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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an 13. 2019

콩나물국 끓이기

어제는 생전 처음 콩나물국에 도전했다. 아내가 감기로 몸져 누웠는데 고춧가루 푼 칼칼한 콩나물국이라도 끓여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식탁에 앉아 콩나물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쏟은 후 냄비를 옆에 두고 한 개 한 개 콩나물 머리와 꼬리를 땄다. 아내는 콩나물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머리까지 따야 모양새도 맛도 깔끔해서라고. 그렇게 머리까지 손질하고 있자니 시간이 배로 걸렸다. 바람에 나무문은 덜그닥 거리고 홀로 있는 주방은 썰렁했다.


소설가 조경란은 멸치 머리따기 같은 단순한 일을 하다보면 머릿속 잡념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 져 좋다던데 나는 어깨만 결렸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영 성가시고 더뎌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제법 손질한 듯 한데 냄비에 쌓인 콩나물은 이걸로 국을 끓을 수나 있을까 싶게 적었다. 마감 때 국에 밥이라도 훌훌 말아먹으면 편할 것 같아 "콩나물국이나 끓여줘" 말하곤 했는데 속 편한 소리였다.


손질을 하며 콩나물국 황금 레서피도 찾아보았다. 다시마, 멸치, 대파 뿌리 넣고 우린 물에 콩나물 투척해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 맞춰10분 더 끓여내면 끝. 마지막에 송송 썬 대파나 청양고추 올리면 된다니 김치까지 담그는 나로서는(그냥 깍두기 정도) 일도 아니네 싶었다.


콩나물 투척 단계까진 순탄했다. 국간장과 소금을 넣고 휴 거의 다 됐네 싶던 찰나 냄비 뚜껑 바깥으로 국이 쏟아져 가스불이 꺼졌다. 뚜껑을 살짝 열어 놔야 하나 싶어 그렇게 했는데 잠시 후 또 한 번 물이 터져 나왔다. 불이 너무 셌는지 다진 마늘 알갱이는 냄비 뚜껑에까지 폭죽놀이하듯 튀어 올라와 있었다.


국자에 국물을 담아 호호 식혀가며 맛을 봤다. 밍밍했다. 국간장 맛만 났다. 멸치와 다시마 우린 물의 흔적은 먼 기억처럼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간장 투하. 다진 마늘과 소금도 투척. 맑고 깨끗한 콩나물국은 그렇게 점점 멀어져갔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갈색 콩나물국.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소금이 많았는지 짠 듯도 하고, 갈색이라도 옅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물을 따로 끓여 합쳤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내놓은 콩나물국을 아내는 맛있다며 먹었다. 아파서 미각을 잃었나? 혹시 진짜 맛있나? 아이들은 국에 밥을 말아 한 입 가득 넣으며 나중에는 한 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놀이까지 했다. 흐 좀 위안이 됐다.


언젠가 요리 실력이 엉망인 어머니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이 문장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다. 우리 어머니는 전라도 분인데 음식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 아부지가 못 먹겠다며 반찬 투정 한 적이 없냐고. 그날도 어머니에게 맛없는 밥상을 받은 날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부지는 생전 반찬 투정 해 본 적이 없단다. 주는 대로 드셨단다. 밖에서 드신 날이 많았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이런 게 그 옛날 남자들의 남자다움 같은 것 아닐까 싶다. 다정한 맛은 없지만 수다스럽지 않은 것. 이런저런 잔소리는 꿀꺽 삼키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


콩나물국을 끓여보니 깔끔하게 조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다. 역시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말을 말아야 한다. 반찬 투정 같은 째째한 행동은 정말이지 하면 안 되겠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만약 오늘 아내가 실망한 표정으로 콩나물국을 맛없어 했다면 1년 정도 콩나물국 끓일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엔 잘 해 보리라. 더 섬세하게, 더 완성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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