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인베이글 Apr 09. 2019

글쓰기의 최고 원칙은 그냥 쓰는 것

오늘도 체한 듯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글쓰기 동료들을 위하여

고백하자면 내겐 글쓰기의 최고 원칙은 그냥 쓰는 것, 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확신에 찬 제목을 달고 글을 쓰는 건 최근 '그냥 씀으로써' 완성한 글이 있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시간 나는 게을렀다. 아, 몰라. 오늘은 그냥 자자 하고 미룬 날도 많다. 글쓰기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망울져 터져 나오는 꽃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글쓰기를 기대했지만 그 자연스러움이란 얼마나 어렵고 먼 것인지.


글을 쓰고 싶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한 그 오랜 기간, 나는 부화하지 못한 알 같다. 어떨 때는 햇빛이 나를 비추고 어쩔 때는 다른 새가 부리로 알을 쪼았다. 순간적으로 창작욕이 샘솟은 순간엔 핸드폰을 꺼내 브런치 '작가의 서랍'메모를 하고 오늘 밤엔 꼭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결과는 쓰지 못한, 그래서 찜찜한 밤이었다.


최근 독일로 출장을 가게 됐다. 그곳이 내게 글쓰기에 관한 기쁨과 깨달음을 줄 미처 몰랐다.

디자인 관련 기관에서 잡은 호텔답게 객실이 마음에 들었다. 꼭 필요한 것만 구비된 작은 방이었지만 창문으로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조깅하는 모습이 보였고 침대 옆과 벽면에 간접 조명이 있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기에 좋았다. 얇은 다리와 좁은 상판으로 이뤄진 테이블도 벽 쪽에 붙여 놓았는데 노트북을 꺼내면 맞춤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앰프였다. '우리는 음악을 너무도 사랑해. 직접 라이오 채널도 운영해. 레스토랑으로도 사용하는 로비로 내려오면 전자 기타를 빌려갈 수 있어. 한 곡 치며 그루브를 느껴보렴' 하는 내용의 종이가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


앰프에 달린 잭을 핸드폰에 꽂으니 지지직, 제법 큰 소음. 볼륨을 조금 줄이니 빵빵하면서도 이 정도면 옆방에도 피해를 주지 않겠지 싶은 정도의 소리가 나온다. 유튜브를 열어 영화 '어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사운트랙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사무실에서 벗어나 다른 시공간에 있자니 몸이 글쓰기 스위치를 건드린 듯 창작욕이 샘솟았다. 너무 좋아 잠시 춤도 췄다.


적당한 볼륨으로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공간은 창작의 산실이라 할 만 했다. 몸에 활기가 돌았다. 브런치를 열고 아침의 단상을 소재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즐거운 글쓰기였다. 썼다 지웠다 하지 않고 미끄럼 타듯 한 번에 쑥 내려가는 쾌속의 글쓰기랄까. 방금 본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듯한 생생함이 있었다. 저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니 속도도 빨랐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서 막 형체를 드러낸 문장에 달려가 붙었다. 그렇게 살과 뼈가 있는 글이 얼추 완성되었다.


글쓰기란 매번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작업인데 그 답은 오로지 직접 써 봄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는 글은 기존에 메모해 두었던 글의 내용과는 딴판으로 흐른다. 기존의 메모가 뇌에서 터지거나 비져 나온 것이라면 직접 자판을 써 내려가면서 쓰는 글은 가슴과 감정이 끼어 들어가면서 쓰는 글이라 딱딱하지 않다. 막 구운 빵처럼 촉촉하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진솔한 글이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경험케하는 글이다.


