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앞으로 배울 건데 다들 잘 읽네”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담임 선생님의 이 말이 얼마나 마음을 놓이게 했는지 모른다. 차근차근 가르쳐 주실 건가보다. 다행이다. 둘째는 유독 크는 속도가 더뎌 한글을 못 떼고 들어갔다. 숫자도 잘 모른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언젠가 동화책을 붙들고 한글을 가르쳤더니 “아, 몰라 몰라. 어려워” 하면서 제 손으로 제 머리를 때릴 때는 ‘애를 어쩌냐’ 싶었다. 그렇게 한글을 못 뗀 채로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나까지 기분이 싱숭생숭한 입학식. 선생님이 칠판에 본인의 이름을 썼고 혹시 읽을 수 있는 사람? 하고 묻는데 세상 씩씩한 합창단 마냥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아이고야, 다른 애들은 다 읽을 수 있네, 좌절하던 찰나 선생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으니 어찌 안도를 안 하랴.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선생님 말씀은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선긋기도 하고 ㄱ, ㄴ, E 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는 듯했지만 2주 후쯤 들어간 수학 교과서는 한글을 모르면 풀 수가 없는 구조였다. 한글을 읽어야 뭘 묻는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것 아닌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두지 못한 교육부에 화가 치밀었지만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무렵부터 아이는 보건소에 다니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였다. 아내에게 선생님이 전화를 하신 적이 있는데 수업시간에는 자주 엎드려 있는다고 했다. 깜짝이야. 수능 시험 마친 고3도 아니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2주도 안 된 애가 그러고 있다니….걔는 무슨 깡이냐 황당하고 놀라워 웃음이 나면서도 자존감이 낮아질까 걱정이 됐다. 한 발 더 나아가니 짠하기도 했다. 다른 애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답도 잘하는데 자기만 모르는 것 같으니 얼마나 위축되고 힘들었을까.
나는 시골 출신인데 자존감을 드높이기에는 무척 좋은 환경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둘 때쯤 제대한 큰 형이 머리통을 때려가며 한글을 가르쳐준 덕에(아, 그러고보니 나도 선행학습을 했구나. 그러면서 선행학습의 폐해에 관해 쓰고 있는 꼴이니 참...) 글을 읽는데 자신감이 있었고, 나름 끼도 있고 나대는 성격이라 웅변대회, 동요대회에 학교 대표로 자주 나갔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한 번씩 내려왔던 아버지는 막내 아들이 탄 각종 상장을 액자로 만들어 안방에 빙 둘러 걸어 놓았다. “대통령 되믄 어릴 떄부터 싹수가 있었다고 보여줘야재”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시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내가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됐지만 지금 회사에서 이런저런 사회도 보고, 모더레이터도 하는 건 다 자신감 빵빵했던 그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자신감이 있었던 사림은 그 기억의 힘으로 눈 앞의 허들을 뛰어 넘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저러고 있다니 어찌 해야 하나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인생에 대한 해학도 있고 유머도 있어 이런저런 고민에 늘 간명한 답을 주는, 김신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반에서 거의 꼴등하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세상사 아무도 모른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난 우리 아들 공부 못해도 이뻐 죽겠다” 동네 식당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집 앞 편의점에서 자정까지 맥주를 마시며 그 얘기를 듣는데 또 어찌나 힘이 되던지.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듭매듭을 성실하게 지은 이가 인격적으로 더 큰 사람이 된다는 뜻일텐데 공부 좀 잘 한다고 인생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까짓거 한글 좀 늦게 떼는 게 무슨 대수랴. 별 것 아니다. 가볍게 생각하자 으쌰으쌰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내는 아예 교과서를 주문해 피곤한 눈을 부비며 예습과 복습을 시키고 있다(교과서를 살 수 있다니 그 전엔 몰랐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겠어서 일찍 퇴근한 날은 나도 거든다. 7보다 하나 작은 수는? 하나 큰 수는? 하고 물을 때 곰곰 고민하다 느닷없이 3! 이라고 대답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채근하지 않기로 한다. 집에서라도 자존감을 키워줘야 할 것 같아서. “한글 모르고, 숫자 모르는 건 00 잘못이 아니다. 모르니까 학생이고 배우러 학교야 가는 거다” 라는 얘기도 자주한다. 내가 들어도 지겨울 만큼. 출근 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지만 말자, 모르는 것 당연한 데 그렇게 엎드려 있으면 계속 모르게 된다, 말하고 또 말한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굳이 먼저 되지 않아도, 굳이 인격적으로 큰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이순간 덜 쪼그라들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자신감 부족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흉터처럼 남아있지만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한번씩 그 심오하고 철학적인 말을 되새기면 마음이 안정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나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후배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지도, 소심해지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