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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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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Apr 10. 2019

벚꽃에 취하고 한옥에 반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촌으로 왔다

6년 전 서촌으로의 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요즘 한창인 벚꽃길이다. 한옥을 보러가는 길에 이 풍경을 만났는데 그때 이미 마음이 동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춘심이었다. 설레고 환하고 행복한 기분. 나중에 들었는데 누상동, 누하동 길가에 심어진 서촌의 벚나무는 왕벚나무. 일반 벚나무와 비교해 꽃망울과 잎이 더 크고 화사하단다.


그렇게 골목 가장 안쪽에 있는 한옥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마당 위로 달이 보이는 것 아닌가. 전 세계에 하나뿐인 달이지만 그 집 마당과 안뜰만 은은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연극 무대의 세트처럼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다.


감상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우리는 그날 밤 바로 계약을 했다. 혹시라도 계약이 불발될까 딸기 두팩까지 사 집주인에게 안겼다. 이 집을 강력히 원한다는, 이를테면 ‘패’를 다 보여준 참으로 순진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막상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니 이런저런 걱정이 몰려왔다. 그중 하나가 택배 문제였다. 둘 다 집에 없을 때는 어떡하나? 분실될 위험이 높지 않나? 그렇다고 택배를 끊는 것도 불가능하고…


막상 살아보니 정말 쓸데없고 사소한 걱정이었다. 쿠션처럼 가벼운 물건은 대문 안쪽으로 휙 집어던지면 끝이었다. 언젠가는 제법 크고 두꺼운 카펫 두장을 시켰는데 그것도 대문 너머로 던져져 있어 깜짝 놀랐다. 분명 노하우가 있을텐데 어떻게 그런 장대 던지기 같은 신공을 부릴 수 있는 건지 옆에서 보고 싶을 정도였다. 고구마 박스처럼 무거운 물건은 대문 안쪽 귀퉁이에 놓고 그 위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올려놓으면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옆집, 앞집 할머니 댁에 부탁하고 양파나 떡 한 봉지를 들고 가 물건을 찾아오는 것도 정감있고 좋았다.


한문으로 사람 인자는 두 개의 획이 서로 기대는 형태로 쓴다. 서로서로 의지하고, 돕고 사는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그 말이 한번씩 떠올랐다.


봄이 되니 단독주택이나 한옥으로의 이사를 생각하며 한옥 생활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사소한 것에 발목 잡히지 말아라. 이래저래 다 방법이 생긴다. 좋은 일, 따뜻한 일,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 훨씬 많이 찾아온다”고 이야기해 준다. ‘충동 계약’도 부추긴다. 이런저런 소동도 많이 겪에 되지만 결국 다 무탈한 일상으로 귀결되고 남는 건 평생의 이야깃거리라고 꼬시면서. 한번씩 놀러가면 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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