매번 출장을 올 순 없겠지만 앞으로 출장을 올 때면 반드시 노트북을 가져오리라, 그리고 음악을 틀리라, 주말이나 연차를 낸 날은 동네 카페에 가서 새로운 시공간을 느끼며 글쓰기를 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글은 아직 식구들이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쓴다. 장소는 주방 테이블. 음악도 없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웅~ 들리는 곳이지만 나름 수월하고, 리드미컬하게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을 켜기도 귀찮아 핸드폰으로 톡톡 칠 때와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

 

업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 공항에서 셀프 체크인을 하고 나니 2시간 30분 정도가 남았다. 게이트 근처에 와인 바의 그것처럼 테이블이 동그랗고 긴 의자가 있는 곳이 있어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행기 활주로 빠져나가는 소리, 아빠가 아이와 통화하는 소리, 누구누구씨는 몇 번 게이트로 와 달라는 소리가 다양한 형체의 백색 소음이 된다. '독일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는다, 세입자의 권리를 정부와 세입자협회가 보장하기 때문에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나가란 소리를 할 수 없다, 세입자는 20년이고 30년이고 같은 집에서 살 수 있는데 월세를 올리는 비율도 정해져 있다, 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서민을 배려하는 국가 시스템이냐....'하는 내용으로 글을 썼다. 독일 사람들이 해 준 말을 재료 삼아 썼던 거라 쉽고, 빠르게 쓸 수 있었다. 글쓰기의 재료가 충분히 신선하던 타이밍이었다. 귀국 후 2~3일이 흘렀다면 난 그 글을 쓸 수 없었을 거다. 60%는 잊어버렸을 거고 그것들을 떠올리느라 글에는 생생함이 담기지 않았을 거다. 글쓰기 소재나 주제는 문득문득 자주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한 두시간이 이렇게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세이를 쓰다보면 나만의 관점과 생각이 빈약함을 자책하게 되는데 어떤 때는 남의 말로도 글이 된다. 취재 에세이, 수다 에세이도 말이 되지 않을까? 들은 말에 자신의 생각도 미약하게나마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로 됐다, 모든 글에 대단한 통찰이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말하고 싶다.

 

글감이 생각났을 때 그냥 쓰기 시작하고 기왕 발행까지 하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했는데 좋아요 0, 공유 0일 때도 있고, 직감했던 만큼 반응이 좋을 수도, 전혀 기대 안 했는데 공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과 공감의 주파수를 맞춰보는 것. 이건 글쓰는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독일 사람들이 누리는 안정된 주거에 관한 글을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공유 수가 50, 100, 200을 돌파했습니다 하고 알람이 뜰 때는 기분이 좋았다. 내용에 대해 지적을 해 준 분도 있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 아니냐, 어떨 때는 한국의 전세 제도가 부럽기도 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내 성격은 성급한 편이고 그래서 이런저런 실수를 하는데 이런 지적은 글을 쓰고 발행해보기 전까지는 체감하지 못한다.


잠깐의 경험이었고, 이 글쓰기가 오랫동안 유지될 지는 나도 모르겠다. 의지박약인 것도 맞고.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바위처럼 단단했던 알에 톡 하고 작은 구멍이 생기는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이번 일을 겪으며 수많은 글쓰기 책에 나오는 이런 진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를 위해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그저 읽고, 짧은 메모라도 하며 준비하는 수밖에. 그리고 좀 부족하다 싶더라도, 글의 콘셉과 매거진의 방향이 미숙하더라도 일단 쓰고 일단 시작하길. 돌이라도 하나 직접 갖다놓으면 머릿 속으로 설계만 반복할 때는 떠오르지 않던 단어와 좌표가 마법처럼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한 번 멈춰버린 글쓰기를 재개하는 건 경운기 시동 다시 거는 것처럼 힘든 일. 시동이 걸렸다 싶은 순간에는 어디에서라도 잠시 멈춰 글을 써내려가자.

강한 어조로 얘기하자니 머쓱해 지는데 나나 잘하자 싶으면서도 글쓰기 동료들에게 작은 보탬이나마 되고 싶었다! 마치 간증처럼 돼버려 맘에 안 드는 구석도 많은데 일단 쓰고 일단 발행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 1년, 그 낯 뜨거운 실수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