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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r 18. 2019

독일인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전세집에서 평생 살 수 있다니 가능한 일인가?!

독일 베이스의 iF 디자인 어워드 행사가 있어 함부르크로 출장을 왔다. iF 디자인어워드의 랄프 회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데 몇 년 전 비가 많이 와 지하 1층 전시 공간이 물바다가 되면서 몇년 째 건물주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건물은 물론이고 집 역시 많은 사람들이 렌탈을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왜일까? 설명이 끝나고 한국에서 온 iF 사무국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함하듯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진짜로요?


전세 개념이 독일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세입자가 먼저 나가겠가고 하기 전까지는 '내쫓을 수가' 없는 곳이 독일이었다. 세입자가 나가면 나갔지 집주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렌탈 비용을 올리는 데도 제한이 있어 3년 간 10~15% 이상으로는 못 올리도록 법적으로 제한이 되어 있단다. 헉, 이게 가능한 얘기인가.


숙소로 돌아와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 다시 한 번 놀랐다. 독일 전체 국민의 2/3 가량이 집을 임대해 사는데 정부와 의회에서 집값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세입자협회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런 이유로 집이 마음에 들 경우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살 수 있다는 이야기. 건설회사에서도 집을 분양하지 않고 임대를 하기 때문에 집이 '로또'가 되는 경우는 아예 없고 50세 정도가 돼서 '이제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낼 곳을 알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생애 딱 한 번 집을 구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삶이라는 이야기.


이런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로 올라가는데 폐허가 된 땅에서 갑자기 난민이 된 국민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마음 놓고 편히 살 곳'을 고심한 것이 지금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부럽고, 이렇게 놀라울 수가.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 국회의원의 일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집이 돈이 아니라 아늑하고 평안한 둥지라는 것, 그 둥지가 별 일 없는 한 오랫동안 나의 것일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할 수 있는 일이 한국에서는 왜 그리 힘든 걸까.    


일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택시 드라이버가 정부와 함부르크 시의회에 대한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는 웰-오거나이즈드였다. "함부르크 좋았지? 나도 여기 아주 좋아해. 왜냐면 모든 게 웰-오거나이즈 돼 있거든. 사람 사는 데 꼭 필요한 게 뭔지 알아? 무엇보다 집! 그 다음 음식!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그 다음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 마지막으로 치안. 이 4개가 독일은 완전히 웰-오거나이즈 돼 있어. 특히 함부르크. 놀라울 정도지. 경찰들도 얼마나 나이스하고 친절한지 미국하고는 달라. 나도 처음에 이곳에 와서 완전 깜짝 놀랐다니까. 이렇게까지 웰-오거나이즈가 돼 있다니...신기하더라고. 진짜로 웰-오거나이즈 돼 있어. 진짜야."


그는 "아프리카에 가 봤냐?"며 자신이 가나 출신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려고 함부르크에 왔다가 모든 것이 웰 오거나이즈 돼 있는 것에 놀라고 감동받아 학생 비자가 끝났는데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간 도망자처럼 경찰을 피해다녔다. 그는 운전을 하며 잠시 운전대를 놓고 쉭, 쉭 와이퍼처럼 팔을 흔들며 이렇게 도망을 다녔노라고 으스댔다. 그게 벌써 30여 년 전. 그렇게 몇년을 고생하다 독일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도망자 생활을 청산했다. 안타깝지만 그 여자와는 잘 안 맞아 아주 오래 전에 이혼을 하고 지금은 함부르크에 온 다른 가나 여성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 봇물 터지듯 한 만담은 "독일에서 가나까지는 6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너는 11시간을 넘게 가야한다고? 오 마이 갓! 나는 절대 못해!"로 끝났다. 나를 내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 한 숨 푹 잘 계획이란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한국의 관광 캐치프레이즈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모든 게 빨리 바뀌는 나라. '덕분에' 급류에 휩쓸리듯 일자리를, 가정을 잃는 사례도 많은 곳. 꼰대 같고, 아재 같은 발언이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의원은 왜 국민에게 칭찬을 받지 못할까. 왜 큰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나도 그 랄프 아저씨처럼, 그 가나에서 온 택시 기사 처럼 우리나라는 정치가 갑이야! 웰-오거나이즈 돼 있지. 정말 최고라니까 하며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지.


공항에 도착할 무렵 오락가락 하던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그 하늘이 뭐라고 또 어찌나 부럽고 애틋하던지. 이런 하늘을 보려면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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