나, 원고 마감이 끝나거나, 날씨가 기막히게 좋을 때면 우리는 이곳을 찾았다. 동네 이야기, 육아 이야기, 연애 이야기, 디자인 책 이야기, 사장님이 좋아라하는 음악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이 훌쩍 갔다. 사장님이 세일할 때 사 온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 <Seven Steps To Heaven>은 지금껏 잘 듣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음반은 마일스 데이비스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잠들기 전 CD플레이어에 넣고 들을 때가 많은데 트럼펫 소리가 저 먼 곳에서 기적소리처럼 울린다. 빠아앙~~ 실험적이면서도 낯선 사운드도 포함돼 있지만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구석이 있다. 거슬리지 않는다. 긴 의자에 5명 정도가 쪼르르 앉아 먹는 작은 가게라 금방 일어나야 할 때도 많았지만 사장님이 새로 산 조명이며 그릇을 구경하며 편안한 수다를 떨다오면 이내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사장님과의 인연은 허무하게 ‘일단 멈춤’이 되었다. 벌써 몇년 전이다. 서촌이 뜨고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사장님은 공들여 꾸민 공간을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키오스크 자리에 새로 들어 선 카페는 우리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분 좋은 날, 기분 좋아지고 싶은 날 마실가듯 편하게 발걸음 할 곳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제기랄. 시인 안도현의 말이 생각나곤 했다. “단골집이 많은 것도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조건이예요.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서촌을 떠난 사장님은 망원동에 둥지를 틀었다. 영업도 꽤 잘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늘, “키오스크, 한 번 가보지 않을래?” 아내가 제안했고 나는 반색하며 함께 집을 나왔다. 소풍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평소 잘 타지 않는 택시까지 과감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님이 예의 그 환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어? 이게 얼마만이에요. 살이 많이 빠지셨는데요. 턱 선이 살아났어요.”

프렌치 토스트는 여전히 달콤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추억 여행이라도 온 듯 잠시 설레고 행복다. 어색한 면도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한 때 친했던 지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가게는 커지고 손님은 많아지고 사장님은 바빴다. 오래 있다 올 예정이었는데 또 올게요,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반은 자연스럽고 반의반은 어색한 인사를 던지며 생각보다 빨리 일어섰다.


돌아보면 참 많은 단골집들이 없어졌다. 그 사장님들은 다들 잘 계실까. 그 근처를 걷다, 핸드폰 속 사진첩을 정리하다 한 번씩 궁금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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