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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Apr 21. 2019

도를 아십니까?에 따라갔던 추억

얼추 잡아도 20년이 넘었다. 그러고보니 도를 아십니까, 도 대단한 생명력이다. 가게를 차려도 1년 안에 망할 확률이 70%가 넘는다는데 20년 넘게 전국 각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니. 새삼 놀랍고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경영의 비밀이라도 알고 싶다.



일병 휴가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직 휴가가 금쪽처럼 귀하게 여겨질 때라 잠도 안 자고 밖으로 싸돌아 다녔다.그 전날도 친구들과 모여 거의 밤샘을 하고 아침깨에 헤어졌다. 지금은 동대문운동장역사문화공원역이 된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걷고 있는데 어떤 여성 2명이 말을 걸어왔다.


정확한 어프로치 방법과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저기요~" 하면서 놀랍도록 잘 생긴 얼굴을 본 것처럼 그분들이 눈을 크게 떴다는 것과 인상이 너무 좋다는 말에 내가 무척 달콤한 기분이 되었다는 것만 어렴풋하다. 남들 다 바삐 지나가는 길목에서 10분 넘게 이야기를 했다. 휴가를 나온 터라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그분들이 도를 아십니까의 단원임은 꿈에도 모르고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야기를 경청했다.


어찌어찌해 지하철까지 함께 타고 그분들이 가자는 곳으로 갔다. 내가 너무도 '길인'인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면 나는 더 잘 될 것이요, 우리 부모님, 형제들도 큰 복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목적지는 애오개 아니면 아차산이었는데 헛갈린다. 여튼 목적지를 전해 듣고 "헤~ 그렇게 멀리요?" 했던 듯 한 데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이 없고, 재미있겠다 싶기도 하고, 정말 잘 되고 싶기도 해 따라나섰다. 가는 길은 20%쯤 지루하고 80%쯤 설레였다. 중간중간 말이 끊기고 딱히 할 말도 없을 때는 잠시 무료한 기분이 되었지만 볼수록 얼굴에 빛이 난다, 볼수록 기운이 환화다 같은 말을 듣는 건 여전히 달달했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했다. 골목길로 들어가 있는 작은 빌라 같은 건물이었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 2층인가, 3층인가에 도착했다. 철문을 여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마루같은 공간이 길게 쭉 이어졌다. 그 끝에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앉은뱅이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그 남자 역시 나를 보자마자 인상과 기운이 참 좋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생일을 물었는데 이럴 때마다 난 참 난감하다. 어머니는 2월 8일에 낳았다고 하는데 주민등록증엔 2월 5일로 되어 있다. 진통이 있어 읍내에 나간 김에 미리 출생 신고를 했나? 정확한 시간이라도 알면 두 개 날짜를 다 대입해 사주를 보고 그중 과거의 전적이 비슷한 날짜로 택일이라도 하겠는데 그마저도 정확치 않다. 어느 날은 "9시 뉴스가 끝나고 나왔어야~" 하다가 또 어느 날은 "동틀 녁, 닭 울때 나온 것 같은디" 하는 게 우리 어머니다.   

이런 얘기를 대충 하며 정확한 날짜를 모르겠다고 했더니 "괜찮아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몇몇 방법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건 기억 안 나고 이것 한 가지만 또렷하게 생각난다.

그 남자는 종합장 같은 종이를 내게 내 밀더니 이름 석자를 써 보라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종이 한 가운데 이름 석자를 크게 썼다.

"오~,  이름 쓰는 것만 봐도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면서 그는 "이름 석자를 중앙에 이렇게 크게 쓴다는 건 집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한쪽 귀퉁이에 아주 작게 쓰는 사람도 많거든요."

과제를 말끔하게 해 낸 사람처럼 뿌듯한 기분이 됐다. 그 뒤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드디어 본론이 시작됐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면 선생님에게도, 가족에게도 큰 복이 갈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되냐는 내게 그 남자는 "혹시...가진 돈이 있으시면 저희가 장을 봐 와 제사 지내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아..." 나도 잠시 당황을 했던 게 그 전날 밤샘을 하고 노느라 현금이 많지 않았다. 주머니에 든 돈을 다 꺼내니 천원짜리 2~3장 동전 몇 개가 나왔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데 4000원 미만이다. 스스로도 조금 당황해 그 남자 표정은 못 읽었는데 어쨌거나 그 돈은 나를 데려온 그 두 여자에게 전달됐고 그 분들은 그 푼돈을 들고 문을 나갔다.      


20~30분이 지났을까. 그 분들이 돌아왔다. 그 돈으로 어떻게 장을 볼까 걱정이 많았는데 검은 봉지가 2개 이상이었다. 그 안에선 꽤 여러 가지 물건이 나왔다. 절편, 막걸리 그리고 바나나킥과 맛동산.

잠시 조상이 이런 것도 드시나...생각했다. 그 돈으로 최선을 다 하셨구나, 얼마 못 남기셨겠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자 이제, 옷을 갈아입읍시다"하는 안내와 함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행거에 전통한복같은 옷이 주루룩 걸려있었는데 선뜻 고를 수가 없었다. 세을 오랫동안 못했는지 옷마다 목과 소매에 얼룩덜룩 묵은 때가 끼어 있었다. 그 중 제일 양호한 옷을 골라 갈아 입었다. 멀리 지하철을 타고 와 옷까지 갈아입고 제사를 지낸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정쩡한 차림으로 밖으로 나와 바나나킥과 맛동산으로 차린  절을 했다. 나름 진지했다. 나와 형제들의 밝은 미래가 달린 일이니...

그렇게 모든 의식을 치르고 문을 나왔다. 나를 데려온 여자 둘도 그 남자에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는데 목소리가 개미 소리만큼 작았다. 찌나 미안하던지. 그때서야 사태 파악을 한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봤는데 '쫌, 쫌, 잘 좀 데리고 와 봐라' 하는 얼굴이었다.


대구에 다녀올 일이 있어 서울역에 내려 다시 회사로 가는데 "저기요..."하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얼굴도 자세히 보지 않았다. "됐습니다" 하고 냉정히, 빠른 보폭으로 발을 내딛는데 뭔가 호쾌한 기분이 들었다. 피식 웃음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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